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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닛산과 혼다의 합병이 결렬되며, 폭스콘(foxconn)이 닛산을 인수할 경우 자동차 업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폭스콘은 TSMC를 잇는 대만 시총 2위 기업으로,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OEM 회사다. 대외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아이폰 뿐 아니라 IBM, 인텔, Dell, Lenovo 등 글로벌 PC제조사에 부품을 납품하며, 메인보드 생산에도 강점이 있다.
폭스콘은 자동차 전동화가 본격화되며 '전기차 위탁생산(OEM)'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들고 시장에 야심차게 진출한 바 있다. 2021년 대만의 자동차 제조사인 위룽자동차와 합작해 만든 폭스트론이 그 결과물이다. EV업계의 폭스콘, TSMC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최대 車OEM 기업? 폭스콘의 야망, 실현 가능할까
자동차는 위탁생산이 흔치 않은 몇 안되는 산업이다. 품질 관리, 기술 유출 방지, 공급망 통제가 브랜드의 핵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공장을 직접 운영한다.
폭스콘은 이 부분을 공략하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연기관에 비해 기술이 단순한 전기차는 기업들이 굳이 낮은 제조 마진률, 노조 리스크를 안고 직접 공장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에서다.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는 부품수가 1/3에 불과하다. 본사는 디자인과 브랜딩,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고 생산은 인프라가 저렴한 폭스콘에 위탁하면 전반적으로 차량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폭스콘의 비전이 생각보다 현실성은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우선 EV전환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폭스트론이 등장한 2021년도만 하더라도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로 전환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의 골이 예상보다 깊어지고 반(反)친환경적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한동안 하이브리드 중심의 내연기관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동차는 다른 제조품과 달리 안전 이슈가 결부돼 있다. 폭스트론에서 자체 브랜드로 내놓은 차량이 품질 면에서 인정을 받아야 그 다음 스텝을 논의해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큰 성과가 없다. 폭스트론은 Model V부터 시작해 B,T,E,C 등 알파벳으로 네이밍된 다양한 자체 브랜드 전기차종을 공개했지만 중화권을 제외하고는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자동차 시장이 이미 과포화되어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0년대 이후 생겨난 전기차 브랜드들은 열손가락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중국만 해도 BYD, 샤오펑, 지커, 니오, 리오토, 아크폭스 등의 브랜드들이 생겨났고 유럽과 중동에서도 많은 브랜드들이 탄생했지만 대부분 제대로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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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인수한다면 이야기 달라져, 폭스콘에게 딱 맞는 매물
앞서 언급한 한계점을 타개할 대책으로 가장 유력히 거론됐던 것이 닛산 인수다. 닛산이 그간 쌓아온 신뢰도와 전세계적인 판매망을 통해 폭스트론이 글로벌 시장에 보다 쉽게 침투한다는 전략이다. 예를들어 닛산의 대표 전기차 모델인 아리야(Ariya)와 리프(Leaf)를 폭스콘이 생산한다면 간단히 품질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닛산이 이미 보유한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기술을 통해 전기차 캐즘이 회복되기까지 회사를 운영할 동력도 만들 수 있다. 현재 닛산은 적자 기업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지만 몇 십년동안 쌓아온 내연 기술력과 글로벌 판매망은 무시할 수 없다. 폭스콘이 원(原) 목표인 전기차 위탁생산 시장을 구축할 동안 닛산을 단초삼아 업계 노하우를 쌓는 것 역시 기대할만한 시너지다.
마이크로소프트car, 구글car, 애플car... 폭스트론 통해 현실화될 수도
폭스콘이 만약 전기차 위탁생산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다면 전기차 제조의 진입장벽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진다. 하나의 뾰족한 브랜딩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IT공룡들의 자동차 시장 진출을 눈여겨볼만 하다. 애초부터 폭스콘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 막강한 소프트웨어 파워를 가진 기업들을 주된 클라이언트로 노렸다. 전기차는 더이상 하드웨어 싸움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싸움이라는 판단에서다.
폭스콘의 산업 모델은 그간 자동차 업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업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 지 예의주시할 만 하다. 폭스콘은 3%라는 낮은 마진율을 고수하고 있는 점, 80만 명이라는 인해전술식 제조 인력고용, 무엇보다 노조 이슈가 없다는 막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전자제품만으로는 더이상의 성장을 도모할 수 없는 폭스콘 입장에서 전기차 제조업은 포기할 수 없는 차세대 먹거리다. 폭스콘은 현재 닛산 인수 가능성을 부인하며 협력관계를 타진 중이라고 밝혔지만, 당장 닛산을 인수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기회를 엿볼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폭스콘이 닛산 뿐 아니라 혼다, 르노 등 기성 완성차 업체와 꾸준히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