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관계자, "협업 이유? 자체 기술이 없으니까"
대규모 투자 필요한 AI...리스크·수익성이 걸림돌
이윤을 내야 하는 사기업, 기존 모델 차용이 유리
돈만이 문제 아냐...기술 근간 이해할 인재도 부족
[녹색경제신문 = 우연주 기자] 자체 AI 모델을 보유한 기업들마저도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에 나서는 추세다. 조 단위 대규모 투자에 대한 리스크와 수익성을 이유로 해외 기업과의 협업을 선택했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우리나라가 많이 늦었다'는 의견을 내놨다.
AI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A씨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AI 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일궈 놓은 규모의 경제를 따라가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A씨는 "우리가 많이 늦었다. 해외 기업들은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약 10만 장의 GPU를 사용해 학습만 계속 시킨다. 그리고 만 장 정도를 추가로 구비해 서비스에 쓰는 식"이라고 말했다.
챗GPT로 AI 돌풍을 일으킨 오픈AI는 2015년부터 AI 연구를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AI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기 시작한 것은 2023년 경이다. 챗GPT가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 2022년 11월이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LG전자는 물론 SK텔레콤·KT·LG U+와 같은 통신사도 AI 사업을 전개함에 있어 해외 AI 모델과의 협업을 선언했다.
SK텔레콤은 퍼플렉시티를 비롯해 다수의 AI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KT도 김영섭 CEO가 미국으로 찾아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을 선언했다. LG U+도 자체 AI 서비스인 익시오에 구글의 AI 모델인 제미나이를 활용한다.
LG전자도 지난 1월 CES 2025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을 알렸다. 자체 AI 모델인 가우스를 보유한 삼성전자는 상반기 출시 예정인 가정용 AI 로봇 볼리에 해외 AI 모델 협력사를 찾는 중이다.
■ 왜 다들 협업할까?
AI 업계 관계자 B씨는 "협업하는 이유? 자체 기술이 없기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면 돈 들여 다른 기업 것을 쓸 리가 없다는 것이다.
AI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C씨도 "해외 AI 모델들은 그 규모·벤치마크 성능·멀티모달 데이터 처리 능력·활용성 등 여러 면에서 국내 모델들보다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력이 뒤쳐진 이유는 복잡하다. 먼저 사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와 수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AI 연구가 D씨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AI 사업을 하겠다면서 모두 해외 모델을 쓴다. 돈이 문제다"고 말했다.
현재 AI 기술 트렌드는 모두 트랜스포머(챗GPT 방식으로 대표되는 AI 모델의 근간이 되는 알고리즘)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를 독자적으로 경쟁력 있게 만드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D씨는 "조 단위 이상의 돈을 들여서 운영하고, 업데이트를 계속 해야 하는데 이 리스크를 안고 갈 기업이 어디 있겠나"고 반문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큰 돈 들여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보다 해외 기업과의 협업이 수익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으리라는 것이다.
A씨도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LLM부터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AI 모델 중 내게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르는 게 쉽다.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할나위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사기업으로서는 외부 AI 모델을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국내 한 AI 기업 관계자는 "물론 필요하다면 투자를 더 많이 해서 근간 모델 개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면서도 "사기업은 이윤을 내야 한다. 연구자들을 두고 평생 연구만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더 저렴한 값에 효율이 높은 모델이 있다면 그 모델을 빌려오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 자본이 전부 아냐...공급사 관계·인재 확보도 풀어야 할 숙제
돈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AI 개발에 쓸만한 GPU를 만드는 기업이 엔비디아로 한정적인 상황에서 GPU 수급부터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는 마음에 안 드는 회사와는 아예 거래하지 않는다'는 말이 퍼져 있다.
GPU 구매에 필요한 돈도 문제지만, 엔비디아가 이미 관계가 구축된 미국 기업들과의 거래를 우선시 하기 때문에 국내로 들어오는 GPU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2023년 한 해에만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각 15만 장, 구글·아마존·오라클·텐센트가 각 5만 장의 H100(엔비디아의 AI용 GPU)을 주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전역의 GPU를 다 합쳐도 글로벌 빅테크 하나가 보유한 양에 못 미칠 것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A씨는 "AI 연구가 한창인 우리나라 최고 연구기관이 가진 GPU를 다 합쳐도 몇백 장 수준"이라고 말했다.
GPU가 부족하니 AI 모델을 만들었어도 이를 수익화에 활용하지 못한다.
A씨는 "독자적 AI 모델을 가진 우리나라 E기업의 AI 서비스를 써봤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기술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아마 GPU가 부족해서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유한 GPU를 모두 학습에 쓰기 때문에 서비스 프론트로 돌릴 GPU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AI 기술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실력있는 인재가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A씨는 "지금 AI 트렌드는 모두 트랜스포머 수식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 수식이 워낙 복잡하다. 처음 이 트랜스포머를 연구하고, 이를 개발한 사람들을 업계에서 신(神)급으로 생각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찾고, 활용 잘하는 사람 찾고... 이건 하루이틀만에 될 일이 아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 늦었다는 AI 기술,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기술력이 뒤쳐져 해외에 의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에는 '한국형 OS' 개발 붐이 일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확산하면서 OS 시장의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당시에도 뒤늦은 연구개발은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국가 주도로 개발된 것 및 사기업의 연구 결과도 모두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OS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AI 기술력이 글로벌 빅테크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해도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C씨는 "딥시크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며 "후발 주자도 빠르게 AI 생태계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 역시 핵심 AI 모델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에 꾸준히 투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픈소스(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해 활용·수정할 수 있는 코드)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씨는 "최근에는 고성능 AI 모델도 오픈소스로 공개되는 추세다. 이런 오픈소스 모델을 활용하기 위한 파인튜닝·검색 증강·안정성 개선 등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도 좋다. 오픈소스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 업계 관계는 '여전히 기회가 있는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AI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AI 기술력이 뒤쳐지는 것은 맞지만 절대적으로 늦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국가도 나서고 있고, 파운데이션 모델도 다수 있는데다 스타트업도 많다. 기회가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연주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