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안면인식, 생체공학, 데이터 암호화 기술 응용
4월 중순 부활절 연휴 직후 오스트리아가 처음으로 봉쇄령을 풀기 시작한 이후 일부 유럽국들은 4월 말과 5월 초부터, 미국의 일부 주는 사회적 거리두기 및 봉쇄령을 단계적으로 완화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미국 소비자들은 마스크 착용, 손 소독, 출입자 명수 제한 규칙을 준수한다는 조건 하에 수퍼마켓, 드럭스토어, 약국 등 필수 영업장을 포함한 중소 거리 상점, 미용실, 동네 레스토랑 및 바에 출입을 할 수 있다.
유럽에서 통상 봄과 여름은 노천 카페와 레스토랑의 최대 영업 대목철이다. 거리 노천 테이블에 앉아 음료수와 식사를 즐기며 일광욕을 즐기는 문화 덕분에 요식업주들은 자치 지역 관할구청에 도로변 공간 사용료를 추가로 부담해 가면서도 노천 테이블을 운영하고 손님들도 웨이터에게 팁을 얻어주더라도 야외 테이블에 앉고싶어 한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그같은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재영업에 돌입해 고객을 기다리는 레스토랑과 바의 야외 테이블들 대다수는 록다운이 부분해제된지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한산하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있는 업계는 호텔/관광/요식업계(hospitality industry)와 그와 연관된 서비스업계다. 의료제약업계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한창인 가운데 구미(歐美)의 테크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특히 관광 및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과 소비자들의 전염병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불식시키고 다시 안전하게 정상 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기약하는 테크 솔루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최근 각국 정부와 기업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코로나 면역 여권제(immunity passport)’다. 말하자면 코로나 검사 및 진단 결과를 개인신원정보와 연계시켜 이 바이러스 항체유무 여부를 증명해주는 생체정보 기반의 ‘디지털 ID 인증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안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당사자들은 대체로 그동안 한국의 코로나19 대처방식을 높이 평가해 온 유럽의 정부와 다수의 직원을 고용하는 민간 업계다.
실제로 영국 왕실령의 저지 섬은 이미 2018년부터 정부 주도의 ‘디지털 신원제’ 추진 정책에 따라 디지털 보건 여권제를 실시하고 있다. 저지 정부가 현재 활용하고 있는 시스템은 영국의 보안 스타트업인 요티(Yoti)가 개발한 디지털 신원인증 플랫폼인 요티 앱(Yoti App)이다.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카드 등 여러 형태의 신분증을 앱 하나에 통합 보관・관리해주고 조만간 코로나 감염 검사 및 면역 조회 기능도 추가될 것이라 한다. 문서 위조나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일회용 QR코드와 디지털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한다. 요티는 현재 자체 개발한 V-보건 여권(V-Health Passport) 시스템을 영국 정부와 민간업체에 공급할 가능성을 논의중에 있다. 도입될 경우 영국 스포츠부는 코로나19로 잠점 중단된 프리미어 리그 축구 경기 행사 재개와 관중 방역관리에 이 디지털 인증제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코로나 면역 인증제는 호스피탈리티 업계의 빠른 재개를 도울 수 있다. 런던에 본사를 둔 AI 얼굴인식 업체인 온파이도(Onfido)는 스위스의 테크 업체인 사이드하이드(Sidehide) 호텔예약 앱과 협력해 호텔 예약손님이 투숙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QR코드 확인을 하는 것으로 투숙객의 코로나19 면역 여부를 조회하는 기술 개발을 완료해 현재 미국 일부 호텔에서 시험중에 있다.
역시 런던의 사이버보안 스타트업인 코비패스(Covi-Pass™)는 생체정보 이미지 암호화하는 독자개발 기술인 V코드(VCode)를 응용한 ’디지털 보건 여권’을 개발해 이미 유럽연합과 유엔의 보건 프로젝트에 실험 검증을 거쳤다. 개인의 병력, 코로나19 면역 상태, 각종 전염병 및 약물에 대한 면역반응 정보를 보관하고 정부 당국이나 기업의 요청시 모바일폰 앱 하나로 간편히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개인 보건력 조회・인증 시스템이다. 코비-패스 측에 따르면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는 물론 미국 등 전세계 여러 정부 외에도 다수를 고용하는 민간 부문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기반 디지털 건강 인증 혹은 디지털 보건 여권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될 문제점도 분명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은 개인 사생활의 침해라는 법적인 쟁점이다. 유럽 연합의 경우, 개인의 사생활 보장과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거나 추적하는 것은 뉘른베르크 헌장의 원칙에 위반된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각 정부가 추진한 예외적 긴급 봉쇄령의 적법성 여부는 논란중이다. 또 디지털 코로나 인증 시스템은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만큼 악의적 해킹과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에 상시 노출돼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의학계는 아직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형성과 면역 반응의 영구성에 대해 확고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변이하는 바이러스의 특성 상 현재 보유한 항체가 변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어떤 면역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5월 27일, 한국식 진단・추적(test and trace) 코로나-19 대응책을 실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 대응 전략은 스마트폰 기반 신종 코로나 자가진단 앱을 이용한 진단→추적→치료하는 한국식 방역 체계를 모형으로 했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은 코로나19 방역 전담 직원 2만 5천 명을 고용해 검사와 추적을 본격화하게 된다. 개인사생활 침해와 공중보건이라는 충돌하는 이해관계의 줄다리기 속에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향한 의학계의 데이터 축적과 연구가 계속되는 동안, 각 나라 정부는 봉쇄 해제와 경제활동 재개를 요구하는 대중의 압력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