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 기조의 유럽, 전 세계서 가장 중요한 전기차 시장으로 떠올라…완성차 업체도 밀집해있어
- EU 및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 전략은 과제…배터리 업체들은 "시장 규모 크고, 기술 앞서 있어 문제 없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 배터리 업체가 유럽 공장 투자 계획을 알린 데 이어 삼성SDI도 1조원에 근접한 투자를 진행한다.
유럽과 완성차 업체들이 자기네 전기차에는 자사 또는 EU업체 배터리를 쓴다는 이른바 내재화 전략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으로 정면승부한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는 내재화 전략 구사에 따른 리스크를 기술력으로 상쇄시킬 수 있고 또 유럽 시장이 가진 매력도가 훨씬 크다는 판단에서 나온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자사 헝가리 법인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증설을 위해 총 9421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 자금은 4038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5383억원의 채무보증을 통해 조달한다.
현재 삼성SDI 헝가리 공장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인근 괴드에 위치해있다. 지난 2018년 3분기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 BMW·폭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에게 공급할 배터리 셀·모듈을 생산해왔다.
업계는 삼성SDI가 이번 투자를 현재 30GWh(기가와트시)로 추산되는 헝가리 제1공장의 생산 능력을 통해 40GWh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 능력을 1GWh 늘리기 위해서는 통상 800억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삼성SDI의 국내 경쟁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도 유럽 내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투자에 적극 나선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자사 헝가리 법인 'SKBH'에 11억4800만달러(한화 약 1조2718억원)를 출자해 연산 30GWh 규모의 제3공장을 이반차 지역에 설립한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9년부터 코마롬 지역에 연산 7.5GWh 규모의 제1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연산 9.8GWh 규모의 제2공장은 올 1분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코비에르지체에 위치한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총 4번의 단계적인 투자를 통해 현지 공장의 생산 능력을 지난해 기준 70GWh에서 향후 100GWh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CATL, 파나소닉 등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선두기업들 역시 저마다 유럽 내에 공장을 건설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각 업체들이 유럽에 대한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친환경 기조의 유럽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시장조사기관 'EV 볼륨'에 따르면 지난해 순수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를 합친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37%나 증가한 139만5000대를 기록했다. 그간 가장 큰 전기차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던 중국(133만7000대)을 앞지른 것이다.
EU(유럽 연합)은 자동차 주행거리 km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상한선을 130g에서 95g로 대폭 강화해 이를 초과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국가별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꾸준히 높여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프랑스를 유럽 최대의 친환경차 생산국으로 만들겠다”며 전기차 대당 보조금을 6000유로에서 7000유로(한화 약 950만원)으로 상향하기도 했다.
반면 프랑스의 베르코어, 스웨덴 노스볼트 등 유럽 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들은 아직 스타트업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이에 삼성, LG, SK를 비롯한 수많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은 완성차 업체들이 주로 위치한 유럽에 앞다퉈 설비 증설에 투자하고 있다.
EU·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 선언…韓 업체들 "그럼에도 기회가 더 커"
물론 향후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폭스바겐, BMW, 벤츠 등 독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 테슬라, 포드 등도 일제히 전기차 배터리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일례로 폭스바겐은 지난해 9월 노스볼트와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한 데 이어 지난달 중국 내 3위 배터리 제조업체인 궈시안의 지분 26.5%를 인수했다.
또한 EU는 지난 2017년 아시아계 배터리 제조 업체에 의존하던 산업 구조를 변혁하기 위한 '유럽 배터리 연합'을 결성하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29억 유로(약 3조8900억 원) 규모로 테슬라, BMW 등 42개 업체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지원하는 내용의 '유럽 배터리 혁신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 배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산 시설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최근 1조원 내외의 투자를 공식화한 것처럼,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들은 EU 및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유럽 전기차 시장이 향후에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유럽이 전기차 배터리를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다 하더라도 방대한 양의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초기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완성차 업체가 안정성이 검증된 배터리를 독자적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수요 자체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이 내재화에 성공해도 그 수요를 다 따라갈수는 없다"며 "유럽 내 가장 먼저 설립될 예정인 공장이 노스볼트의 공장인데, 올해 말 가동을 시작해도 공급량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안정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배터리를 사용하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며 "비교적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아 온 배터리 업체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경윤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