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후 금융상품 가입불가 기간 연장해야”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의 지원을 위해 설립된 국책은행임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업계의 주장이 제기됐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불공정 행위인 ‘꺾기’를 조장하고 있으며, 대출 계약 후 1개월 뒤에는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다는 점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꺾기란 은행권이 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예적금, 보험, 펀드 등의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불건전 구속성 행위다. 금감원은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대출 후 1개월 이내 대출금액 1%를 초과해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행위를 꺾기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금융소비자금지법(금소법) 개정으로 인해 금지 기간이 기존 10일에서 30일로 연장됐으며, 예적금뿐만 아니라 보험, 펀드 등의 금융상품도 금지 대상이 됐다.
하지만 30일이 지난 이후에는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어, 이를 유도하는 편법 꺾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국감원은 꺾기 의심거래를 31일부터 60일 사이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경우로 보고 있으며 정기검사와 수시검사를 통해 은행권의 꺾기를 적발하고 있다. 꺾기가 적발되면 해당 금융기관과 직원에게 자율조치나 주의, 최대 1억원의 과태료 등의 제재를 내리게 된다.
박재호 국회의원이 금융감독원에게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6개 시중은행의 꺾기 의심거래 수는 총 92만4143건으로, 그 중 기업은행이 31.8%의 비중과 29만4202건을 기록하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의심거래액은 전체 53조6320억원이며, 기업은행은 37.4%의 비중과 20조560억원 규모였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꺾기 의심거래에 대한 공식입장은 아직 밝히기 힘들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라는 국가 재난 상황과 최근 대출금리 인상으로 인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대출을 받을 때 금융상품 같은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최근 자금조달이 어려워 기업은행에 대출을 받기 위해 방문했으나 적금 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 대출이 어렵다는 식으로 얘기해 대출을 포기했다”며 하소연했다.
박재호 국회의원은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대출기관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나가는 행태를 보였다”며 “은행 자체의 자성과 금융당국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일각에서는 기업은행 자체가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고 소상공인 및 개인사업자들도 많은 편이기 때문에, 의심거래 수 또한 표면적으로 많아 보이는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을 위한 국책 은행이기 때문에 기존의 법보다 더 엄격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3월 금소법 개정 때에도 대출 후 금융상품 가입금지 기간을 1개월로 두기엔 너무 짧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존보다 기간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택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