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기업에 매출 10% 부과...20대 국회에서 폐기처분됐지만 재발의
- 매출 10% 벌금 부과시 삼성전자 제외하고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 크게 초과...회사 '휘청' 자명
- 재계 "당혹, 우려"...전문가들 "위험한 법안...사회적 합의 마쳐야"
더불어민주당이 ‘반(反)기업법'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는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게 연간 매출액 10% 범위 내에서 벌금형을 부과한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기업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나 기업이 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범죄 행위를 한 경우 기업이 벌금, 몰수·추징,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된다. 범죄를 저지른 기업의 연간 매출액 10% 범위 내에서 벌금형을 부과하고, 범죄와 관련해 취득한 금품이나 이익은 몰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고의로 기업범죄를 저지른 경우나 용인했을 때는 손해액의 3배 이하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다. 5년 범위 내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공공사업의 입찰 참여를 제한토록 하는 내용도 있다.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바 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업에 너무 지나친 책임을 부과한다는 지적이 나와 자동폐기됐지만 박재호 의원이 똑같은 내용으로 재발의 한 것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이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여당 중심으로 구성된 21대 법사위는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4선의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며, 17명의 위원들 중 절반 이상인 10명이 더불어민주당이다. 180석을 확보한 여당이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이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매출 10% 벌금 부과법안 통과시 기업존속 힘들어 질 수도
만약 이 법안이 통과돼 국내 매출 상위 10대 기업이 범죄를 일으키고 벌금 최대 상한선인 매출의 10%를 부과하게 될 경우 어떻게 될까.
우선 기업들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다.
본지가 2019년 기준 매출 10대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 매출의 10%를 분석해본 결과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할 경우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크게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30조4008억원의 매출과 27조768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매출의 10%는 23조400억원으로 삼성전자 지난해 영업이익의 82.9%에 이른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매출 10%보다 많지만 다른 업체들은 영업이익이 매출 10%에 턱없이 모자랐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045조7464억원의 매출과 3조605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매출의 10%는 10조5746억원으로 현대차가 3년간 벌어들인 영업이익에 해당한다.
지난해 매출 3위인 포스코의 경우 64조3668억 원의 매출과 3조605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매출의 10%는 6조4366억원이다. 매출 10% 벌금을 부과받는다면 거의 2년치 영업이익을 내야 한다.
다른 업체들도 매출의 10%는 영업이익의 최소 0.5배에서 최대 5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가 아닌 매출의 5%를 벌금으로 부과하더라도 회사가 휘청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모비스, GS칼텍스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영업이익보다 매출의 5%가 더 많았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10대 기업들이 범죄사안에 따라 한해 경영활동으로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최대 5년 치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또 벌금형 부과 외에도 더불어 추진되고 있는 법안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기업범죄 사실에 대한 공개 명령, 공공입찰 참여 제한 등 반기업적 제도들이다. 기업들이 실수로 사고를 일으키게 되면 한꺼번에 심각한 규제가 쏟아지게 된다.
이러면 기업들은 당연히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없고, 심할 경우 회사 존속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이는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들을 속출시킬 수 있다.
이문한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막대한 벌금과 함께 제재조치를 동시에 부과하는 것은 기업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지나치게 가혹한 책임이 부담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또 기업은 주주나 고객, 납품업체 등 이해관계까지 얽혀있는게 사실이다. 해당 법으로 기업에 엄청난 불이익을 주고 극단적인 예로 기업이 무너지는 사태까지 간다면 잘못한 소수를 넘어 다수의 관계자들에게 책임이 전가가 되거나 연대책임까지 발생할 수 있다.
기업들 "매우 우려스럽고 당혹" 한 목소리...전문가도 "위험한 법안"
이러한 법안 추진에 대해 기업들은 매우 부담스럽고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재계에는 순이익의 10%도 아니고 매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때린다는 것은 심하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을 넘어서 기업존속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상 범위를 넘어서서 기업을 범죄자처럼 몰아 굉장히 무거운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활동을 대폭 위축시킬 수밖에 없으며, 특히 대기업들은 회사의 정상적 운영조차 힘들어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러한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들은 안정적인 사업만 영위하면서 사업 위축이 불보듯 뻔하다"며 "적법한 절차, 의사결정을 통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처벌을 받으면 사업추진 자체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에게 피해를 발생시키면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사업추진과정에서 본의 아닌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런 법안은 정치권의 기업 길들이기로 활용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법안이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이문한 전 전문위원은 지난해 검토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커다란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 입법취지에 공감할 수 있다"면서도 "기업 및 기업멉죄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것으로 조정 필요성이 있고, 제정안이 규정하는 벌금형이 과도해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올해 상반기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고,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기살려주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CEO스코어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5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반기 영업이익 40%나 급감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180석이나 차지한 여당이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에게 규제완화는 커녕 기업 죽이기에만 나선다면 정상적 경영활동이 대폭 위축되고 기업들의 투자나 일자리 늘리기 등이 공염불이 돼 경제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며 "범죄를 저지르면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은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될 악법"이라고 말했다.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에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입법과정에서 현실성을 반영하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국헌 기자 lycaon@greenr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