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임채영 기자] "영국에서는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려고 음료 내 설탕 함량을 대폭 낮췄다. 기업이 레시피를 바꾸면 소비자 가격은 오르지 않을 수 있다."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름만 부담금이지 국민은 '세금'으로 인식한다. 호주에서는 청량음료 소비가 줄었음에도 성인 비만율은 그대로였다. 설탕세의 실효성이 의심된다." (이상욱 한국식품산업협회 본부장)
소아·청소년 비만을 막기 위해 가당음료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설탕부담금' 도입을 놓고 국회에서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정부와 학계는 국민 건강을 위한 골든타임을 강조했지만, 산업계와 현장에서는 실효성 없는 증세라며 맞섰다.
1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는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 주최로 '설탕부담금 도입의 필요성과 쟁점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좌장을 맡고, 박은철 연세대 교수(발제), 복지부·식약처 등 정부 당국자와 학계, 소비자 단체, 산업계 관계자가 참석해 열띤 공방을 주고받았다.
◆ 박은철 교수 "국민 80% 찬성… 2,400억 걷어 공공의료 쓴다"
발제를 맡은 박은철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교수는 "아담 스미스도 설탕, 럼주, 담배를 적합한 과세 대상으로 꼽았다"며 도입 명분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최근 국민 여론조사에서 약 80%가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며 "담배와 폐암의 인과관계 논쟁처럼, 설탕 역시 지금 규제하지 않으면 늦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청사진도 제시됐다. 가당음료에 부담금을 부과할 경우 연간 약 2,400억 원의 재원이 확보될 것으로 추산되며, 이를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조성해 지역·필수 공공의료 강화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정혜은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 역시 "아동·청소년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은 음료류"라며 "영국처럼 기업의 레시피 변경을 유도해 당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 산업계 "한국은 멕시코가 아니다… 이미 '저당'이 대세"
하지만 산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상욱 한국식품산업협회 식품안전 본부장은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사실상 '세금(Tax)'과 동일한 성격"이라며 "이미 국내 업계는 제로 슈거 등 저당 제품 비중을 3배 이상 늘리며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데이터는 한국과 해외의 상황이 다름을 보여준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등에 따르면 설탕세를 도입한 멕시코의 1인당 연간 탄산음료 소비량은 약 163L에 달하지만, 한국은 약 50~60L 수준으로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 본부장은 "호주 사례를 보면 청량음료 소비가 줄었음에도 비만율은 요지부동이었다"며 "복합적인 비만 원인을 무시한 채 특정 식품군만 규제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은 식사 때 물 대신 콜라를 마시는 서구권과 달리, 식후에 무가당 커피(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식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설탕세 무용론'에 힘을 싣는다.
◆ '풍선효과'와 '역진성'… 서민만 잡는 세금 되나
제도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쏟아졌다. 기용기 식품의약품안전처 식생활영양안전정책과장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설탕 대신 들어가는 '대체당(인공감미료)'에 대한 논의가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려 WHO가 섭취를 권장하지 않는 대체당 사용을 늘릴 경우, 또 다른 건강 문제를 야기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뼈아픈 지적은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상대적인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역진성' 문제였다. 이날 박은철 교수가 제시한 발제 자료에서도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소아·청소년 비만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세금을 매기면 가뜩이나 비만율이 높은 저소득층 가계에 타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사무엘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21대 국회에서도 논의되다 폐기된 이유 중 하나가 저소득층과 소상공인의 부담 증대였다"며 "영양학적으로 필수적인 식품은 제외하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역시 "소비자 가격 전가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미 담배와 술값이 올랐듯, 부담금이 도입되면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만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비만 주범은 '배달앱·탕후루'인데… 캔음료만 핀셋 규제?
비만의 근본 원인 진단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발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비만율이 급증한 시기는 2019년부터 2021년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과 일치한다.
이 시기는 배달 음식 거래액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마라탕, 탕후루 등 고열량 외식 트렌드가 아이들의 식탁을 점령했던 때다. 식습관의 거대한 지각 변동은 외면한 채, 관리가 쉬운 가공식품 음료에만 '징벌적 과세'를 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혜인 경향신문 기자는 "이미 2009년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을 통해 학교 내 고열량·고카페인 음료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며 기존 제도의 실효성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날 토론회는 '아이들의 건강'이라는 대의명분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해법이 '세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팽팽한 시각차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정부가 걷으려는 2,400억 원이 아이들의 살을 빼는 비용이 될지, 아니면 고물가 시대 서민들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비용이 될지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임채영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