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매'하듯 로봇 데이터 집적해야… 소버린 AI 체계 필요 제기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정부가 피지컬AI를 반도체·AI 데이터센터와 함께 미래 국가 경제를 이끌 3대 메가프로젝트로 제시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현행 국책과제만으로는 독자 피지컬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봇과 제조 현장을 움직이는 피지컬AI의 핵심 병목이 알고리즘보다 제조 로우데이터(Raw Data) 확보에 있는 만큼, 대기업·강소 제조기업·AI 모델 기업·컴퓨팅 기업을 묶는 국가 단위 얼라이언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직접 제기됐다.
피지컬AI 분야 대표 기업으로 참석한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는 “국가 차원에서 피지컬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지컬AI는 LLM보다 만들기가 훨씬 어렵다. 실제 제조업 현장의 데이터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리얼월드 등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만든 모델은 우수한 성능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데이터를 갖고 있는 국내 강소 제조업과 연계되지 않아 모델 활용도가 낮아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실제 제조 기업과 컴퓨팅 기업, 모델 기업을 묶어 피지컬AI 연합군을 만들어야 한다”며 “LLM에서 정부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것처럼 피지컬AI도 대기업, 강소기업, 컴퓨팅 기업이 함께 움직이는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글로벌 초격차가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정부에서는 올해 이미 과기부 주도 하에 ‘피지컬 AI 선도기술개발’ 과제를 이달 초부터 수행 중이다. 이 사업은 피지컬AI의 핵심 기술인 월드모델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국산화하는 것이 목표로, LG전자가 주관기관을 맡고 마음AI, 홀리데이로보틱스, 로보티즈, 크라우드웍스, 알체라, KT, KAIST, 서울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등 10개 산학연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현행 사업이 예산과 기간, 참여기업의 범위 면에서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제는 올해 5월부터 2027년 12월까지 진행되며 정부 투입 예산은 340억원, 컨소시엄 기업 출연분까지 합치면 총 497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목표는 월드모델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실제 로봇의 최종 동작 성공률을 20%포인트 이상 끌어올리고, 제조·물류 현장에서 사업화 가능한 실증 성과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빅테크와 주요국이 피지컬AI와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에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투입하는 상황에서 2년 미만의 단기 과제와 수백억원대 예산만으로는 국내 제조업 전체를 포괄하는 범용 모델과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 구조도 한계로 거론된다. 현재 컨소시엄은 주요 산학연이 참여한 의미 있는 조합이지만, 한국 제조업의 폭을 감안하면 범위가 제한적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전자, 물류, 식품, 섬유, 뿌리산업 등 업종별 현장 데이터가 모두 다르고, 중견·중소 제조기업과 소부장 강소기업이 보유한 작업 노하우 역시 분산돼 있다. 특정 컨소시엄 내부 실증을 넘어 산업 전반의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축적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가 대국민보고회에서 제안한 ‘데이터 수매제’도 같은 맥락이다. 엄 대표는 “피지컬AI 기업으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로우데이터인데, 각 기업마다 취득하는 데이터의 프로토콜이 달라 범용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쌀을 수매하듯 데이터를 수집해서 피지컬AI 기업들에게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언했다. 제조 노동자가 바디캠 등으로 작업 동작 데이터를 수집하면 정부가 이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구매해 데이터센터에 집적하고, 기업과 연구기관이 활용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이는 데이터 확보뿐 아니라 데이터 표준 수립, 제조 현장 근로자의 추가 수익 창출, 피지컬AI 생태계 조성을 동시에 겨냥한 제안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가가 데이터 수집 표준과 보안 체계를 만들고, 대기업·강소 제조기업·로봇 스타트업·AI 모델 기업·컴퓨팅 기업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현행 ‘피지컬 AI 선도기술개발’ 사업을 기반으로 삼되, 3대 메가프로젝트 차원에서 더 큰 국가 단위 프로젝트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거점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AI 파운데이션 모델은 이제 단순한 상용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주권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며 “피지컬AI는 파운데이션 모델 없이는 돌아갈 수 없고, 미국과 중국은 자체 모델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을 움직이는 로봇 두뇌를 해외 모델에 의존하게 되면 향후 기술 봉쇄나 접근 제한이 발생했을 때 산업 현장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1~2년 사이 큰 격차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지금은 작은 과제를 순차적으로 쌓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 총력전 형태로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