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로보틱스 투자 당시와 닮은 행보…국내 피지컬AI 기업 주목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삼성전자의 로봇 사업 시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RX사업추진실을 신설한 이후 자체 휴머노이드와 로봇손 매니퓰레이터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현대차와 LG전자에 비해 뒤처졌던 로봇 사업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재용 회장 취임 4주년을 맞은 어제(27일) 공식 행선지가 'RX사업추진실'이었다는 것도 로봇 사업에 대한 그룹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M&A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3년전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지분을 투자하면서 로봇 업계가 떠들썩했었는데 이제는 삼성전자가 피지컬AI 솔루션 기업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M&A를 진행할 확률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입니다.
로봇은 하드웨어만 있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건 이제 모두가 아는 이야기죠. 건장한 세살배기같은 휴머노이드를 숙련된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학습 및 구동 프로그램입니다.
로봇이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 학습하는 원리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카메라와 센서로 수집한 정보를 시각언어모델(VLM)에 입력해 주변 환경과 작업 대상을 인식하고, 사람이 내린 작업 지시를 수행하는 원리입니다. 이후 숙련공이 직접 작업을 시연하거나 로봇을 원격 조작하면서 로봇의 작업 수행 능력을 높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로봇 운영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기존의 룰베이스 방식의 작업지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룰베이스란 사람이 사전에 정해 놓은 규칙과 조건에 따라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제는 정해진 규칙이 아니라 로봇이 시각 정보를 통해 작업 환경을 이해하고 기존 숙련공의 행동 궤적을 학습해 환경에 맞게 이를 구현하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는 것이죠.
현재 삼성의 로봇 밸류체인에서 빠져있는 게 바로 이 기술입니다. 삼성 그룹사의 두뇌를 맡고 있는 삼성SDS가 지난 9월 로봇 관제 플랫폼 사업 진출을 선언했는데요. 삼성SDS가 집중하고 있는 건 로봇 오케스트레이션, 즉 이기종 로봇 관제 플랫폼입니다. 삼성SDS의 자회사이자 삼성그룹 로봇 밸류체인에서 또 다른 소프트웨어 주축으로 주목을 받는 미라콤아이씨의 포지션 역시 로봇 관제탑 쪽에 가깝습니다. 로봇을 학습시키고 동작을 구현해 내는 플랫폼 개발 로드맵은 정작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LG의 경우 LG CNS의 피지컬웍스를 통해 로봇 관제와 학습을 모두 커버하고 있는데, 삼성은 아직 이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다만 LG CNS의 경우에도 피지컬웍스 포즈(FORGE)를 통해 로봇 학습까지는 가능하지만 이를 실제 동작으로 구현하는 것을 또 다른 문제라 아직 기술 스택을 더 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취재를 종합해보면 이렇게 로봇을 학습시키고 실제 동작으로 구현해내는 기술이 지금 피지컬AI 업계가 맞닥뜨린 가장 큰 기술적 난관입니다. 학부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해 창업한지 몇 년이 지난 기업들도 아직 도장, 도색과 표면 연마, 부분 용접 등 제조업의 일부 공정에 한해 집중적으로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만큼 작업 현장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조업 로봇화는 도로에서의 자율주행과 비교되곤 하는데, 도로주행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목표 하에서도 이른바 '롱테일'이라고 하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현대차와 같은 완성차 기업들이 룰베이스가 아닌 E2E 자율주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공장에서의 제조는 자율주행보다 목적도 더 다양하고 변수도 많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제조 자동화에 이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타임라인상 삼성이 지금 자체적으로 개발을 시작하기 보다는 이미 기술이 있는 기업을 인수해 시차를 줄이고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반도체로 쌓은 탄탄한 자본력도 추가 M&A설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또 M&A 대상이 해외기업이 아니라 국내기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그간 가전, 전장 부문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기술력을 키워왔는데요. 하만(HARMAN), 플랙트그룹(FläktGroup), 데이코(Dacor) 등 굵직한 M&A 대상은 대부분 해외기업이었죠.
하지만 로봇, 특히 두뇌를 관장하는 플랫폼의 경우 해외 기술을 도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향후 그룹사 제조의 전 과정에 로봇이 관여하게 되는 만큼 보안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삼성의 경우 반도체 공정 자동화 수요가 큰데, 서버와 기술진 모두 국외에 있는 기업을 굳이 인수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입니다.
또 지금 전세계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제조 레퍼런스가 가장 좋은 곳이 한국입니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지난 몇년간 각 지역의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PoC를 진행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왔기 때문에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릴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이제 관심은 삼성전자의 선택과 그 시기에 쏠립니다.
과거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확보에 나섰던 2023~2024년의 분위기도 참고할 만합니다. 삼성전자는 앞서 2021년 말 로봇사업화TF를 정식 로봇사업팀으로 격상하며 로봇 사업에 힘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자체 개발한 가정용 로봇 '볼리'를 고도화해 2024년 CES에서 선보이는 한편, 2023년부터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확보하며 외부 기술 확보에도 나섰습니다. 내부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부 기술 확보의 필요성도 커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의 흐름도 당시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자체 휴머노이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내년 CES를 계기로 그간의 개발 성과를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로봇의 몸체에 이어 학습과 제어를 담당하는 '두뇌' 확보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만큼, 삼성전자가 다시 한 번 로봇 업계를 뒤흔들 대형 M&A에 나설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다만 올해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의 미공개정보 이용 의혹이 불거진 만큼 삼성전자 역시 향후 M&A 과정에서 정보 보안과 내부통제에 더욱 신중을 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인수 대상 기업과 협상 과정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주가가 크게 움직일 수 있어 관련 정보 관리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