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사업 버팀목 삼아... 진입장벽 높은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 전환
B2C 가전 중심의 사업을 영위하던 LG전자가 성장의 축을 옮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모빌리티 전장사업이 LG전자 밸류업 전략의 선봉에 섰다. 여기에 AI 산업 확산과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 확대를 배경으로 HVAC(공조·냉각) 사업 역시 차세대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LG전자의 모빌리티 전장사업과 HVAC 솔루션 사업의 비전과 경쟁력을 점검하며, 그룹사 차원의 체질 개선의 모멘텀이 될 수 있을지 따져본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LG전자가 역대 최대 매출을 다시 썼지만, 표정이 밝지는 않다. 잠정실적 기준으로 지난해 말 기준 연결 매출은 89조 2025억원으로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2조 4780억원으로 전년 대비 27.5% 급감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영업손실 1094억원을 기록하며 9년 만에 분기 적자로 돌아섰다. 외형 성장과 달리 수익성 구조가 흔들리는 '매출의 역설'이 읽히는 대목이다.
균열의 진원지는 LG전자 전통의 본업인 '가전'이다. 2024년 H&A(생활가전, 현 HS 본부) 사업본부는 매출 33조 2033억원, 영업이익 2조 446억원으로 전사 캐시카우 역할을 해냈지만, 글로벌 수요 회복 지연과 물류비, 마케팅비 등 비용 변수에 민감한 구조는 그대로 노출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급감한 배경으로도 수요 회복 지연, 경쟁 심화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 하반기 희망퇴직 관련 비용 등이 공식적으로 언급됐다.
LG전자가 과거 모바일 사업을 철수한 결정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공존하는 것도 이와 같은 흐름에서다. 당시 스마트폰 사업은 적자가 누적되며 재무적 부담이 컸고, 사업 정리 자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산업 패러다임 전환기마다 고부가가치 플랫폼 산업으로의 진입 기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스마트폰 산업은 단말 판매를 넘어 OS·앱·서비스로 이어지는 플랫폼 주도권을 형성한다. 그 전환기에 LG전자는 생태계 중심 산업으로의 이동에 성공하지 못하며, 고부가가치 산업 사이클 진입에 한차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가 가전 중심의 B2C 제조업에 머무는 동안 산업 패러다임은 소프트웨어 생태계 중심으로 재편됐다. 제품 성능 경쟁보다는 플랫폼 지배력과 데이터 축적, 서비스 연결성이 기업 가치의 핵심 지표로 바뀌었고, 하드웨어는 생태계를 지탱하는 진입 장치로 역할이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AI로 인한 산업 전환기를 맞으며 LG전자는 B2B 솔루션 기업으로의 체질전환 기회를 맞았다. LG전자가 강점을 보이는 영역은 모빌리티 전장(VS)과 HVAC(ES) 서비스다.
AI 확산은 자동차 산업을 SDV(Software-Defined Vehicle) 중심 구조로 재편되면서 하드웨어가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013년부터 모빌리티 전장 산업에서 포트폴리오를 쌓아왔는데, 누적된 업력의 '포텐'이 빛을 발하는 시기가 왔다고 평가받는 배경이다.
LG전자의 전장(VS) 사업은 더 이상 미래 먹거리가 아니라 현재 LG전자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LG전자가 자동차 사업을 한다는 사실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하지만 2024년 기준 VS사업본부 매출은 10조6205억원으로 2년 연속 10조원을 넘겼고, 영업이익도 1157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현대차그룹, 벤츠, 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을 상대로 100조원대 수주잔고를 쌓아두며 장기 매출과 구조적 성장성을 갖췄다. 전기차 캐즘 등 단기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프로젝트 기반으로 안정성을 확보한 셈이다.
ES부문 역시 HVAC AI 확산으로 열관리가 데이터센터의 핵심 기능이 되며 LG전자의 사업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랙 전력밀도가 높아질수록 냉각 기술은 단순 설비가 아니라 서비스 연속성을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LG전자가 HVAC를 차세대 먹거리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데이터센터 냉각은 단순 장비 납품이 아니라 설계와 설치, 운영, 유지보수가 결합된 통합 솔루션 산업이다.
특히 공랭과 수랭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는 단품 경쟁이 아닌 시스템 경쟁을 가능하게 하면서 시장 진입장벽을 만들고 가격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
모빌리티 전장과 HVAC는 공통적으로 B2B 솔루션 산업에 장기 운영 모델을 결합한 구조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점유율을 확보할 수록 수익이 누적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그간 LG전자가 목말라했던 사업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 흐름은 CES 2026에서 더 분명해졌다. 류재철 LG전자 CEO는 라스베이거스 현장에서 ‘고성과 포트폴리오 기반의 질적 성장’과 AX(AI Transformation)를 강조하며 속도·실행력 중심의 체질 개선을 언급했고, 전장·HVAC 등 B2B와 구독·webOS 등 비(非)하드웨어 축을 성장 프레임으로 제시했다.
류재철 LG전자 CEO는 "LG전자의 성장 전략은 고성과 포트폴리오 기반의 질적 성장"이라며 향후 회사의 무게추가 상당부분 B2B 기반으로 옮겨갈 것임을 예고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