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석화, 박찬구 회장 퇴진 후 박준경 사장-박주형 부사장 역할 커져
- DB그룹, 김남호 회장 체제 이후 김주원 부회장의 글로벌 사업 맡아
- CJ그룹, 이재현 회장 이후 준비 작업...이경후-이선호 경영수업 나서
- 깨끗한나라, 장녀 최현수 경영나섰지만 아들 최정규 소유 가능성
금호석유화학의 박준경 사장과 박주형 부사장, DB그룹의 김남호 회장과 김주원 부회장 등 최근 재계는 '남매경영'이 큰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간 재계의 남매경영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등이 대표적 사례였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최근 재계 트렌드는 이재용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외동아들이 많아 경영승계 걱정이 사라지며 '무혈입성'이 됐다"면서 "대신 여성도 경영에 참여의 길이 열리면서 '남매경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어 아버지가 생존 때 승계구도 정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재계 3세 경영 시대를 맞아 '남매경영'이 증가 추세인 가운데 금호석유화학, DB그룹, CJ그룹, 한진그룹 등에서 남매경영이 등장하며 관심을 받고 있다.
우선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지난 5월 박찬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면서 장남 박준경 사장(1978년생)이 사실상 3세 경영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범 금호가(家)의 3세 경영 시대를 의미한다.
박찬구 회장은 75세 나이로 고령이라는 점에서 무보수 명예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박준경 사장의 후견인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다. 박찬구 회장은 지난 2018년 12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후 여러 소송이 진행된 가운데 2025년 말까지 취업이 제한됐다.
박준경 사장은 금호타이어를 거쳐 2010년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했다. 지난해 12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안정적인 매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은 데 따른 것"이라며 "대주주인 만큼 책임경영체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준경 사장의 여동생 박주형 부사장(1980년생)도 지난해 12월 승진했다. 지난 2015년 상무로 입사한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 했다.
박주형 부사장이 범 금호그룹 사상 첫 여성 CEO가 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그간 범 금호가에선 여성의 경영 참여가 배제돼왔다. 박찬구 회장은 "딸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선 금호석유화학은 남매경영 정착 이후 사업분할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준경 사장이 석유화학 계열사를, 박주형 부사장이 레저 계열사를 맡을 것이란 구체적 밑그림도 설왕설래한다.
DB그룹(옛 동부그룹)은 김남호 회장(1975년생)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2020년 7월 부사장에서 회장에 초고속 승진했다.
김남호 회장은 김준기 창업주의 장남이다. 지난 2009년 DB그룹에 입사해 동부제철과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에서 생산·영업·공정관리·인사 등 각 분야 실무경험을 쌓아왔다.
김준기 창업주는 지난 2017년 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돼 회장직을 내려놨다. 2019년엔 가사도우미에 대한 피감독자 간음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2021년부터 미등기임원(경영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김주원 부회장(1973년생)은 지난해 7월 그룹 부회장 겸 해외담당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김남호 회장의 누나이자 김준기 창업주의 장녀다. 2021년부터 DB하이텍 미주법인 사장으로 해외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DB그룹 측은 "대주주 책임경영 차원에서 그룹의 해외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주원 부회장은 지난 5월 30일 서울 강남 DB금융센터에서 도빈꽝 베트남 T&T그룹 부회장과 만나 '전략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베트남 시장 진출에 나서는 등 경영 전면에서 활약이 늘어나고 있다.
"경영 3세는 유연한 수평적 사고는 물론 해외유학 등 준비된 글로벌 인재가 많아"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자녀가 '3세 경영 수업'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현 회장의 장녀 이경후 경영리더(1985년생)는 2011년 CJ에 입사했다. 현재는 CJ ENM 브랜드전략실 소속으로 드라마·영화·공연 등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경후 경영리더는 OTT 플랫폼 '티빙' 해외진출 등 CJ ENM에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전망이다. CJ ENM은 '글로벌 토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이재현 회장의 아들 이선호 경영리더(1990년생)는 2013년 CJ에 입사한 후 2016년부터 CJ제일제당에서 바이오·식품전략·글로벌비즈니스 등을 담당했다. 지난해부터는 식품성장추진실 산하 식품전략기획1담당으로 미주·유럽·아시아 등 해외 전반을 포괄하는 전략기획과 신사업 투자에 나섰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글로벌 전략제품 개발은 물론 그룹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지난 2019년 조양호 2대 회장이 별세한 이후 조원태 회장(1975년생)이 취임했다. 조원태 회장은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 조현아 전 부사장은 경영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조원태 회장의 여동생 조현민 사장은 지난해 1월 한진 마케팅 및 디지털플랫폼사업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3월에는 사내이사가 되면서 책임경영이 강화됐다. 디지털플랫폼사업본부는 한진의 플랫폼 기획 및 운영과 함께 글로벌 물류와 친환경 활동을 전개한다. 다만 '물컵 갑질' 등 물의를 일으켰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신에 성공할 것인지 관건이다.
깨끗한나라의 경우 최병민 회장에 이어 장녀 최현수 사장(1979년생)이 대표이사로 활동 중이다. 최현수 사장은 2006년 깨끗한나라 마케팅부에 입사했다. 경영기획실장, 생활용품사업부장 등을 거쳐 2020년 3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재계에선 최병민 회장이 최현수 사장에게 일단 회사 경영을 맡겼지만 결국 경영권은 막내아들이자 장남인 최정규(1991년생) 사내이사에게 물려줄 것이란 관측이다. 깨끗한나라는 '장자승계' 원칙을 지키고 있는 LG그룹과 사돈관계 기업이다.
이미 기업 소유권은 최정규 이사에게 쏠려있다. 최정규 이사의 지분은 16.12%(600만2594주)로 최현수(7.63%) 사장 보다 2배 이상 많다. 차녀 최윤수 온프로젝트 대표의 지분(7.62%)을 합쳐도 부족하다.
김동한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1970년대생이 대거 등장하는 경영 3세는 유연한 수평적 사고는 물론 해외유학 등 준비된 글로벌 인재가 많다"며 "충분히 실무적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갖춘 만큼 선대 스탭들과의 조화, 성장동력 확보 등 경영능력 검증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