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지배했던 '탄소 문명'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경제학자가 “이제 탄소 문명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10일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가 주최한 ‘기후위기 극복-탄소 제로 시대를 위한 그린뉴딜 토론회’에서 화상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앞으로 20년 안에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며 “3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을 한국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리프킨 교수가 꼽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그는 ‘불평등’에 방점을 찍었다. 리프킨 교수는 “현대는 최악의 불평등 사회”라고 진단한 뒤 “실제 세계 8대 부자의 부를 합하면 전 세계 35억 명의 부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지독하게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인류는 여러 차례 산업혁명을 거쳐왔다고 강조했다. 그 원천은 크게 세 바퀴로 정리했다. ‘커뮤니케이션+에너지+운송’이란 바퀴가 그것이다. 영국이 1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는데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증기인쇄·전보, 에너지에서는 석탄, 운송에서는 철도로 혁명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2차 산업혁명은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라디오·텔레비전+석유+자동차’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재생에너지+전기와 연료전지 자동차’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에 대해 리프킨 교수는 “3차 산업혁명을 이끌 충분한 여건이 충족된 나라”라고 평가한 뒤 “다만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화석 연료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국가 중 하나로 화석 연료 의존성에 있어서 세계 3, 4, 5위안에 든다”고 비판했다.
실제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를 보면 여전히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하고 있다. 두산중공업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석탄발전시설 관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호주산불 피해자들이 우리나라 기업을 대상으로 호주 석탄 투자를 중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IBK 기업은행, 한화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호주 애봇포인트 석탄 터미널(AAPT)에 투자했다.
리프킨 교수는 “화석 연료 문명이 붕괴하면서 수조 달러 규모의 좌초자산이 발생하고 있다”며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의 균등화 발전비용이 천연가스·석유·원자력·석탄보다 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길지 않은 시기에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해 만드는 전기가 더 값싸게 생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시대가 되면 천연가스·석유·원자력·석탄 기반 발전은 ‘좌초재산’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리프킨 교수는 “한국은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한국은 여전히 구식 에너지 체제에 묶여 있고 전환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도 많은데 한국전력은 매우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새겨들을 부분이다. 굳이 세계적 석학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흐름을 읽어야 한다. 인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화석 연료 투자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 아니라 변화하는 미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탄소 문명’이 종말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화석 연료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 투자는 위험성은 물론 현지 주민의 심각한 반발도 예상된다. ‘좌초자산’이 될 게 뻔한데 투자하는 것은 정신 나간 투자이다.
먼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어도 한 치 앞은 내다보는 투자가 돼야 한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라는 위기 앞에 기업 투자 포트폴리오도 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