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철에 접어들었다. 전세계는 7월 중순경부터 약 한 달여 동안 성수기 휴가철을 맞아 휴가복장에 짐가방을 싸들고 휴가를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 시기가 되면 항공권 가격은 더 비싸지고 빈 좌석을 찾기도 더 어려워진다.
실제로 지난 15년 사이 민간 상업 항공사의 평균 여름철 승객 좌석이용률(passenger load factor, 줄여서 PLF) 지수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경기가 호황이던 2005년 즈음 항공사들은 성수기철 4좌석중 3좌석을 판매했다. 2007-10년 국제금융위기 전후로 PLF 지수는 잠시 주춤했으나 그 후 다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며 올해 2018년 전세계 항공사들의 PLF 지수는 81.7%로 증가했다.
저가항공사(Low Cost Carrier, 줄여서 LCC)의 항공산업계 진입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과거 철도, 여객선, 버스, 자가운전 등 항공편 이외의 방식으로 중장거리 여행을 하던 여행자들은 비슷한 비용으로 저가항공사의 항공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저가항공사들은 국내노선은 물론 근장거리 해외노선을 취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4-5시간차 거리권 해외여행도 더 널리 보편화됐다. 이제 전세계 항공승객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객기들 절반수가 저가항공사 운항기일 정도로 저가항공사는 현대적 여행 문화의 일부가 됐다.
민간 대중 항공여행이 처음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던 1950-60년대 이른바 ‘항공여행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 of Flying)' 때만 해도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소수의 엘리트층의 특권이었다. 그런만큼 항공여행이란 널찍한 기내 공간에 세련되고 안락하게 디자인된 인테리어에서 고급 식사 대접, 기내 여가 서비스, 세련된 대화술에 이르기까지 승무원과 조종사가 공동 연출하는 격조 높은 환대 서비스 일체를 뜻했다.
그러나 긴 항공여행은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따분한 시간이다. 50-60년 전 우수한 기내 서비스로 유명했던 에어프랑스(Air France)는 승객이 탑승하자 마자 신문과 잡지 읽을 것과 우편엽서를 나눠주며 따분한 시간을 보내라고 독려했다. 긴 시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승객이 눈요기할 수 있도록 벽에 명화를 걸기도 하고 파일럿이 조종실서 나와 승객에게 다가가 유쾌한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전세계적으로 저가항공사를 가장 애용하는 소비자층은 20-30대 밀레니얼 세대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용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어 항공기당 좌석이용율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들어 유명 저가항공사별 좌석이용률을 보면, 라이언에어(Ryanair)는 95%, 영국의 이지젯(EasyJet)은 92.4%, 말레이지아의 에어아시아(AirAsia)는 91%, 인도의 스파이스젯(SpiceJet)도 93%에 육박하고 있어 사실상 만석 운행을 하고 있다.
저가항공사에 대한 이용도와 성장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새 저가항공사가 새로 경쟁에 진입할 때마다 항공권은 더 저렴해 진다. 경쟁은 가격을 낮추고 결국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권을 준다. 소비자들은 직접 항공사별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항공권 가격을 비교하고 스케줄에 맞는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헌팅한다. 그 결과 저가항공사 노선들은 비성수기에도 80%가 넘는 좌석이용률로 운항되며 성수기에는 전체 좌석 90% 이상대 만석으로 운행된다.
그러나 저가항공사는 일반 항공사에 비해 낮은 항공운임료로 운영되고 마진이 좁기 때문에 이윤 한계점에 금방 도달한다. 지난 몇 해 동안 저가항공사들은 기내 좌석은 더 작고 빽빽하게, 통로는 더 좁게 인테리어를 재디자인하는 한편 모든 기내 서비스를 유료화하고 기내 수하물 휴대를 금하는 방식으로 이윤 짜내기에 힘썼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아일랜드의 라이언에어(Ryanair)는 항공기 당 탑승자 수 최적화를 위해 입석 판매와 화장실 유료화를 발표했다가 여론의 반발로 백지화했다.
로이터스 통신 산하 통계기업인입소스(Ipsos SA)의 조사 결과 70% 이상의 항공승객들은 더 편한 좌석을 위해 웃돈을 지불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렇듯 불필요한 서비스 없이 저렴하고 실속있는 저가항공여행의 심플한 매력에서 소비자들은 당분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싼 만큼 비좁은 좌석과 다리뻗을 공간, 기초적인 기내 서비스, 기내 수하물 제한 등등 저가항공사를 이용한 항공 여행은 불편하다. 그런데도 지난 몇 년 사이 전세계 항공여객의 수는 계속해 증가하고 있고 항공편당 높은 좌석이용률이 계속 유지될 추세가 꺾일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항공관광의 민주화는 신체활동 부자유자에게도 자유로운 여행의 시대를 열어줬다. 조사에 따르면 현대 여행자들의 40%가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어떤 형태로든 신체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최근 기내 디자인과 스타일링은 사용자 편의가 고려된 유니버설 디자인 원리를 응용하는 추세이며, 특히 위생이 중요한 화장실 공간에는 거동이 불편한 탑승객을 고려한 비접촉식 수도꼭지나 항균기능 표면을 사용할 것이 권유된다.
여객기 내 편안한 캐빈 공간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캐나다의 여객기 제조업체 봄바르디에는 최근 저가항공사들이 승객의 수하물을 제한하는 추세는 승객의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고 지적하고 기체가 작더라도 기내 객석 위 짐 수납공간을 넉넉하게 설계하는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한다. 또 요즘처럼 개인 디지털 디바이스와 기내 엔터테인먼트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익숙해져 있는 여행객들을 위해 기내 WiFi를 제공하는 추세도 급격히 늘고 있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저서 <구텐베르크 은하계(Gutenberg Galaxy)>(1962년)에서 ‘글로벌 빌리지(Global Village)’라는 표현을 처음 썼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 인류는 누구나 저렴한 항공 여행을 누리면서 이른바 ‘시간과 공간이 압축(time-space compression)’된 세상에 살게 되리라 예견했다. 저가 대중 항공산업은 현대인이 지구 반대편 저멀리 떨어진 장소와 이벤트를 반나절만에 오가며 체험의 ‘내폭’을 선사하는 현대판 여행의 神 헤르메스라 해도 좋으리라.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