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우리은행이 범죄행위 인지했을 가능성 시사
우리은행 "언제 인지했는지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어"
금감원장도 이례적으로 우리은행 직격
현 경영진도 제재받을 가능성 높아
[녹색경제신문 = 강기훈 기자]
우리금융지주와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이 연루된 부적정 대출 건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범죄혐의를 언제 인식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다.
만약 작년에 인지해놓고도 우리금융이 해당 건을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았다면 은행법 위반에 해당한다. 금융당국이 크게 벼르고 있는 상황이라 우리은행과 우리금융뿐만 아니라 현 경영진 또한 증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26일 금감원 은행검사1국이 '우리은행의 전직 회장 친인척 부적정 대출 취급 관련 추가 사실관계 등에 대한 설명'이라는 조간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세간의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의 핵심은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이 범죄 혐의 시점을 언제 인지했는지 여부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측이 '당 사안은 여신 심사소홀에 따른 부실에 해당하므로 금융감독원에 보고할 의무가 없고, 뚜렷한 불법행위도 발견되지 않아 수사의뢰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며 "이에 금감원이 이번 사안과 관련된 사실관계에 대해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설명드린다"고 밝혔다.
우선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지난 1월 자체감사를 실시하기 전인 작년 4분기부터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 중 상당수가 부실화됐음을 인지했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올해 1~3월 자체감사, 4월 자체징계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임모 전 본부장 관련 사실관계를 인지했음이 확인된다"며 "그렇게되면 4월 이전에는 우리은행에게 금융사고 보고·공시의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월 자체감사를 실시하기 이전인 작년 4분기 중 부적정 대출 중 상당수가 이미 부적정하게 취급되고 부실화 되었음을 인지했던 것으로 확인된다"며 "만약 해당 인지시점에서 여신 심사소홀 등 외에 범죄혐의가 있음을 알았다면, 작년 4분기에 이미 금융사고 보고·공시의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우리은행은 5월에 자체적으로 진행한 2차 심화검사 때 특이 자금거래 정황을 발견함으로써 범죄혐의를 인지했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심화검사를 진행하던 도중 금감원이 현장조사를 단행했고, 아직 검사가 끝나지 않아 금감원에 해당 건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이 작년 4분기에 우리은행이 범죄행위를 인지했을 가능성을 시사하자 우리은행은 돌연 입장을 바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이 제시한 사실관계가 기본적으로 틀리진 않다"면서도 "정확히 언제 범죄행위를 은행 차원에서 알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5월에 범죄혐의를 발견했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것이다.
만약, 금감원이 의심하는 대로 우리은행이 작년 말에 범죄행위를 알았음에도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면 은행법 위반에 해당한다. 은행법 제34조의3와 동법 시행령 제20조의3 및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67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금융 업무와 관련해 임직원에게 형법 또는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관련된 혐의가 있을 시 지체없이 금감원에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이 당국의 제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현 경영진인 조병규 우리은행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제재 가능성 또한 거론된다.
당장 이복현 금감원장이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원장은 최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대출에 대해 몰랐었다는 전직 회장의 발언을 옹호하고 심사소홀 외에 뚜렷한 불법행위가 없었다며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는 점을 지속해서 합리화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날 오전 검찰이 우리은행 관계자들을 상대로 강제 수사에 착수한 점 역시 경영진의 처벌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는 오전 9시쯤부터 손 전 회장 부적정 대출 건과 관련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과 선릉금융센터 등 사무실 8곳, 그리고 사건 관계자 주거지 4곳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조 행장과 임 회장이 제재를 받게된다면 은행법 69조 제1항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크다. 해당 조문에 따르면, 은행의 임원 또는 직원이 범죄사실의 공시를 게을리한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 또, 내부통제 실패를 이유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에 따라 행정 제재 또한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장이 나서서 직접 은행과 경영진을 강하게 질타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검찰 조사까지 받는 마당에 은행 차원에서 제재를 받지 않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강기훈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