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자본 15조 쌓였는데…‘탈중국 배터리망’은 왜 금융 문턱 못 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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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본 15조 쌓였는데…‘탈중국 배터리망’은 왜 금융 문턱 못 넘나
  • 한순구 기자
  • 승인 2026.08.0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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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증권사, IMA·발행어음 앞세워 기업금융 실탄 확대
해외 공장 프로젝트는 벤처투자·전통 대출 사이 ‘금융 사각지대’
정책금융 후순위·증권사 선순위·PE 지분 결합한 혼합금융 필요
▲ 서울 여의도 일대,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 서울 여의도 일대,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으로 대규모 기업금융 재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미국의 탈중국 정책에 대응해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국내 배터리 소재·부품기업들은 여전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금융회사가 요구하는 투자조건과 기업이 실제로 필요한 자금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IMA·발행어음 업무를 인가받은 5개 증권사는 향후 3년간 총 20조3000억원의 모험자본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신규 공급 계획만 15조2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대형 증권사들이 조달한 자금이 상업생산 전 단계의 해외 제조 프로젝트까지 원활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해외 공장 사업은 벤처투자 대상으로 보기에는 자금 규모가 크고, 전통적인 기업대출 대상으로 보기에는 아직 현금흐름과 담보가 부족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탈중국 공급망 사업이 기존 여신심사 체계의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고 본다. 시장과 고객사는 확보했지만 공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 금융종결의 최대 장애물이다.


수주·고객사 있어도 수천억원 조달은 별개

미국 ESS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올해 미국에 추가될 발전설비 86GW 가운데 배터리저장장치가 2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약 24GW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산 비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적용되는 미국 관세도 올해 25%로 인상된다. ESS용 배터리가 대표적인 대상이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낮아지는 만큼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수주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그러나 완성 배터리업체의 수주가 늘어난다고 협력사의 해외 공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한 중견 배터리 부품기업은 미국 일리노이와 애리조나에서 ESS용 배터리팩과 배터리관리시스템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와 장기 공급관계를 맺고 현지 생산라인도 가동하고 있지만, 전체 시설투자비는 약 4857억원에 달한다.

해당 사업은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1000억원을 먼저 조달한 뒤 시설투자와 기존 차입금 상환, 운전자금 확보를 위해 추가로 3000억원 규모의 선순위 대출을 추진하고 있다. 자료상 모회사 보증과 국내 부동산 담보, 미국 현지 계좌통제, 공급계약 유지 등을 신용보강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형 고객사와 수주, 현지 공장을 모두 확보해도 금융기관이 요구하는 담보와 상환구조를 별도로 갖춰야 자금이 집행되는 것이다.


정제공장은 인허가 받았어도 ‘상업생산 전’ 할인

배터리 원료 정제사업은 금융 문턱이 더 높다.

베트남에서 황산니켈과 황산코발트 생산을 추진하는 국내 소재기업은 현지 투자등록과 부지 관련 절차를 거쳐 환경·건축 인허가를 진행하고 있다. 초기 생산능력은 연간 3000톤이며, 생산 안정화 이후 1만톤까지 증설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기업은 해외 원자재 기업과 종합상사로부터 초기 생산능력의 두 배에 해당하는 원료조달 협의 물량을 확보하고, 전구체 기업들로부터 제품 구매의향서도 받았다고 제시했다. 글로벌 원자재 상사와는 생산물 오프테이크와 운전자본 금융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 사모투자 운용사도 우선 50억원을 투입하고 공장 건설 일정에 맞춰 누적 최대 300억원까지 단계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급했다. 다만 최종 투자계약과 인허가 유지 등이 선행조건으로 붙어 있다.

사업성만 보면 원료, 판매처, 부지, 인허가와 앵커투자자까지 갖춘 프로젝트다. 하지만 금융기관 관점에서는 아직 상업생산 수율과 확정 현금흐름이 없는 그린필드 사업이다.

은행은 담보가치를 보기 어렵고, 증권사는 후속 자금조달이 실패할 경우 첫 투자금이 공장 완공 전에 묶일 가능성을 우려한다. 원료조달 MOU와 구매의향서 역시 최소 물량과 가격, 계약기간이 확정된 본계약으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신용평가에서 충분한 현금흐름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산업 위험보다 ‘금융구조 부재’가 문제

탈중국 배터리 공급망 프로젝트의 핵심 위험은 배터리 업황 하나가 아니다.

공장 완공 위험과 해외 인허가, 환율, 원료가격, 추가 출자, 현지 담보권 집행 등 여러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기업의 일반 신용만 보고 대출하거나, 하나의 사모펀드가 지분투자로 모든 위험을 부담하기 어려운 구조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사업을 단순 보통주 투자나 무담보 기업대출로 접근해서는 금융종결이 어렵다고 본다.

예컨대 투자자금은 부지 확보, 환경평가 승인, 건축허가, 원료·판매 본계약, 설비 도입, 시운전 등 공정 단계에 따라 나눠 집행할 수 있다. 공장 완공 전에는 상환우선주나 전환사채로 투자하고, 상업생산 이후 선순위 대출로 차환하는 구조도 가능하다.

모회사 보증과 국내 자산 담보, 프로젝트 법인 지분 질권, 현지 은행계좌 통제, 공급계약 해지 시 기한이익 상실, 일정 기간의 이자유보계정 등을 결합하면 증권사의 손실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원자재 기업의 장기 오프테이크 계약을 기초로 운전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다. 투자자는 생산제품의 최소 구매물량과 가격산식을 확보하고, 원자재 기업은 안정적인 물량을 선점하는 구조다.

결국 개별 사업의 성장성을 홍보하는 것보다 어떤 위험을 누가 부담하고, 어느 시점에 어떤 자금으로 대체할지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성장펀드는 국내 대형 프로젝트부터 집행

정책금융은 첨단산업 프로젝트의 초기 위험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전고체 배터리 핵심소재 공장과 LFP 양극재 생산시설 등에 장기·저리 대출과 지분투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정책자금이 사업의 재무적 안정성을 높이고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현재 공개된 대표 사례는 국내 생산시설과 대기업 또는 상장사 계열 프로젝트가 중심이다. 미국에 진출한 중견 협력사나 베트남 등 제3국에서 비중국 정제시설을 구축하는 프로젝트까지 정책금융이 적극적으로 위험을 분담하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지난해 핵심광물 투자가 9% 감소한 반면, 정부의 공공금융 약정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네 배 이상 늘어난 650억달러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정제 공급망 다변화는 민간자금만으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각국 정부가 위험을 나눠 부담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2년간 정제 공급 증가분의 4분의 3 이상이 니켈은 인도네시아, 다른 주요 핵심광물은 중국에 집중됐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이외 지역에서는 광산 투자보다 정제·가공시설 투자가 뒤처지고 있다.

 

정책금융이 먼저 위험 나누고, 증권사는 구조화해야

금융권에서는 해외 공급망 프로젝트를 전액 정책자금으로 지원하는 것도, 민간 증권사가 모든 위험을 떠안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정책금융기관이 공장 완공 전 위험 일부를 보증하거나 후순위 자금으로 참여하고, 증권사가 선순위 대출과 프로젝트펀드를 조성하는 혼합금융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사모펀드는 지분 또는 상환우선주로 초기 위험을 부담하고, 원자재 기업은 오프테이크와 운전자본을 맡는 방식이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정책금융이 손실을 전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이 감당하지 못하는 첫 손실이나 공장 완공 위험을 제한적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민간자본의 위험 대비 수익률을 투자 가능한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증권사도 IMA와 발행어음 자금을 단순 회사채와 이미 현금흐름이 확인된 자산에만 배분한다면 은행 대출과 차별화하기 어렵다. 해외 제조업의 기술·고객사·공급계약을 금융 가능한 현금흐름으로 구조화하는 능력이 IB 경쟁력이 될 수 있다.

 

IMA 성적표, 판매액 아닌 금융종결로 봐야

IMA 시장 초기에는 상품이 얼마나 빨리 완판됐는지가 증권사의 경쟁력으로 평가됐다. 앞으로는 조달한 자금을 어떤 기업금융 자산에 배분하고, 얼마의 수익률로 회수했는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탈중국 배터리 공급망 사업은 위험이 없는 투자가 아니다. 동시에 시장과 수주가 없는 초기 기술투자와도 다르다. 고객사의 발주와 원료·판매계약이 존재하고, 공장 완공과 상업생산 사이의 자금 공백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모험자본 15조원이 계획돼 있어도 실제 프로젝트가 자금부족으로 멈춘다면 생산적 금융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국내 금융의 다음 과제는 투자할 기업을 더 찾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심사방식으로는 담기 어려운 해외 공급망 사업을 투자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IMA와 국민성장펀드의 성과 역시 모집액보다 실제 금융종결에 성공한 생산시설과 공급망의 수로 평가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순구 기자  po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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