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산 수출 열쇠는 '국산화'...S&T중공업, 미션 개발해 수출도 하는데
K2흑표 전차의 파워팩(엔진+변속기) 국산화는 국내 방위산업계의 해묵은 주제 중 하나다.
지난 2005년 4월 처음으로 파워팩 국산화가 결정될 당시 개발 기한은 2012년이었지만,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5년 두산인프라코어가 다행히 엔진 개발에는 성공했다.
그런데, 변속기 국산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변속기 개발을 맡았던 SNT중공업은 변속기 개발을 마쳤으나, 성능 시험평가에서 요구 수준을 충족하지 못해 K2는 국산엔진과 독일 렌크(RENK)에서 수입하는 변속기를 결합한 형태로 양산이 진행되고 있다.
폴란드에서 K방산이 잭팟을 터뜨리며 대형수주에 성공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노르웨이(72대) 탱크 수주전에서 필드테스트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고도 독일 레오파드Ⅱ로 결정되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루마니아 탱크 수주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노르웨이 수주 실패 후 바뀐 분위기..."독일, K방산 독주 견제 시작돼"
루마니아는 폴란드에 이어 400여대의 탱크를 보유했다. 이 중 60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군사력 공백을 당초 독일이 보유한 중고 전차로 메워줄 예정이었으나, 독일 정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루마니아 정부는 독일에 실망했고, K2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독일이 폴란드의 경우처럼 쉽사리 수주를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노르웨이 수주전 실패 이후 불거졌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심국가인 독일의 입장에서 유럽은 안방인데, 한국에 안방을 내준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일 수 있다.
더구나 모든 제조업에서 '규모의 경제'는 원가와 품질관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진다. 수주잔고가 많으면 안정적으로 근로자와 원부자재, 부품 등을 여유있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군사력 증강으로 방향을 선회한 독일에게 400대의 탱크는 적은 수량이 아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차의 핵심부품인 변속기를 독일에 의존하게 되면, 이는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변속기 공급 수량과 시기가 전차의 생산 수량과 납기를 결정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尹 대통령, K방산 컨트롤타워 수립 지시...방산, 수출전략산업 육성 강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작년 170억달러(약 21조6000억원)의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올리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K방산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수립을 지시했다. 국가안보실 2차장실 산하에 ‘방산수출기획팀(가칭)’을 수립해 방산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해 국방력 강화에 더해 장기적인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의지에서다.
방산기업들은 오랜 동안 최대 고객이자 사실상 유일한 고객인 정부(방위사업청)의 눈치를 살피며 지내왔다. 자칫 심기라도 건드리면 커다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루 아침에 고치기 어려운 관행이다. 수출이 급증했다고는 하지만, 방사청이나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 산하 정부 기관들은 기업 입장에서 여전히 '슈퍼갑(甲)'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K2 변속기 국산화처럼 해묵은 사안들은 컨트롤타워가 직접 나서서 소통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방산업계의 해묵은 숙원사업은 제법 많다.
근본적으로 내수에서 수출로 방산부문이 빠르게 전환해야 하는데,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여러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사실, 그런 이유로 방산 컨트롤타워가 필요했다. 문제는 아직 초창기라서인지 컨트롤타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을 시작으로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면 많은 숙제들이 찾을 필요도 없이 방산수출기획팀으로 모여들게 되고, 안건마다 해당 관계자들을 모아 소통의 장만 만들어줘도 절반 이상은 그 자리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최근 방산 관계자 모임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관련자들을 모아 얘기하면 문제 공유와 대안 마련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실적으로 체계업체인 현대로템은 직접 나설 이유가 없다. 지금처럼 렌크에서 변속기를 받아 조립하면 된다. 이미 확보한 수조원 어치의 수주분은 렌크와도 수입 계약을 마친 상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현대로템은 방사청과 렌크의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이다.
당사자인 SNT중공업은 더 불편하다. 체계업체인 현대로템의 심기까지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국산변속기, 품질 수준 이미 검증돼 ...성능 평가 절차 개시 서둘러야
SNT중공업이 만든 변속기 품질은 이미 튀르키예에서 검증받았고, 수출길도 열린 상태다.
방산 관계자들 사이에서 국내 요구 품질 수준(320시간 동안 9600km·무결함)은 사실상 공학적으로 무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약 20년 동안 고장이 없어야 하는 품질 수준이다. SNT중공업은 시험 평가에서 7110km 무결함 성능을 보였다. 15년 정도는 고장 없이 쓸 수 있다는 얘기다.
55톤(공차 중량)의 K2전차는 1500마력 엔진으로 평지에서 70km/h, 야지에서 50km/h의 속도로 달리며 포를 쏜다. 이런 조건에서 7000km·무결함은 훌륭하다는 견해가 많다.
튀르키예는 나토에 가입돼 있지만, 러시아 무기체계도 사용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다. 이런 이유로 튀르키예가 개발한 알타이 전차에 사용할 파워팩이 절실했고, 튀르키예가 요구한 품질 수준은 약 3500km 무결함이었다. SNT중공업의 변속기는 가볍게 성능 시험을 통과해 수출을 앞두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사안은 이미 답이 나와 있다. 방사청에서 수백억원 어치나 생산된 변속기를 전차에 장착해 성능 평가 절차를 개시하고 시험평가 기준에 대해 재고하면 된다. 자국에서 홀대받는 제품을 구매할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이냐 하는 거대하면서도 하챦은 숙제가 있을 뿐이다. 자칫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럴 때 나서라고 윤 대통령이 방산수출기획팀 수립을 지시하지 않았을까?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