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관리, 철저히 합시다

2012-10-26     편집부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중순, 필자는 환경시설 수주 관련으로 모 교도소에 수감중인 한 지인을 면회하고 돌아오면서 억누를 수 없는 착잡함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휩싸였다.

적어도 필자가 생각하기엔 모 대학 환경공학과 교수인 그는 늘 적극적이고 인간적인 성격을 소유한데다 물질(금전)에 연연하지 않는 처신으로 상당히 양심적이고 능력이 있는 분이었다.

그 교수는 모 학회 활동에 열정적이었고 연륜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회장 물망에 올랐고 실제로 회장에 당선됐다. 회장이라는 감투 때문일까, 만나자는 대기업 간부들이 늘어났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기도 했다. 학회장인 그에게 이런 저런 환경공사 평가(심사)를 요청해 오기도 했다.

특히 교수와 대기업 임원이 학회 이사로 구성되어 직·간접적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가까운 두 업체의 간부로 부터 로비비용을 받은 후 일부는 돌려줬으나 일부 미 반환금이 문제가 돼 영어의 신세가 된 것이다.

또 한가지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현재는 고인(故人)이 됐지만, 그는 서울의 모 대학 교수로 잘 나가는 환경학자였다. 그도 메이저 환경학회장을 지냈는데 연간 10억이 넘는 프로젝트가 몰릴 정도로, 환경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고,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쉽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교수가 관여하는 학회지에 업체들이 ‘눈도장용’ 광고를 게재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모습도 기억난다. 그는 프로젝트 연구비용의 문제로 구속됐다가 풀려났으나 그후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마음고생만 하다가 위암으로 별세했다.

욕심을 부리고 부당한 심사나 평가로 특정업체 편들기를 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필자의 지인, 두 사례의 공통점은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단 한번의 약점이 드러나면 주변의 가까운 사람까지 외면하고 사회적 냉대의 수순을 밟는다는 현실이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기업의 목적은 이익을 내는 데 있다. 당장 발등의 불인 수주경쟁에 이기려는 기업의 속성상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교수 연구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박사님’ 소리를 달고 다니던 기업 임원들도 두 사람을 외면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서 환경시설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질 않는다.
그런 소식이 들리면 연루된 환경학자나 환경공무원이 있을테니, 또 나의 두 지인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거 같아 마냥 서글퍼진다. “세상은 정말로 야박합니다”라는 동행인의 말을 뒤로 하면서 또 한번 자기관리에 대한 다짐을 해 보게 된다. “늘 약점을 잡히지 않도록 잘 처신해야겠다고…”

月刊「첨단환경기술」발행인 이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