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축제는 끝났다②] '진정한 위기의 시작' 철강업이 도태되는 진짜 이유는
상태바
['철' 축제는 끝났다②] '진정한 위기의 시작' 철강업이 도태되는 진짜 이유는
  • 김국헌 기자
  • 승인 2020.11.24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전세계적인 환경규제...제조업 분야 온실가스 배출 1위가 철강
-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다양한 철강 대체재들의 위협
- 지속되는 철강 공급과잉으로 인한 협상 지위의 변화...이익내기 갈수록 어려워져

많은 철강업계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철'의 전성시대는 끝난 지 오래며, 다시는 호황기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가득하다. 한 때 최고 유망 굴뚝산업으로 명성을 떨쳤던 철강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하향산업으로 가고 있는 철강업의 현재 위치를 생각할 때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의 과감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철강사들이 처한 현실과 배경, 각사의 선택과 전망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철' 축제는 끝났다①]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업계 '10년 암흑기'로 고전
['철' 축제는 끝났다②] '진정한 위기의 시작' 철강업이 도태되는 진짜 이유는
['철' 축제는 끝났다③] 포스코든 현대제철이든 안변하면 '도태'

철강업의 위기는 2000년대 후반 중국의 폭발적인 철강 생산능력 증대로 인한 글로벌 공급과잉이 가장 중대한 원인이었으나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산업 패러다임 구조변화로 인한 진정한 위기가 시작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위기 1. 전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환경규제...제조업 온실가스 배출 1위가 철강 산업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환경규제다.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에 이어 일본과 우리나라 등이 2050년까지 실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철강산업의 탈탄소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철강업은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간주되고 있다.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철강업체들은 제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37.3%를 차지하고 그 뒤를 이어 석유화학업종이 30.8%를 차지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최대 배출하는 산업체로써 각종 환경규제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환경규제로 인한 경영리스크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철강업계란 얘기다. 지난해 6월 발생한 사상초유의 고로 가동중단 사태가 대표적이다. 

고로 블리더. 철강업계는 환경이슈로 10일 고로 조업중지라는 초유의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6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나란히 대기오염물질 배출 등을 이유로 환경부와 지자체로부터 ‘조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환경부, 전남도와 경북도 및 충남도, 환경단체 등이 이뤄낸 합작품으로 두 제철소가 고로 블리더를 개방해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했다는 게 이유였다.

블리더는 고로 내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안전밸브로 전세계 철강사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장치였다. 조업정지 기간은 열흘이지만 이는 철강업계에 치명타로 작용하는 조치가 될 수 있었다. 고로는 5일 이상 가동을 멈추면 쇳물이 굳어져서 재가동에만 수개월이 들어간다. 재가동까지 투입되는 비용만 8000억원이 넘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현대제철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3313억원이었다. 

다행히 포스코, 현대제철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낸 10일 조업중지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서 위기는 일단락됐다. 환경부 민관협의체는 지난해 9월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고로 블리더 개방을 인정하되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 사태는 철강업계에 환경리스크가 회사 문을 닫게도 만들 수 있다는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철강업계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포스코는 대기오염 물질 감축을 위해 내년까지 1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현대제철은 온실가스 저감과 환경개선을 위해 2017년부터 내년까지 총 50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수천억원에서 1조원 이상 들어가는 환경관련 비용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사들의 실적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비용을 투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환경 규제가 새로 생겨날 것이고, 그 때마다 환경비용을 투입해야 할 공산이 크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확정될 경우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계는 이산화탄소 배출 등 환경 문제와 관련된 한층 강화된 규제를 맞닥트릴 공산이 크다.

철강업계를 위협하는 또 다른 환경관련 비용은 '탄소배출권'이다.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탄소배출권의 톤당 가격은 4만원대를 훌쩍 넘은 상태다. 2018년 2만원 대보다 두배가 뛰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이 과거에 배출한 온실가스양을 기준으로 배출 허용량을 배정받고, 이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다른 기업에서 배출권을 사 차이를 메우는 제도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사업계획에 탄소배출권 구매비용으로 수천억원을 반영하고 있다. 향후 탄소배출 거래제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3차 계획기간으로 확대운영되면 철강사들의 배출권 구매비용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에 있어 환경리스크는 '돈 잡아 먹는 하마' 격인 셈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선진국들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이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철강업체들은 생존을 위협당하게 될 것"이라며 "문제는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설명자료.(환경부)
탄소배출권 거래제 설명자료.(환경부)

위기 2.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다양한 철강대체재들의 위협

두번째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다양한 철강대체재들의 위협이다. 

자동차의 경우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가 업계 최고 이슈로 떠오르면서 경량화 요구가 거세졌다. 이로 인해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강화플라스틱, 탄소섬유 등 다양한 대체제가 자동차에 적용되면서 철강재의 자리를 뺏고 있다. 또한 차세대 자동차로 낙점받은 전기차와 수소차에는 자동차강판이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적게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중장기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알루미늄이 위협적이다. 알루미늄은 대표 경량 비철금속으로 차강판으로 사용시 40% 경량화가 가능하며 내식성과 열전도성도 우수하다. 가격이 높은 것이 흠인데 현재 관련 기술개발이 속도감있게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더커 월드와이드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북미 자동차 시장 내 경량 트럭 및 SUV, 전기차 부분을 중심으로 알루미늄 소재 도입이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까지 차량당 평균 알루미늄 도입량은 256kg 수준으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탄소섬유도 철강재 대비 50%, 알루미늄 대비 30% 이상 경량화 효과가 있지만 가격이 높아 자동차 차체보다는 부품 분야에서의 채용이 늘고 있는 추세다. 탄소섬유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들의 기술력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철강업계로써는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해 6월 국내에도 출시된 영국의 슈퍼카 맥라렌 720S는 탄소섬유를 자동차 루프까지 적용해 차체무게를 확 줄였다.  

가전산업도 마찬가지 흐름을 보인다. 소비자들의 구매욕구와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고급 제품이 계속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철강재보다 다양한 다른 신소재들의 채용이 늘고 있다. 과거 TV에는 EGI(전기아연도금강판) 등 냉연도금제품들이 상당량 사용됐지만 지금은 철강수요가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앞으로도 OLED, QLED TV들이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제품들은 점점 얇아지는 추세여서 철강재 사용량 급감이 예상된다. 이 밖에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 제품들도 신제품이 나올 수록 철강재 사용량이 줄어들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철강재가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합리적 소재인 점은 맞지만 향후 다양한 대체재들의 등장으로 철강재 수요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기 3. 철강 지속 공급과잉으로 인한 협상 지위의 변화..."이익내기 더 어려워진다"

세번째는 지속되는 철강 공급 과잉으로 인한 협상력 약화의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세계 철강 생산능력은 23억6250만톤으로 2018년의 23억2840만톤보다 1.5% 증가했다. 철강 생산능력이 전년보다 증가한 것은 2014년 이후 5년 만이다. 철강 생산능력은 2015년 -0.4%, 2016년 -0.4%, 2017년 -0.7%, 2018년 -1.0% 등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다. 올해부터 2022년까지 세계 각국이 5820만톤의 생산능력을 확충할 예정이며, 투자 계획에 따라 2010만톤이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2022년에는 전체 철강 생산능력이 24억2060만∼24억4080만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글로벌 철강 수요는 생산능력에 턱없이 모자란다.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철강 수요가 작년보다 6.4% 줄어 16억5400만톤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생산능력이 수요를 7억톤이나 초과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주요 철강 수요 산업이 침체한 탓이 크다. 내년에는 철강 수요가 점차 회복하면서 3.8% 늘어난 17억1천700만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전망대로라고 해도 여전히 공급량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공급과잉과 대체재 위협은 지금까지 철강 업체들이 누려온 협상 지위의 변화를 요구한다. 2000년대 중후반 후판 공급부족이 지속되고 조선업 호황이 이어질 때 조선용 후판 가격은 톤당 140만원을 웃돌았다. 이렇게 비싼 가격임에도 조선사들은 배를 짓기 위해 포스코, 동국제강 등 후판 제조사들에게 읍소했다. 공급자 우위 시장은 당시 포스코가 분기 영업이익률 20% 이상을 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선사들은 일본산, 중국산 후판으로 대체한다며 후판가격 인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조선용 후판 가격은 톤당 70만원대로 10년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현재 후판 사업부문은 적자상태이거나 마진이 거의 없는 상태로 추정된다. 자동차강판 역시 가격인상이 쉽지 않다. 완성차 업계 부진이 이어지면서 수 년째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철강업황이 공급자 우위의 시장에서 수요자 우위의 시장으로 바뀌면서 포스코는 이미 2010년대 초반 철강재 가격 공시제도를 포기했다. 과거 포스코는 정기적으로 철강가격 인상, 인하를 결정하고 시장에 통보해왔지만 개별 수요 차원의 협상이 많아지면서 가격공시가 무의미해져 버렸다. 조선업계, 자동차업계 등이 협회 등을 통해 입을 모아 가격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격협상권을 잃게되면 철강사들의 마진은 더욱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공급은 넘쳐나고 대체재도 많아지고 있는데 수요까지 줄면서 철강사들의 협상 지위는 나날이 약화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어보인다. 철강업으로 이익을 창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공급과잉, 수요 감소로 공급자 우위의 시장에서 수요처 중심으로 힘이 이동하며 철강사들이 가격협상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는 마진확대에 치명적 악재"라고 평가했다. 

지난 2017년 8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자 한국철강협회 회장은 '스틸 코리아 2017' 행사에서 "세계 철강 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신(新)보호무역주의 확대, 제조업 패러다임 시프트에 따른 철강 수요구조 변화 및 대체재의 급부상 등 경영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상황은 3년이 지난 현재 더욱 가속화됐으며, 그동안 철강사들이 핵심적이고 발빠른 대응을 해왔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김국헌 기자  lycaon@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