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융합 전도사' 이인식 소장 "인공지능 정책 실효성 기대하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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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융합 전도사' 이인식 소장 "인공지능 정책 실효성 기대하기 어려워"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0.11.0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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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30년간 과학칼럼 '개척'...대한민국 과학칼럼니스트 1호
- "다음 대선에선 4차산업혁명 용어 사라질 것"..."‘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정답"
- 12월말 ‘신화 속의 과학’ 주제로 신간 서적 출간 예정...동서양 창세신화 다뤄
- 융합 집대성 서적 52권 출간...재계, 디지털 포메이션·융합형 인재 등 경영전략 확산

“카오스가 질서를 이루고 우주가 됩니다. '복잡성 과학'이죠. 혼돈 속에서 질서가 나옵니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 소장(75)은 ‘신화 속의 과학’에 관한 신간 서적 발간을 앞두고 있다. 빠르면 12월말에 나올 예정이다. 아직 책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스,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동서양 창세 신화를 과학 키워드로 다룹니다. 가령 키워드는 카오스이죠. 카오스로 창세신화를 해석하게 될 거예요.”

동양과 서양의 창세 신화를 함께 다루는 저작의 시도는 이 소장이 처음이다. 이 소장이 30여년간 연구해온 '융합'을 신화에서 과학적으로 풀어낼 이 책은 이 소장의 52번째 책이다.

이 소장은 대한민국 과학칼럼니스트 1호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럭키금성(현 LG)에 입사했다. 국내 최초 ‘병원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이력이 있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 소장

“나이 36세, 입사 8년 만에 금성반도체(LG반도체) 개발부장을 했어요. 컴퓨터, 전자교환기, 반도체 등 개발 총괄을 했죠.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당시 옆 자리의 업무부장이었습니다. 제가 나갈까 감시했어요(웃음). 그런데 38세 때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사업부 총괄 임원이 됐어요. 당시 맵시나 자동차와 운전수, 비서가 제공될 정도로 파격적이었죠.”

잘 나가던 그가 회사를 그만 두고 과학칼럼을 쓰게 된 것은 1991년, 46세 때 였다. 우연히 미국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책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을 읽고 난 후 였다. 논리학자 괴델과 화가 에셔, 그리고 작곡가 바흐가 지성적으로 융합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장은 동갑내기 저자가 퓰리처상까지 받는 책을 쓴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월급쟁이에서 글쟁이로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 소장은 그 후 30년간 국내에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에 대한 개념과 실용적 테크놀로지를 소개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융합 전도사’ '융합 선구자'로 불린다. 지난해 출간한 <마음의 지도>는 융합의 결정판이라 할만 하다. 이 책의 서문 중 일부다.

“이 책은 마음의 본질을 밝히는 다양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개론서다. 인지과학, 뇌과학, 진화생물학, 네트워크과학, 정신의학, 성과학, 스포츠과학,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 분야는 물론이고 심리철학, 신경철학, 사회심리학, 사회신경과학, 긍정심리학, 진화심리학, 찍짓기 심리학, 초심리학, 인지언어학, 신경신학, 인지종교학, 정치학, 실험경제학, 행동경제학, 신경경제학, 집단지능 등 인문사회 분야 연구 성과도 망라하고 있다.”

이인식 소장이 융합을 집대성한 책 '마음의 지도'
이인식 소장이 융합을 집대성한 책 '마음의 지도'

"4차 산업혁명은 없다. AI 정책 방향도 문제 많아"

그렇다면 이 소장은 지금 정부 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뉴딜 등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일갈했다. 이 소장은 2017년에 <4차산업 혁명은 없다>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 기술은 예산 투입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4차 산업혁명’도 일종의 거품이에요. 클라우스 슈밥 개인이 만든 용어에 불과해요. 이 용어를 퍼트린 방송사 PD, 정치인 등은 부끄러워해야 할 겁니다. 놀랍게도 2017년 미국 백악관의  ‘AI 보고서’ 2개와 스탠퍼드대학 ‘AI 100년 보고서’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단 1번 밖에 안나와요. 그렇다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정답입니다. 다음 정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창조경제처럼 사라질 겁니다.”

이 소장은 융합의 대용으로 여전히 일각에서 사용하는 ‘통섭’이란 용어도 사기라고 단언했다. 이 소장은 2014년 <통섭과 지적 사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통섭’은 에드워드 윌슨이 쓴 외국 서적을 그의 제자가 국내에서 번역해 출간하면서 개념을 자의적으로  만들었어요.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엉터리 개념이죠. 그냥 책 제목 대로 ‘컨실리언스(Consilience)'라고 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국내 최초 인지과학 개론서 '사람과 컴퓨터'

이 소장은 AI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이 소장은 29년 전인 1992년, 국내 최초의 인지과학 개론서 '사람과 컴퓨터'에서 AI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다. 이 소장은 나노기술, 유비쿼터스 등 용어도 처음 알렸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미국의 새로 나온 책, 잡지 등을 가장 먼저 통독하고 AI를 알렸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AI 원천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이  세계 10~15위밖에 안 돼요.  AI 원천기술은 외국에서  가져다 쓰면 됩니다. 돈 퍼부어 원천기술 개발하는 것보다 비용 적게 들여 사다 쓰는 게 남는 거죠. AI 정책에 문제가 많습니다. 이미 미국, 영국 등이 AI 세계표준을 장악한 상태이죠. AI도 소프트웨어(SW)에 불과해요. 교육을 통해 SW 실력을 키우고 AI  응용 앱 등 제품개발에 주력해야 해요.”

이 소장의 얘기는 AI 정책 기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 PC 윈도 사례처럼 AI의 경우도 미국, 영국이 이미 표준을 장악한 상태다. 자본력과 원천기술, 핵심인력, 인프라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우리나라는 응용 기술로 승부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AI 패권 장악을 위해 2030년까지 170조원을 투입하는데 한국은 17분의 1에 불과하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정책은 세금 낭비라는 것. AI 정책 방향에서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셈이다.

이 소장은 ‘과학기술’ 용어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제대로 알고 사용하자는 의미였다.

“과학기술은 과학과 기술, 둘로 쪼갤 수 있어요. 과학(물리학, 생물학 등)은 글소재로 관심 없어요. 과학 서적은 도서관에 가면 너무 많이 있어요. 입시용이죠. 그래서 구태여 칼럼으로 쓸 이유가 없어요. 그러나 기술은 날마다 바뀌죠. 나노, 생명공학 등을 글로 쓴 이유죠. 그래서 융합에 관심이 많아요. 기술은 인간을 다루고 인간은 인문학을 다루죠. 양쪽 모두 공부해야 해요.”

이 소장은 2016년 당시 정부에서 추진한 문화창조아카데미 총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차관급 책임자로서 2년동안 그가 시도한 것은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의 융합이었다. 예술가에도 기술과 인문학은 시대의 조류였던 셈이다. 이 소장이 2008년에 쓴 책 <지식의 대융합>은 융합 시대를 미리 예견했다. 

"융합형 인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출발점은 과학기술과 인간중심"

이인식 소장은 30년간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제반 사회현상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융합의 개념과 실용적 기반을 제시해 '융합 전도사'로 불린다. 

이 소장의 글쓰기는 요즘 회자되는 '융합형 인재'를 제시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대표 등 재계 총수들도 이 소장이 강조하는 '융합형 인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경영전략으로 내세우는 이유일 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글쓰기의 출발점은 과학기술과 인간중심에 있죠. 인문학, 과학기술, 문화예술 3가지를 융합한 글이 생명력이 강합니다. 융합형 글쓰기죠. 기업에서 20년간의 경험은 '실사구시' 형태의 실용적 글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기업에서도 테크놀로지, 사업 등에 활용하는 것 같아요."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제반 사회 현상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정평이 나 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 송하중 경희대 교수(노무현 정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등 그를 아끼는 이들이 만든 ‘이사모(이인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그 구심점에 있는 모임. 특정한 목적을 가진 조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팬클럽'이라 보는 게 적당하다. 이사모 멤버를 포함해 이 소장의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과학계 인맥이 2200명 이상이다.

이 소장은 1945년 해방둥이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과 광주제일고, 그리고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그간 주요 신문에 560여편, 잡지에 170편 이상의 칼럼을 썼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150여 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또 300회 이상 대중강연을 통해 융합의 의미와 필요, 방법론을 전해왔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그는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2008년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최근에는 2012년 펴낸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세계 최초로 제안한 용어인 청색기술(Blue Technology) 확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 소장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최선의 패러다임이 청색경제와 청색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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