[SCM 인사이드] 김동선이 미는 한화세미텍, TC본더 업고 IPO 가나

그룹 차원 투자 확대, 2월 미래비전총괄직도 수락 SK하이닉스 HBM 마수걸이 기점 기업공개 가능성↑ 전공정 CVD 설비 고객사 테스트 진행, 매출원 확장

2025-03-17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기자

[인사이트녹경 = 조영갑기자] 한화그룹의 반도체 장비 사업 계열사인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와 210억원 규모의 TC본더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HBM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간 수율 및 경쟁사 특허논란 등이 지속됐으나 정식 PO(구매주문)로 우려감을 일거에 해소한 모양새다. 하반기 추가 PO 역시 유력해 보인다.  

특히 이번 TC본더 양산공급을 계기로 그룹 차원의 지원이 한화세미텍으로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부터 '한화 반도체' 육성을 공식화하고,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직접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직을 도맡는 등 반도체 장비, 설계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사이클에 시기에 맞춰 IPO(기업공개) 시장에도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지난 14일 SK하이닉스와 210억원 규모의 HBM 제조용 반도체 장비(TC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7월 초까지 고객사 장비 인도를 진행한다. SK하이닉스가 구축하는 HBM3E(12단) 약 7라인에 들어가는 TC본더가 발주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 1라인에 TC본더 2기와 주변기기 1기가 들어가는데, 7라인을 고려하면 총 14대가 고객사 양산라인에 들어가는 셈이다. 

다만 이번 공급 물량은 양산라인에 기공급된 물량을 포함한 수치로, 실제 매출액 산입될 금액은 공시된 계약액과 소폭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한화세미텍은 올해 초 고객사에 소량의 TC본더를 선입고하고, 라인 테스트를 진행해 왔다. 기입고 장비의 수율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나왔기 때문에 정식 PO가 나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7월 이후 하반기 추가 PO에 주목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3E 12단 증설 캐파를 고려하면 최대 30라인(60대)이 한화세미텍에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7라인 계약 금액을 단순 산술해보면 약 900억원 이상의 PO가 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화세미텍 총 매출액에서 큰 비중은 아니지만, 경쟁사를 밀어내고 12단, 16단 신설 라인을 선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8단까지 특정 밴더가 장악하고 있던 TC본더 공급망을 한화세미텍을 비롯해 ASMPT 등으로 2원, 3원화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2단부터는 칩 다이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아지고, 워피지(휘어짐) 방지를 위해 헤드에 히터(hMR 방식)가 들어가야 되는데, 기존 밴더사는 이 워피지 커버링과 포스컨트롤(Force Control)에 문제점이 있어 상대적으로 성능이 우수한 한화세미텍 장비에 가점이 돌아갔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12단 HBM 부터 본딩시 열을 가해 MR(Mass Reflow) 공정을 하는 hMR(heated Mass Reflow) 프로세스를 채택하고 있다. 신공정에서 한화세미텍이 경쟁사 대비 우위를 점했다는 이야기다. ASML의 자회사인 ASMPT 역시 13개 라인 가량을 수주할 것으로 보인다. 

TC본더 양산 공급을 기점으로 한화세미텍은 그룹의 지원을 받으며, 기업 규모를 빠른 속도로 스케일업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은 2015년 삼성그룹과 빅딜을 통해 방산, 화학, 기계 부문을 인수하면서 한화테크윈(현 한화비전)을 출범했고, 사업부문을 4개로 쪼개 반도체 기계설비는 한화세미텍(전 한화정밀기계)에 맡겼다. 김동선 부사장이 건설, 유통, 기계 부문을 전담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월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한화로보틱스·한화비전·한화모멘텀에 이어 한화세미텍의 미래비전총괄을 맡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TC본더 관련 특허분쟁, 공급 프로젝트 역시 김 부사장이 직접 챙기는 걸로 알려졌다. 

한화세미텍은 반도체 플립칩 본더, 다이 본더, SMT 마운터 등에서 이미 두터운 레퍼런스를 확보한 제조사다. 특히 중속 마운터 시장 점유율 20%, 고속 마운터 10% 가량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누적 5만대 출하를 돌파했다. 플립칩 본더 역시 국내외 주요 OSAT(후공정 외주가공업체) 15곳에 납품하면서 세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4013억원을 기록해 소폭 증가했지만, 설비 투자 등 비용이 늘어나면서 6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차전지 장비 제조 계열사인 한화모멘텀으로부터 증착 공정 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웨이퍼 표면에 박막을 형성하는 증착 설비(ALD, CVD) 사업 부문이다. CVD(화학기상증착법)는 가스, 이온 등을 화학적으로 증착하는 방식이고, ALD(원자층 증착법)는 화학반응으로 형성된 미세 입자를 증착하는 방식이다. CVD 설비의 경우 현재 주요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가시적인 성과가 예상된다. 정식 PO를 받으면 전, 후공정 상에 매출원을 확보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한화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선택과 집중을 꾀하고 있는 만큼 세미텍의 글로벌 육성을 위해 기업공개 등 외부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세미텍이 HBM 시장에 파이프라인을 확보했고, OSAT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승부구로서 기업공개 카드가 검토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미텍의 지분 100%를 쥐고 있는 한화비전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2794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117억원의 결손금이 발생하는 등 지원 여력이 충분치 않다. 세미텍은 올해 공격적인 CAPEX 투자를 예고했는데, 캐파업을 위해서라도 기업공개 등 대규모 증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반도체 업사이클이 예상되는 내년 본격적인 움직임이 있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IPO 관련) 구체적인 일정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화그룹 내부적으로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이 연장선에서 세미텍에 대한 기업공개 카드 역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