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의 한도를 누르면, 부채의 한도가 먼저 온다. 한국전력이 그 한도 앞에 섰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7년 말 한전의 사채 발행 잔액은 76조489억원으로 전망된다. 2028년부터 적용되는 법정 한도는 56조8354억원이다. 차액은 19조2135억원.
한전은 지금 자본금과 적립금의 5배까지 사채를 낼 수 있다. 2022년 재무위기 때 만든 한시 특례다. 그 특례가 2027년 12월31일 끝난다. 2028년부터 원래 한도인 2배로 돌아가면, 19조원어치 공간이 통째로 사라진다.
다급함은 행동에서 드러났다. 한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요금 25조원(삼성 20조, SK 5조)을 미리 내달라고 요청했다. 전기를 쓰지도 않은 기업에 선불을 구했던 셈이다. 두 회사는 거절했다.
걷는 일도 쉽지 않다. 홈플러스는 점포 6곳의 전기요금을 두 달째 내지 못했다. 한전은 27일부터 30일까지 순차적으로 단전을 예고했지만, 실제로 끊기는 쉽지 않다. 전기가 끊기면 소방법상 건물 전체가 영업을 멈춰야 하고, 점포마다 남은 입점업체 10여곳까지 함께 문을 닫는다. 받아야 할 돈은 분명한데, 받자고 수십 곳의 생계를 세울 수는 없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은 결국 요금을 말했다. 지난 19일 국정감사에서 그는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을 정부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내놓은 건 해답이 아니다. 한도다.
김 사장은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산업통상자원위원장과 국토교통위원장을 지낸 뒤, 2023년 9월 한전 첫 정치인 출신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 이력이 이번 발언의 이유는 아니다. 그를 설명하는 건 경력이 아니라 숫자다.
3년 임기는 이미 끝났다. 후임 인선이 진행 중인 지금, 그는 사실상 마지막 국감에 출석해 이 말을 남겼다. 떠나는 사람이, 남는 숫자를 설명하고 갔다.
같은 시기 정부도 흔들렸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국회 보고를 연말에서 내년 초로 미루면서, 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전망을 손보겠다고 했다. 그 전망은 지난 4월 4.0GW에서 8월 11.9GW로, 넉 달 만에 7.9GW 뛴 숫자였다. 얼마나 지을지부터 다시 정해야, 얼마가 드는지도 다시 나온다.
한전이 2038년까지 전력망에 쏟기로 한 돈은 72조8000억원이다. 이 중 어디까지가 확정 수요고 어디까지가 전망의 거품인지는, 아직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정부가 석유값을 눌러 생긴 손실도 결국 재정으로 돌아왔다. 가격을 누른다고 비용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기름에서도 전기에서도 같다.
2027년 말 76조489억원. 2028년 한도 56조8354억원. 그 사이 19조2135억원. 김동철은 이 숫자를 감추지 않고 한도를 말했다. 다만 그 한도를 넘는 일은 이제 그의 몫이 아니다. 후임자와 정부의 몫이다.
가격의 한도를 누르면, 부채의 한도가 먼저 온다. 한전은 지금 그 한도 앞에 서 있다. 그 자리에, 이제 다른 사람이 설 것이다.
이충진 기자 hot@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