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개인정보 유출 책임까지 영업점·기사에 전가
“배송완료 처리 오류·늑장 대응 개선 계기 될까” 업계 주목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국내 주요 택배사들이 영업점과 택배기사들에게 안전사고와 개인정보 유출 등의 책임을 떠넘기는 불공정 계약을 맺어온 사실이 적발됐다.
1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로젠 등 국내 주요 택배 5개사는 하도급 계약 과정에서 영업점과 화물운송업자 등에 부당 특약을 설정하고 계약 서면을 지연 발급한 혐의로 제재를 받았다.
이번에 적발된 부당 특약은 안전사고 발생 시 민·형사상 책임을 수급사업자에게 일괄 전가하거나, 개인정보 분실·도난·유출에 대한 책임까지 영업점 측에 떠넘기는 내용이 핵심이다. 일부 업체는 노사 분규나 차량 사고 등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도록 계약을 설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 같은 조항들이 사실상 원사업자의 관리·감독 책임까지 현장 기사와 영업점에 전가하는 구조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이들 5개 업체의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은 90%를 넘는 수준으로,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과징금 규모는 총 30억7800만원이다. 업체별로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가 7억5000만원대로 가장 많았고, 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CJ대한통운이 각각 6억원 안팎, 로젠이 3억원대로 뒤를 이었다.
계약서 발급 지연 문제도 함께 드러났다. 공정위 조사 결과 5개 업체는 총 2055건의 계약에서 용역 수행 시작 전 계약서를 발급하지 않았고, 일부는 최대 761일이 지나서야 서면을 교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하도급법은 원사업자가 계약 내용을 사전에 서면으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재가 단순한 계약 조항 수정에 그치지 않고, 현장 운영 방식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배송 지연이나 오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객 불만 대응 체계 역시 개선 압박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택배 현장에서는 배송 완료 처리와 고객 응대 문제를 둘러싼 혼선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부 기사들이 물량 부담 등을 이유로 실제 배송 전에 ‘배송완료’ 처리를 먼저 진행하거나, 고객 불만이 발생해도 본사·영업점·기사 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대응이 지연되는 사례도 반복됐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구조적 문제가 결국 현장 인력에게 과도한 부담을 집중시키는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택배기사와 영업점이 비용·사고·민원 책임까지 동시에 떠안다 보니, 배송 품질 저하와 고객 불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향후 택배사들이 계약 구조뿐 아니라 고객 응대 체계와 현장 운영 시스템까지 손질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단기간 내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택배업 특성상 다단계 위탁 구조가 고착화돼 있는 데다, 물량 중심 경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에 “그동안 택배업계에서는 사고·민원·지연 책임이 현장으로 내려가는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다”며 “이번 공정위 제재를 계기로 계약 구조뿐 아니라 CS 대응과 현장 관리 체계까지 함께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광 기자 market@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