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업급여 확대·모성보호 증가로 기금 활용범위 확산
- 2027년 35조원 추가 소요…보험료 인상 불가피 관측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고용보험기금이 1995년 도입 이후 처음으로 고갈 위기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차입금을 제외하면 이미 4조1267억원 적자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없었던 전대미문의 재정 위기가 현실이 됐다. 1380만 근로자가 매달 내는 고용보험료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일 고용노동부가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은 공공자금관리기금 차입금 7조7000억원을 포함해도 3조5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는 보고서에서 경기 둔화와 모성보호 지출 확대가 적립금 감소의 주원인이라며 올해 말까지 재정 안정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현재와 같은 경기 상황이 계속될 경우 내년 말 적립금 완전 소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기금 고갈의 직접적 원인은 8년간 총 14조원 규모의 적립금이 사라진 데 있다. 2017년 10조2544억원에 달했던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마이너스 4조1267억원으로 추락한 배경에는 정책 패러다임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8년부터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3~8개월에서 4~9개월로 늘어나고 지급액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증액되면서 지출이 급증한 것이다.
정책 변화와 더불어 청년고용추가장려금 등 재정투입형 일자리 사업이 대거 신설되면서 고용보험기금 활용 범위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기금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업·제조업 중심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해 실업급여 지출은 15조1734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5월까지 이미 예산의 절반인 5조3663억원을 소진해 역대 최대 기록 갱신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차입금 이자 부담의 증가다. 공공자금관리기금 차입 이자가 2020년 134억원에서 2024년 3113억원으로 23배 급등할 전망이다. 현재 빌린 8조원 가까운 대출에 대해 올해 말까지만 1330억원이 넘는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용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0조6581억원을 예수금으로 빌렸지만, 이 중 2조9373억원만 갚는 데 그쳐 구조적 파산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의 근본적 기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고용보험 제도 자체가 '취업 촉진' 기능을 잃고 '실업자 생계유지 장치'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올해 실업급여 하루 하한액 6만4192원이 최저임금 근로자의 실제 수령액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구직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0일 열린 고용보험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집중 거론됐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실업급여 하한액이 40세 기준 평균임금의 41.9%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1위"라며 "반복 수급을 부추기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받은 사람이 연간 10만명을 넘어서고 수급 기간 내 재취업률은 3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한국의 GDP 대비 실업보험 지출 비율은 0.538%로 OECD 6위에 달해 이미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올랐다. 일본이 0.2%에도 안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제도 운영 효율성에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은 모성보호 기능의 확대다. 올해 계획된 육아휴직 급여만 4조원으로 연간 기금 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내년에는 모성보호 예산이 1조5000억원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성재민 부원장은 "실업급여가 제 역할을 하려면 기금 적립금의 안정적 확보가 중요하다"며 "국가적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모성보호 계정을 분리하고 일반회계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금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정책이 추진 중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발적 이직 청년 구직급여 정책이 시행되면 2027년부터 3년간 최대 35조8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재 고용보험기금 연간 수입(약 16조원)의 2배를 웃도는 규모다. 65세 이상 실업급여 확대와 구직촉진수당 인상(50만원→80만원)까지 감안하면 향후 7년간 40조원 이상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업계에선 고용보험료 추가 인상이 불가피한 국면에 이르렀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이미 2022년 고용보험료율을 1.6%에서 1.8%로 올렸지만 적자 폭은 줄지 않았다. 현재 1380만명의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에서 보험료 추가 인상은 전 국민적 반발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제도 자체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실업급여 수준이 근로 의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제도 개선 없이는 기금 재정 건전성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갑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보험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근본적이고 면밀한 재정 건전화를 통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금 확충 방안과 연계되지 않은 고용보험 정책은 혈세 투입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올해 말까지 고용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과 혈세 투입 사이에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1995년 도입 이후 30년 만에 맞는 최대 위기 앞에서 고용보험 제도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아영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