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뇌사 판정 30대 여의사, 5명에게 장기 기증으로 '새 삶' 선물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30대 여의사가 장기기증으로 5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져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이은애 임상 조교수로, 뇌출혈(지주막하출혈) 진단을 받은 뒤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이 씨는 지난 3일 오후 여의도 근처에서 친구들과 식사 중 머리가 아파 화장실에 갔고, 구토 후 어지러움을 느껴 화장실 밖 의자에 앉아 있던 중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근처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회복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아픈 환자를 돌보기 위한 사명감으로 의사가 된 고인의 뜻을 받들고, 마지막까지 사경을 헤매면서 생사의 기로에 있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어렵게 장기기증 결정을 내렸다.
6일 오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됐고, 심장, 폐장, 간장, 신장(2개)의 뇌사자 기증으로, 총 5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나누어 주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고인의 부친은 “뇌사라는 말에도 믿을 수 없어 깨어날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살던 딸이 생의 마지막까지 의사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장기기증을 어렵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뇌출혈로 잘 알려진 지주막하출혈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뇌의 심각한 질환이다. 외상, 고혈압, 뇌동맥류나 뇌혈관 기형 등으로 인한 뇌동맥류 파열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예방책은 규칙적인 운동은 물론 담배와 술을 멀리해야 한다. 40세 이후에는 건강검진 목적으로 뇌혈관 CT 또는 MR을 통해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 기온이 떨어지면 뇌출혈 위험도가 높아진다. 특히 고혈압 환자는 체온 유지를 위해 혈관이 수축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고혈압을 오래 앓아 동맥경화증이 발생한 환자는 뇌출혈 발병도 쉬워 요즘 같은 겨울철은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뇌출혈은 팔이나 다리가 저리고 갑작스러운 두통 증상이 따른다. 또 발음이 어눌해지고 어지럼증과 더불어 물체가 겹쳐 보이거나 흐릿해지는 시각 장애 등이 나타난다.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동맥류성 지주막하출혈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하고 긴급한 질환이다. 이 질환을 앓은 환자 중 최소 25%는 사망하며 생존자 중 약 50%는 신경학적 결손을 갖는다고 전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10만명 당 6.7명에게 발생하는데 국내에서는 10만명 당 9명에게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동맥류성 지주막하출혈 후 발생하는 뇌혈관 경련은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가 중요한 대표적인 합병증이다. 지주막하출혈로 치료받은 환자의 사망 위험을 두 배 증가시킨다. 이로 인해 국소마비, 언어장애, 의식저하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뇌혈관 경련은 65세 이상에서 발생 위험이 크며 젊은 환자에게서 더욱 심하게 발생하는 양상을 보인다.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뇌혈관 경련 예방 신약이 조만간에 선보일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독은 동맥류성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뇌혈관 경련 예방 신약 ‘피브라즈’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취득했다. 피브라즈의 품목허가는 이도르시아 파마수티컬스(IPK)가 보유하며, 한독은 2008년 국내 임상 수행 및 품목 인허가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해왔다.
피브라즈(성분명: 클라조센탄)는 선택적 엔도텔린 A 수용체 길항제로 동맥류성 지주막하출혈을 위해 개두술(clipping) 또는 시술(coiling) 처치를 받은 성인에서 뇌혈관 경련 및 뇌혈관 경련과 관련된 뇌경색, 뇌 허혈성 증상의 예방을 적응증으로 한다. 뇌혈관 경련과 이로 인한 합병증을 함께 예방하는 약제로 국내 허가를 받은 것은 피브라즈가 처음이다.
이번 피브라즈 허가는 일본에서 진행된 2건의 임상 3상을 주 근거로 하고 있다. 3상 임상은 동맥류성 지주막하출혈 후 클리핑 수술 또는 코일링 시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기관, 이중맹검, 무작위배정, 위약군 대조로 진행됐다.
시험 결과 피브라즈는 지주막하 출혈 발생 6주 이내에 뇌혈관 경련 관련 합병증 발생률 및 모든 원인 사망률을 유의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해당 연구를 통해 피브리즈의 안전성 프로파일을 확인했다.
피브라즈는 한국보다 앞서 2022년 일본에서 허가를 받아 사용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공동으로 진행된 2상 임상 연구에 74명의 한국인 환자가 참여했으며 일본인과 한국인에서의 유효성 및 내약성을 확인했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 박익성 회장(부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지주막하출혈 후 뇌혈관 경련은 사망에 이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증상임에도 약제의 부재로 의료 현장에서 어려움이 매우 컸다”며 “증상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약제인 피브라즈가 국내 허가된 만큼, 환자들을 위해 하루빨리 보험급여가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성기 기자 re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