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니까 커피 만들어라", "상사에게 고분고분해라"
불평등 이슈 제기하자 데이비드 은 당시 사장 화내기도
[녹색경제신문 = 우연주 기자] 미국에서 삼성전자 계열사들에 제기된 부당해고 소송 과정에서 인종·성별·종교 차별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삼성전자 본사에서 계열사에 디스패처(disaptcher)를 파견해 자회사 면면을 관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사로까지 책임소지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20일 산타 클라라 카운티 법원에 제출된 증인신문에서 삼성 넥스트 전 재직자 A씨는 "삼성전자 미국 사무실에는 인종·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가 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인사팀 고위 간부로서 직원들의 정보를 볼 수 있었는데, 인종과 성별에 따라 임금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증할 자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A씨는 "예를 들어 라틴계 여성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유능했지만 월급이 적었다(underpaid). 이 여성들은 이 사안에 관해 내가 있을 때에도, 내가 있기 전에도 문제 제기를 했지만 고위 임원들은 무관심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A씨가 임금 불평등에 대해 논의하려고 하면 고위 간부들은 "'놀랍지 않다. 들은 적 있는 이야기다"고만 반응하거나,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며 급히 대화 주제를 바꾸기도 했다.
A씨가 문제제기를 계속하자 데이비드 은(David Eun) 당시 삼성 넥스트 사장과 자코포 렌지(Jacopo Lenzi) 당시 삼성 넥스트 부사장이 화를 냈다(upset)는 증언도 있었다.
렌지 부사장은 불평등을 문제 삼는 여직원들을 해고하고 싶어했는데, A씨가 이를 방해해 화가 났다는 것이다.
A씨는 "은 사장이 우리(인사팀)가 조사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 화를 낸 기억이 있다"고 진술했다.
증인신문에 따르면 은 사장은 이러한 A씨에게 '윗 사람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남성 고위 임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질책하기는 커녕 상사에게 순종하라고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지시를 한 것이 은 사장이냐"고 묻자 A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삼성 리서치 아메리카(SRA)에서도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SRA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담당한 B씨는 "한 흑인 지원자의 면접을 봤는데, 상사 C씨가 거절했다. 이유를 묻자 B씨는 '흑인이니까'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B씨는 "당시 흑인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SRA에는 '흑인과 백인 안 됨(non-black, non-white)'라는 채용 원칙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B씨는 "C씨가 구체적으로 '흑인과 백인은 안 된다'는 원칙을 말했다. 대면 미팅에서는 3~4회, 화상 회의에서도 한 번 그렇게 말했다. 동석한 다른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드라마에서 볼 법한 광경이 2010년대 후반에 펼쳐지기도 했다.
B씨는 "다른 고위 간부 D씨가 어느날 나에게 팀원 전체를 위해 커피를 만들어라고 시켰다. 왜냐면 내가 팀의 유일한 여성이고, 우리 팀에는 8명의 남성 팀원들이 있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나에게 커피를 만들어라고 시킨 것"이라고 증언했다.
문제제기를 한 사람에게는 보복이 뒤따랐다.
B씨는 C씨에게 '흑인이라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으면 차별이다'고 지적했는데, 이후 C씨는 B씨 몰래 회의 시간을 변경하거나 취소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B씨로 하여금 '카페테리아의 주방 후드 청소를 계획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면근무를 강요하기도 했다.
종교를 이유로 해고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에서 근무하던 E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2020년 유튜브를 개설했다.
어느날 이를 언짢게 여긴 직원이 회사 전체에 단체 메일을 보내 E씨의 개인 SNS 활동을 지적했고, 이후 E씨는 높은 고과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12월 해고됐다.
E씨는 해고 현장을 녹화하는 것도 금지됐고, 해고 사유를 묻자 "링크드인 프로필을 통해 삼성전자 사람임을 추측할 수 있다"는 모호한 설명만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E씨는 "내 종교적 믿음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며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내 유튜브 댓글에 삼성전자가 언급됐다며 지워달라고 말하는데, 그런 댓글은 애초에 찾을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 본사에서 미국 자회사로 '디스패처'를 보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사로 책임 소재가 번질 조짐도 보인다.
대부분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디스패처는 암행어사처럼 예고도 없이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에서 온 디스패처는 자회사 직원들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내부 사안에 대해 질문할 권리를 갖는다.
A씨는 "디스패처는 나에게 특정 문서를 볼 것을 요구하거나 고용 현황 등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하곤 했다. 디스패처들은 항상 한국인들이었으며, 한국 본사에서 보낸 사람들로 알고 있다. 그들을 거스르지 않는 것(you don't mess with them)이 중요했다"고 밝혔다.
A씨와 B씨의 증언을 이끌어낸 '앤드류 모 대 삼성 리서치 아메리카' 재판의 원고 측 변호사는 최근 SRA에 디스패처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했다.
원고 측 변호사는 "디스패처의 존재는 삼성전자 본사와의 연결고리다"며 "본사가 사실상의 고용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한다"고 정보요청 배경을 밝혔다.
앤드류 모가 소송을 건 계기는 2021년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현장방문이었다.
이 회장의 현장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SRA의 한 고위 간부가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려라"고 말했고, 모는 이를 인사팀에 신고하고 얼마 안 돼 해고당했다.
증인신문은 법정에서의 재판과 똑같이 법원 서기관과 양측 변호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증인 선서를 거친 후 이뤄진다. 거짓을 말한 경우 위증의 죄로 처벌받게 된다.
SRA는 지난 4월 7일 법원에 재판 연기를 요청했다.
SRA는 "2026년 가을에 재판하기를 요청한다"며 "원고 측이 제 3자의 '미투' 증거를 갖고 와서,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변론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SRA은 "증언한 A씨는 SRA가 직고용하지 않고 인력업체를 통해 고용됐다. A씨와 D씨 모두 원고가 SRA에 근무하기 전 SRA를 떠난 제 3자"라고 주장했다.
증인신문은 법정에서의 재판과 똑같이 법원 서기관과 양측 변호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증인 선서를 거친 후 이뤄진다. 거짓을 말한 경우 위증의 죄로 처벌받게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원고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소송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은 드릴 수 없음을 양해 부탁한다"고 말했다.
우연주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