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결혼 및 출산을 기점으로 'L자형' 패턴 나타내"
여성 사회참여 위한 예산 오히려 뒷걸음질...전년 대비 반절 가까이 줄어
UN '9차 국가보고서', "기업 부문 전반에서 조치 부족한 것 우려"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국내 한 대형 패션 회사의 계열사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A씨. A씨의 경력은 올해 10년 차로, 곧 11년 차에 돌입한다. 3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취업해 업무 관련 역량을 쌓아왔지만, A씨는 올해 인사고과에서 승진하지 못했다. A씨는 자신의 승진 실패가 임신과 출산 탓이라고 생각했다. A씨는 얼마 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는데, 앞서 육아휴직을 다녀온 선배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면서, 회사 내부에선 ‘여성 승진’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A씨는 “나보다 연차도 낮고,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성 직원이 승진했다”며 “하지만 내 역량이 부족해서겠지”라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또 다른 패션 회사에서 재직했던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 작은 패션 회사에 취업했던 B씨는 수습 기간 3개월을 마치고, 연봉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B씨는 회사 대표가 제시한 초봉에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직장인 블로그와 해당 회사를 퇴직한 선배에게 전해 들었던 회사의 평균 초봉과 자신의 초봉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B씨는 대표에게 이에 관해 물었고, 대표는 B씨에게 “남자들은 결혼해도 출장을 쉽게 보낼 수 있고,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은데 어떻게 연봉 수준이 같겠냐”며 “근로 계약조건에 불만이 있다면 계약하지 말라”는 답을 남겼다.
한편 C씨는 국내 한 항공사에서 사무장으로 3년가량을 지내다가 퇴직했다. 그는 아이에게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퇴직을 선언했지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복직하려 해도 자신의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일터를 찾지 못해 고민이다. 그는 20대부터 항공사에서 일해왔던 터라 그곳에 복직하고 싶지만, 이미 40대를 훌쩍 넘은 C씨는 경력직 서류 심사에서부터 연이어 ‘광탈’ 중이다.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여성의 ‘무기력 내재화’
여성 근로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경력 단절 및 재취업’이다. 실제로 민무숙의 논문에 따르면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결혼과 출산을 기점으로 급격히 낮아져, 이후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L자형’ 패턴을 그린다.
또한 고학력 여성의 경우 이전보다 수입이 줄더라도, 비정규직으로 하향 취업에 나서는 사례도 빈번하다. 특히 남성과 비교해 ‘하향 취업’은 여성에게서 더욱 흔하다.
한편 무기력은 여성에게서 연거푸 ‘학습’되는 것이 문제다. 육아이건, 가족부양이건 선택적 ‘휴직’ 및 ‘경력 단절’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다만 휴직이나 경력 단절 자체로만 재취업 및 승진에 불리해지는 사회 시스템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여성들이 이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을 제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이 발표한 조소연, 임예윤의 논문 에 따르면 해당 연구에 참여한 참여자들은 ‘경력 단절’로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행복한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가족친화 사회환경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 있어도...기업차원의 실천 위한 ‘연계성’은 부족
국내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20년 12월부터 ‘가족 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친화법)’이 시행돼 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을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시행하고, 예산을 편성해오고 있다. 가족친화법에 따른 ’가족친화제도‘는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제, 시간제 근무 등 탄력적 근무제도 ▲배우자 출산휴가제, 육아휴직제, 직장보육 지원, 자녀 교육 지원 프로그램 등 자녀의 출산·양육 및 교육 지원 제도 ▲부모 돌봄 서비스, 가족 간호 휴직제 등 근로자 지원제도 ▲근로자 건강·교육 상담프로그램 등 근로자 지원제도 등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들은 여성 근로자의 ‘유리천장’을 정조준하고 있진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기업들이 여성 근로자의 ‘재취업’ 및 정당한 ‘승진’을 보장하도록 하는 제도적 ‘연계성’이 뒤처졌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제협력기구 UN(United Nations)에서도 국내에서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국가 계획 및 전략의 설계와 이행이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UN의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 제9차 국가보고서’에 “당사국이 자본 시장, 산업 인프라 부문 등 기업 부문 전반에서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잠정적 특별 조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성가족부의 ‘여성 인재 양성 및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지원은 올해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해당 사업은 사회 각 분야의 여성 인재를 발굴·확충하기 위한 것인데, 지난 2023년엔 예산이 6억8600만원으로 추격됐지만 반면 올해 예산은 3억86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에 여성 근로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와 기업 간의 ‘소통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특히 UN의 ‘대한민국 제 9차 국가보고서’에서도 “당사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요 회원국으로서 산업, 혁신 및 인프라에 관한 지속가능발전목표 9번에 따라 민관협력 내 적극적 조달과 핵심 경제 부문의 투자 예측뿐만 아니라 ‘유엔(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을 장려하기 위해 민간 재원을 끌어내기 위한 규제 정책을 개발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서영광 기자 marke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