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밸류 크리에이션 미팅에서 가치 창출보다 ‘침묵’…롯데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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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밸류 크리에이션 미팅에서 가치 창출보다 ‘침묵’…롯데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 서영광 기자
  • 승인 2026.01.16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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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인적 쇄신 후 처음 열린 VCM
CEO 80여 명 표정 무겁고 침묵
수익성 기반 경영·ROIC 강조, 과거 성공에 갇힌 '오만' 경계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롯데그룹의 옛 사장단회의이자, 최고위 경영회의 명칭은 VCM(Value Creation Meeting)이다. 그러나 지난 15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6년 상반기 VCM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가치 창출’보다는 ‘침묵’이었다.

고강도 인적 쇄신 이후 처음 열린 회의였으나, 회의장으로 향하는 CEO 80여 명의 표정은 무거웠다. 또한 대부분은 취재진의 질문에도 말을 아꼈다. 이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지금 롯데가 마주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위치한 신격호 기념관. [사진=서영광 기자]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위치한 신격호 기념관. [사진=서영광 기자]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이번 VCM에서 “과거의 성공 경험에 갇혀 ‘우리는 다르다’는 오만함을 경계해야 한다”며 “익숙함과의 결별 없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매출 중심의 외형 성장에서 벗어나 수익성 기반 경영으로 전환하고, ROIC(투입한 자본 대비 실제 수익)를 원칙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주문도 분명히 했다. 신 회장의 발언은 위기 진단이자, 기존 성장 방식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였다.

특히 이번 VCM은 지난해 11월 계열사 CEO 20여 명을 교체한 대규모 인적 쇄신 이후 처음 열렸다. HQ 체제를 폐지하고 계열사 책임경영을 강화한 만큼, 각 CEO에게는 전략 수립이 아닌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전면에 놓였다. 그 무게가 이날 회의장 앞 침묵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롯데는 이날 회의에서 사업군별 전략 리밸런싱을 논의했다. 식품은 핵심 브랜드 가치 제고, 유통은 상권 맞춤형 점포 전략을 통한 고객 만족 극대화, 화학은 정부 정책에 맞춘 구조조정과 스페셜티 중심 포트폴리오 고도화가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정보 보안과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강화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방향성은 명확했지만, 이는 곧 기존 사업 구조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전제 위에서 나온 처방이기도 하다.

현재 롯데의 유통 부문은 백화점이 회복 흐름을 보이는 반면, 마트와 이커머스는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학 부문 역시 업황 악화와 정책 변화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한때 ‘생활 속 롯데’로 불리던 그룹의 정체성은 사업 확장 과정에서 희미해졌다. 이번 VCM은 그 결과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리였다.

장혜선 롯데재단 이사장이 쓴 저서 롯데할배와 손녀에 따르면, 신격호 창업주는 늘 현장을 먼저 물었다. “거기 가봤나?” 그리고 결과보다 태도를 강조했다. “단디하라.” 신격호에게 유통은 숫자의 사업이 아니라 생활의 사업이었고, 고객이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성장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신념이 분명했다.

신동빈 회장이 이번 VCM에서 강조한 ‘수익성 중심 경영’, ‘업의 본질 집중’, ‘오만함에 대한 경계’는 표현만 달라졌을 뿐, 본질적으로는 신격호 창업주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 다만 지금의 롯데는 더 크고, 더 복잡하며, 그만큼 방향을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VCM의 침묵은 전략 부재가 아니라, 방향 전환의 무게를 반영한 결과에 가깝다.

밸류 크리에이션 미팅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번 회의에서 가치는 즉각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신 롯데는 질문을 받았다. 무엇을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신격호 초대회장이 남긴 “거기 가봤나, 단디하라”는 말은, 침묵으로 가득했던 이번 VCM에서 오히려 더 크게 울렸다.

서영광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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