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전자·이수페타시스도 증설 나서…일본 업체도 투자 확대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국내 반도체 부품업체들의 생산능력 확충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대규모 반도체 기판 투자를 진행하는 가운데, 대덕전자와 이수페타시스 등 중견업체들도 잇따라 생산시설 확대에 나서면서 AI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증설 경쟁이 국내 부품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AI 서버용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세종사업장과 베트남 생산법인에 총 6조7800억원을 투자한다. 세종사업장에 4조2700억원, 베트남 법인에 2조5100억원을 각각 투입하는 계획이다. 세종사업장 투자는 2028년 5월까지 진행되며 같은 해 9월부터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베트남 공장은 2030년 6월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AI 데이터센터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반도체 패키지기판(FC-BGA)의 공급 부족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 서버용 최첨단 MLCC는 공급 가능한 업체가 제한적이고 생산능력 증설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수급이 빠듯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투자는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와 투자 부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삼성전기는 글로벌 고객사의 투자금 지원과 중장기 물량 확보를 바탕으로 증설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설비투자 이후 수요가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가동률 부담을 줄이면서 장기 공급 기반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LG이노텍도 반도체 기판 사업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키우기 위해 생산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경북 구미사업장 6000억원 투자에 이어 올해 6월 베트남 하이퐁 반도체 기판 공장 증설을 위한 투자를 결정했다. 베트남 공장은 2027년 5월 준공을 목표로 하며, RF-SiP와 FC-CSP, FC-BGA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LG이노텍은 국내 구미사업장을 신기술 개발과 고부가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핵심 거점으로, 베트남 공장을 범용 제품 중심의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AI 서버용 FC-BGA 사업에서는 미국과 대만 고객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 증설도 논의하고 있다. LG이노텍은 패키지솔루션 사업 매출을 2030년 3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견 기판업체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대덕전자는 지난달 22일 반도체용 제품 생산설비와 부대시설 확충을 위해 6150억원 규모의 신규 시설투자를 결정했다. 투자 기간은 2030년 12월까지다. 앞서 5월 FC-CSP 신공장 인프라 구축에 2130억원, 7월 FC-CSP·FC-BGA 설비에 497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데 이어 추가 투자에 나선 것이다. 최근 6개월간 발표한 투자 규모만 약 1조4700억원에 달한다.
이수페타시스도 국내 생산기반 확대에 나섰다. 대구시와 달성군은 2일 이수페타시스와 대구국가산업단지 내 제7공장 신설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수페타시스는 5만1000평 부지에 5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공장을 건립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AI 가속기와 고속 네트워크 장비에 들어가는 고사양 인쇄회로기판(PCB)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투자 기간과 금액 등 세부 사항은 아직 검토 중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확정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국내 업체들의 증설 경쟁은 글로벌 선도기업들의 투자 확대와도 맞물려 있다. 일본 무라타제작소는 2026회계연도 설비투자 계획을 기존 2550억엔에서 2700억엔으로 상향했으며, 향후 5년간 MLCC 생산능력 확대에 1조엔을 투자할 계획이다. FC-BGA 시장 선두업체인 이비덴도 일본 기후현 가마 공장에 1510억엔을 투자해 CPU용 고성능 반도체 기판 생산능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규 설비는 2029년부터 순차 가동할 예정이다.
이처럼 국내외 부품업체들이 동시에 생산시설을 늘리는 것은 AI 반도체의 고성능화가 기판과 수동소자에 요구하는 사양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AI 가속기와 서버용 CPU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반도체 기판은 대면적·고다층화되고, 전력 공급을 안정화하는 MLCC도 고용량·고압 제품의 채용이 늘어난다. 기존 범용 부품과 달리 고부가 제품은 생산공정과 설비의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아 단기간에 공급능력을 늘리기 어렵다.
다만, 업체별 투자 전략은 제품과 고객군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AI 가속기와 서버용 FC-BGA를 중심으로 고부가 기판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대덕전자는 FC-CSP와 FC-BGA뿐 아니라 메모리용 기판 생산능력도 확충하고 있다. 이수페타시스는 AI 가속기와 네트워크 장비에 쓰이는 고다층 PCB를 중심으로 생산기반을 넓히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가 반도체 제조사를 넘어 기판·부품 공급망 전반의 설비투자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반도체 부품업계 관계자는 “AI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면서 고성능 기판과 부품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생산능력 확대가 곧바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객사별 제품 사양과 공급 일정에 맞춰 투자를 진행하고 실제 양산 시점에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