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칼럼] 부실시공 망령에 흔들리는 현대家…'왕 회장의 따귀'가 필요하다
상태바
[인사이트칼럼] 부실시공 망령에 흔들리는 현대家…'왕 회장의 따귀'가 필요하다
  •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기자
  • 승인 2025.02.26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철저한 현장주의자였다. 조선소 건설 현장에서 공정을 지휘하는 모습(출처=아산기념관)
고 정주영 회장은 철저한 현장주의자였다. 조선소 건설 현장에서 공정을 지휘하는 모습(출처=아산기념관)

"왕 회장(고 정주영 회장)이 출장 길에서 돌아오면 헬기장에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아들들(정몽구, 고 정몽헌, 정몽준 등)을 비롯해 그룹 임원들이 도열해 있다고. 그럼 헬기에서 내린 왕 회장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알아? 아들 따귀를 올려붙이는 거야. 그룹 전체 임원들을 이런 식으로 휘어 잡았던 게지."

오래 전 친지 어른이 들려준 일화다. 그는 1970~1990년대 현대그룹에서 청춘을 바친 '현대맨' 출신이다. 그가 직접 겪은 일인지, 상사에게 전해 들은 일인지 알 수 없으나 '현장의 저승사자' 고 정주영 회장의 강단을 말해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경영 후계자에 대한 질책성 '따귀'.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왕조의 훈육법이자 내부 통제의 죽비였던 셈이다. 

건설의 현대가 위기를 겪고 있다. 이번엔 현대엔지니어링발 대형 악재다. 25일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연결작업 중 교각 상판이 무너지면서 1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공동주택 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좀체 사고가 나지 않는 기초 인프라(도로) 현장에서 어이 없는 사고가 벌어진 터라 더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물론 향후 관급 수주경쟁에서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에도 아파트 건설 QC(품질관리)를 두고 도마에 올랐다. 4월 전남 무안군 힐스테이트 오룡 단지 점검에서 외벽이 기우는 건을 비롯해 약 5만 건의 하자가 발견돼 지탄을 받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하자판정(24.3~24.8) 건수에서도 1위를 기록(118건)했다. 모회사 현대건설은 18위(36건)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 소재 중소형 건설사들이 즐비한 가운데 이름을 올린 터라 눈총이 더해졌다. 

건설업계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대형 인프라 공사를 무수하게 시행한 톱티어 건설사의 잇딴 품질관리 실패가 납득이 가지 않는 다는 반응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 9조9809억원으로 4위에 랭크된 회사다. 현대건설은 2위(17조9436억원)였다. 10위에 랭크(5조1272억원)된 범 현대가 HDC현대산업개발의 2022년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고도 이 건을 계기로 재차 회자되고 있다. 

한 시행사 대표는 "현장에서의 사고야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납기와 품질의 현대가 최근 집중적으로 사고를 겪고 있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차 지적됐던 현장 감독과 감리와 분리 문제를 넘어서 전사적인 기강이 해이해 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QC를 집중적으로 손보겠다며 취임한 주우정 대표는 취임 3개월 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일각에서는 건설 경험이 전무한 재무통 경영자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현장과 유리된 경영이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왕 회장으로 돌아가면, 고 정주영 회장은 평생 현장을 강조한 현장주의자였다. '현장에 모든 답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회고록 등에 따르면 그는 실제 검정 지프를 타고 시멘트 공장, 조선소 블록 현장을 불시에 찾아 책임자를 수도 없이 다그쳤다. 따귀를 때리고, 정강이를 차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게 얼마짜리 장비인데...이 공사 당신이 책임질거야?"라는 호통과 함께. 

고령교 공사에서 체득한 현장경영으로 보인다. 고령교 공사는 그가 처음으로 마주한 일대의 위기다. 폭파된 다리를 1953년 재건해 달라는 정부의 발주를 따냈지만, 교각이 홍수에 떠내려가고 파업이 거듭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공사 중단의 위기도 왔지만, 그는 막대한 사채를 써가며 2년 만에 공사를 완성시켰다. 현장에서 살면서 "사업가는 첫째도 신용(신뢰), 둘째도 신용"이라는 말을 한 걸로 전해진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정주영 신화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현대토군사(1947년 설립)'의 DNA를 물려 받은 회사다. 곡절 끝에 현대차그룹의 품에 안겼지만, 엄연히 옛 현대그룹의 적통을 계승하고 있다. 시공평가 톱 5 안에 드는 건설사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대한민국 건설사에서 맏형이자 상징자본 같은 존재이자 건설계의 무수한 기린아들을 길러낸 사관학교"라고 평했다.

최고 경영자가 현장에 붙어 있을 순 없다. 시스템 역시 당시와 천양지차다. 왕 회장이 주는 교훈은 결국 품질경영과 관련된 신뢰다. 신뢰를 잃은 건설사는 존속하기 힘들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번 사고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소실했다. 내부 구성원의 자긍심과 소명의식 역시 마찬가질 터. '완공돼 자동차가 달리던 교량이 무너졌다면?' 이라는 가설은 끔찍하다. 왕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따귀부터 올렸을까? 모를 일이다.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취재팀장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기자  insight@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