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원의 디지털 경영] 모순(矛盾): 오른손엔 창을, 왼손엔 방패를 들어라
상태바
[차동원의 디지털 경영] 모순(矛盾): 오른손엔 창을, 왼손엔 방패를 들어라
  • 녹색경제신문
  • 승인 2024.09.25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 ‘모순(矛盾, 창과 방패)’과 관련한 일화가 나온다. 초(楚)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자랑하며 “내 방패는 견고해서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라고 하고, 창을 자랑하며 “내 창은 날카로워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오?”라고 묻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스포츠와 기업경영의 공통점

모순은 ‘무엇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같이 동시에 양립할 수 없는 것, 즉 둘 이상의 논리가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데 정말로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모두 가질 수는 없는 걸까?

한비자는 성군(聖君)의 기준은 여러가지여서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 중에 누가 더 성군인가를 묻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모순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창과 방패는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고, 요의 명찰(明察)과 순의 덕화(德化)는 우열을 가릴 수 없으며, 덕치(德治)와 법치(法治)는 상반되지 않으므로, 법치를 기반으로 덕치를 할 때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파리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스포츠와 기업경영은 닮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양궁은 한쪽 팔이 과녁을 정확하게 겨냥하기 위해서 다른 팔은 굳건하게 버텨줘야 한다. 축구는 공격을 잘하기 위해서 수비가 튼튼해야 한다. 균형이 무너지면 실패하거나 패배한다.

기업경영에서는 성과가 있어야 재무건전성이 유지되고, 재무건전성이 유지되어야 혁신적인 성장을 위한 투자 여력이 생긴다. 왼손과 오른손, 공격과 수비, 투자와 손익, 장기와 단기 모두를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 어느 하나를 택하고 나머지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높아지는 CIO의 위상, 커지는 역할

정보화의 확산에 따라 CIO의 위상은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높아졌다. 이제 CIO는 기업 최고경영진의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잡았고,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보수도 상승 추세다.

고위급 기술 인력을 전문으로 다루는 IT 임원 리크루팅 기업 헬러 서치(Heller Search)의 CEO 마사 헬러에 의하면 CIO와 CTO 등 IT 리더의 보수는 2019년 이후 5년간 20% 이상 증가했으며,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 기업 콘 페리(Korn Ferry)에 따르면 IT 리더의 고연봉 추세는 모든 산업군에서 고루 나타나고 있다.

기업이 CIO에게 예전보다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한다는 것은 기업이 CIO에게 과거보다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기술 역량만으로는 기업들이 선호하는 CIO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일례로, 콘 페리에서는 CIO 후보자를 물색할 때 세 가지 자질을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첫째, 광범위한 기술 스택(Tech Stack)을 잘 다루고 인프라,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익숙한가? 둘째, 여러 부서에 걸쳐 조율하고 협업을 이끌어내는 엔터프라이즈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는가? 셋째, 프로세스의 개선과 효과적인 변화 관리를 주도하고 조직 내에서 사명과 목적을 창출할 수 있는가?

CIO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그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의 깊이와 폭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역시 커졌다. CIO는 항상 투자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기술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인재를 구할 것인지, 어떤 조직체계로 만들 것인지와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 직면하며, 이와 같은 의사결정은 기업의 단기적 장기적 성과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다.

대부분은 시간·공간·자금 등 자원의 한정성 때문에 결정이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한정된 자원의 선택적 취사와 다른 대안의 포기라는 이분법적 의사결정 프레임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CIO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공하는 CIO 되려면 ‘조직 내 파트너십’ 구축해야

CIO가 당면하는 딜레마는 조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IT 투자를 바라보는 CIO와 CFO의 관점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2024년 초 전세계 3천여 명의 CIO와 CFO를 대상으로 한 리미니스트리트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CIO는 기술과 비즈니스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신기술에 주목하고, CFO는 신기술보다는 최대한의 가치(ROI)를 얻는 데 관심이 있다.

대부분의 CIO는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조금 더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IT 투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FO의 80%는 IT 투자가 기업 성과 달성의 필수 동인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지만, 현재의 IT 투자가 비즈니스 목표에 끼치는 영향에 만족한다는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무려 55%는 가치보다 비용이 크다거나, 부정적인 영향 또는 사업목표와 무관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CFO의 85%는 CIO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CFO는 ROI가 기대되는 합리적인 IT 투자에 대해서는 추가 예산을 할당할 의향이 있고, 그 중 약 26%는 이사회를 찾아가 추가 예산을 설득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딜레마를 극복하고 IT 투자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조직 간의 협업, 소통, 목표 조율이 중요하다. 조직 내 파트너십이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CIO와 CFO는 마치 창과 방패처럼 대립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기업의 경쟁우위, 생산성, 장기적 성장 등 더 높은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동반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혁신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설적 역할

PwC에서 네트워크 전략 및 리더십 헤드를 맡고 있는 블레어 셰퍼드는 2020년 출간한 저서 《Ten Years to Midnight: Four Urgent Global Crises and Their Strategic Solutions》에서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리더는 '역설적으로 보이는 특징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리더가 ‘훌륭한 선지자’와 ‘훌륭한 운영자’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기업이 필요로 하는 리더는 두 역할을 모두 아우르는 ‘전략적 실행자(Strategic executor)’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략적 실행자’와 더불어 ‘첨단기술에 정통한 인본주의자(Tech-savvy humanist)’, ‘정직성이 높은 정치인(High-integrity politician)’, ‘전통적 혁신가(Traditioned innovator)’, ‘세계적으로 생각하는 지역주의자(Globally-minded localist)’, ‘겸손한 영웅(Humble hero)’ 등 6가지를 <리더에게 기대되는 6가지 역설적 역할>로 꼽았다.

맥킨지는 오늘날 CEO들이 직면하는 역설적인 의사결정 상황, ‘미래를 위해 혁신하면서 핵심 전통 지키기’, ‘장기적 성과에 투자하면서 단기적 성과 거두기’, ‘스타 인재를 관리하면서 팀워크를 통한 성과 거두기’, ‘결과에 대한 통제력은 유지하면서 권한 위임하기’, ‘역할에 몰두하면서 개인 정체성 유지하기’ 등 5가지 딜레마를 잘 헤쳐 나가는 것을 CEO 역할의 핵심으로 꼽고 있다.

조직역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웬디 스미스와 메리엔 루이스는 공저 《Both/And Thinking》(한글판 ‘패러독스 마인드셋’)에서 요즘과 같은 양극화 시대에 리더는 ‘둘 중 하나’ 사고에서 ‘둘 다 모두’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끊임없이 상반된 요구들에 직면하는 세상에서 ‘둘 다 모두’ 사고를 활용해야 보다 창의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핵심 사업을 잘 관리해야 하고 미래를 위한 혁신도 꾀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뇌는 ‘둘 중 하나’의 선택에 익숙해 대개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한다. 확실한 걸 선택해 불확실성을 없애려는 것인데, ‘둘 다 모두’ 사고법을 활용하면 ‘현재의 핵심 사업을 잘 관리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한 혁신도 꾀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오른손에 창을, 왼손에 방패를 들어라

위나라를 건국한 조조는 한비자의 모순 고사를 두고 “창과 방패를 각각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순이 생긴다. 한 사람이 둘 다 모두 가지고 있다면 대결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창과 방패를 모두 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직립 보행은 양발을 쓰는 기술이다. 직립 보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한 발은 버티고 다른 발은 전진한다. 다음 걸음은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버텨야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버텨야 한다.

모순은 상호대립되어 유지되는 현상이자 창의적으로 극복해나가야 하는 상호보완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모순은 양립할 수 없는 대립이 아니라 둘 다 갖추어야 하는 필수 역량이다.

기술과 비즈니스, IT 투자와 재무적인 성과를 동시에 살피고, 당면한 기술과제와 장기 성장과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CIO는 창과 방패를 양손에 가진 양손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차동원 HNIX 대표/디지털 경영 에반젤리스트 (dongwoncha@gmail.com)

녹색경제신문  gogreen@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