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참여 시 7조원 매출 감소 우려...은행 점유율 64% 위태
- 현물이전 제도 3개월 만에 4000억 자금 이동...수익률 경쟁 본격화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고용노동부가 21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위한 전문가 자문단을 발족하면서 연간 1조6840억원 규모 수수료 시장을 주도해 온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2.07%)이 국민연금(6.82%)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물가상승률(3.6%)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질 마이너스 수익률이 제도 개편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특히 1170조원 규모 운용 자산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진출 가능성이 금융권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은 100인 이상 사업장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이 전담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현재 퇴직연금 시장의 64%를 차지하는 은행권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운용 수탁 경쟁에 뛰어들면 도미노식 시장 재편이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의 89%를 차지하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수수료율이 기금형 전환 시 성과 연동형으로 바뀌며 수익이 30%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호주 사례가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 시행 3개월 만에 4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동했으며, 일부 증권사는 퇴직연금 계좌 신규 개설이 120% 급증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주윤신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수익률 경쟁 시대가 본격화하면 운용사 간 격차가 3%p 이상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대응해 다양한 디지털 전략을 모색 중이다. 신한은행은 AI 기반 포트폴리오 재균형 서비스를, KB금융은 MZ세대를 겨냥한 메타버스 플랫폼 내 퇴직연금 전용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ESG 투자 확대를 위해 탄소 배출량 측정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 진단 시간을 단축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디지털 혁신이 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시장 경쟁력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최근 퇴직연금 사업자들을 상대로 한 전수 조사에서 운용 미숙자금(12.7%) 및 과다 수수료 징수(23건)를 적발한 점은 금융권의 신뢰도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은행협회는 "국민연금 참여 시 업계 매출이 7조원 감소할 것"이라며 위기감을 표출하고 있으며,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노후 금융 시장에서 신뢰 회복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민간과 공적 기관의 상호 보완적 역할 가능성" 발언은 미묘한 복선으로 읽힌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법안 발의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6개월 안에 운용 역량을 입증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영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