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1.8조로 후발사 선두…신한은 2900억 ‘속도조절’
삼성 ‘고액자산가’·메리츠 ‘IB’ 앞세워 추격…신규 사업자 전략 차별화
[녹색경제신문 = 나희재 기자] 메리츠증권이 발행어음 사업자로 합류하면서 국내 발행어음 시장이 9개 증권사 경쟁 체제로 재편됐다. 사업자 수는 불과 1년도 안 돼 기존 4곳에서 9곳으로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실제 발행 규모와 확대 속도는 회사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8일 녹색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3일 메리츠증권을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고 단기금융업을 인가했다. 이에 따라 발행어음 사업자는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KB증권·키움증권·하나증권·신한투자증권·삼성증권·메리츠증권 등 9곳으로 늘었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투사가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상품이다.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증권사 입장에서는 회사채와 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 더해 대규모 기업금융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조달수단이다.
현재 시장은 선발 4사가 압도하고 있다. 6월 말 기준 발행어음 사업자 7곳의 전체 잔액은 55조9291억원으로 한국투자증권 22조4680억원, KB증권 11조31억원, 미래에셋증권 10조5776억원, NH투자증권 8조7752억원 순이다. 선발 4사의 합산 잔액은 약 52조8200억원으로 당시 전체 잔액의 94.4%를 차지했다.
다만 선발사끼리도 발행어음을 활용하는 정도는 다르다. 상반기 말 자기자본의 200%를 단순 적용하면 한국투자증권은 약 26조4000억원의 한도 가운데 85%가량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KB증권 역시 상반기 말 기준 활용률이 약 69%에 달했지만 올해 2월 7000억원에 이어 7월 1조원 규모 증자를 추가로 마무리하면서 발행어음 조달 여력이 다시 넓어졌다.
반면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의 한도 활용률은 각각 50%, 45% 안팎으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두 회사는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IMA까지 병행하고 있어 발행어음 한도를 빠르게 채우기보다 조달수단을 분산할 수 있는 구조다.
한편 후발주자 가운데 가장 빠르게 외형을 키운 곳은 키움증권이다. 지난해 11월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고 12월 판매를 시작한 뒤 올해 3월 말 1조1730억원이던 발행어음 잔액을 6월 말 1조8160억원까지 늘렸다. 석 달 동안 6430억원 증가해 같은 시기 시장에 진입한 하나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을 앞섰다.
키움증권은 강점인 온라인 리테일을 발행어음 판매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달에는 키움증권 계좌를 처음 개설한 고객을 대상으로 1년 만기 세전 연 5% 특판을 내놨다. 1인당 가입한도를 최대 10억원으로 설정해 단순 소액 이벤트보다는 신규 고객 자금 자체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택했다.
하나증권 역시 초기 판매 속도는 빨랐다. 지난해 12월 인가를 받은 뒤 올해 1월 9일 첫 발행어음 상품을 출시했고 수시형과 약정형을 합친 첫 판매분 3000억원을 일주일 만에 소진했다. 이후 추가 발행을 이어가면서 3월 말 6833억원이던 잔액은 6월 말 9993억원으로 늘어 1조원에 근접했다.
반면 신한투자증권은 발행 규모를 빠르게 늘리기보다 초기 운용 안정성에 무게를 뒀다. 지난해 12월 인가를 받은 뒤 올해 2월 사업을 시작했지만 6월 말 발행어음 잔액은 2899억원에 그쳤다. 같은 시기 키움증권 1조8160억원, 하나증권 9993억원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다만 9월 들어 기존 개인 고객 중심에서 일반법인으로 판매 대상을 넓히고 3개월~1년 만기의 법인용 상품을 이달 중 총 1400억원 규모로 발행하기로 했다. 이어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내놓은 6개월 만기 연 4.5% 특판 300억원은 판매 개시 5시간 만에 모두 소진됐다.
6월 말 기준 키움·하나·신한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잔액은 총 3조1052억원이다. 이 가운데 키움증권이 약 58.5%를 차지한 반면 하나증권은 32.2%, 신한투자증권은 9.3%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판매 채널과 운용 전략에 따라 초기 잔액 확대 속도는 상당한 격차를 보인 셈이다.
이달 새로 시장에 진입한 삼성증권은 강한 WM 고객 기반을 앞세우고 있다. 지난 9일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뒤 21일부터 판매를 시작했으며, 종합계좌 고객 대상 1년 만기 연 4.3% 특판 1000억원은 이틀 반 만에 모두 소진됐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증권이 초기부터 발행어음 한도를 빠르게 채우기보다는 운용자산 확보와 수익성을 고려해 발행 규모를 보수적으로 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메리츠증권은 다른 신규 사업자보다 운용 측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부각된다. 상반기 말 별도 자기자본은 8조3495억원으로 자기자본의 200%를 단순 적용하면 최대 약 16조7000억원의 발행어음 조달이 가능하다.
메리츠증권은 부동산금융과 구조화금융을 포함한 IB에서 축적한 위험인수 경험을 발행어음 운용과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금융당국이 발행어음 자금의 부동산 관련 자산 운용한도를 낮추고 있는 만큼 과거 부동산금융 중심의 운용방식을 그대로 확대하기보다는 전통 기업금융과 성장기업 투자, 메자닌 등으로 운용처를 다변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축적해 온 IB 역량과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혁신기업과 성장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기업금융 경쟁력을 강화하고, 리테일 고객에게는 양질의 투자기회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향후 경쟁의 초점은 발행액 자체보다 조달한 자금을 어디에 투자하느냐로 옮겨갈 전망이다. 발행어음·IMA 조달액에 대응해 공급해야 하는 모험자본 의무비율은 올해 10%에서 2027년 20%, 2028년 25%로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사업자가 9곳으로 늘어 고객 자금 유치를 위한 금리 경쟁이 거세질수록 증권사 입장에서는 높은 조달비용을 감당하면서 모험자본 공급 의무까지 충족할 수 있는 기업금융 자산 확보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어음 사업은 자금을 많이 조달한다고 해서 바로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아니다”며 “사업자가 늘면서 판매금리는 올라가고 있는 만큼 향후에는 각 회사가 가진 리테일 채널과 기업금융 역량을 바탕으로 조달비용을 웃도는 운용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희재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