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성과와 사업 성과 간극…고객 확보가 과제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파운드리 업계는 지금 2나노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무어의 법칙’ 한계가 가까운 상황에서 성능·전력 효율 경쟁이 미세화 공정의 신뢰성으로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 1, 2위보다 더 빠르게 ‘2나노급 공정’을 실제 제품에 적용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인텔입니다.
그런데 반도체 업계의 반응은 유독 조용합니다. 아직 TSMC조차 2나노 공정을 적용한 제품을 본격적으로 소비자에 선보이지 못한 상황을 감안하면, 판도를 뒤집을 만한 성과라는 평이 나올 법한데도 말입니다.
현재 파운드리 대장 격인 TSMC는 아이폰18 시리즈에 탑재되는 ‘A20’에 2나노 공정을 적용하고 있고, 삼성 파운드리 역시 자사 모바일 AP ‘엑시노스 2600’에 2나노 공정을 적용해 신뢰성 검증에 나섰습니다. 물론 삼성전자 역시 2나노 공정의 대형 고객사를 확보했습니다. 테슬라 ‘AI6’칩이 대표적이죠.
반면, 이번에 인텔이 선보인 공정은 18A입니다. ‘코어 울트라 시리즈 3(Core Ultra Series 3, 코드명 팬서레이크)’ 프로세서를 18A 공정으로 제조했다고 밝혔습니다. 18A는 인텔이 자체적으로 정의한 공정 명칭으로, 1.8나노급(옹스트롬 단위)을 의미합니다. 현재 TSMC와 삼성 파운드리가 준비 중인 2나노 공정보다 한 단계 더 미세한 수준인 것이죠.
인텔은 지난해 10월 팬서레이크(Panther Lake)의 아키텍처를 공개하고 지난 1월 CES에서는 팬서레이크를 탑재한 삼성전자·LG전자·에이수스 등 주요 OEM의 노트북을 선보였습니다. 제품이 개발 단계를 넘어 완제품에 적용된 상황으로, 지금은 새 AIPC들이 소비자에게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인텔 팬서레이크를 ‘갤럭시북6’에 탑재한 삼성전자는 제품 발표 당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텔 18A 기반 프로세서는 삼성전자와 개발 초기 단계부터 협력해 설계한 제품이다.” 신뢰성 검증이 끝났기 때문에 제품에 적용했다는 의미입니다. 기술적으로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계속해 의문이 남습니다. 왜 인텔 파운드리 기술력에 대해 업계가 이처럼 조용한 것일까요?
인텔의 설명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파운드리는 본질적으로 외부 고객사 수주 중심으로 성과가 드러나는 사업인데, 현재 18A 공정은 인텔 자체 제품에 우선 적용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즉, 팬서레이크를 통해 공정 안정성과 기술력을 검증하는 과정이지 아직 상업적 파운드리 성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립부 탄(Lip-Bu Tan) 인텔 CEO는 최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18A 공정을 기반으로 한 첫 제품들을 출하하고 있으며 수율 개선과 생산량 확대가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외부 고객 확보와 관련한 언급은 차세대 공정인 14A 이후로 미뤘습니다.
수익성 지표 역시 이를 보여줍니다. 인텔은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18A 조기 생산 확대에 따라 파운드리 부문의 손실이 오히려 확대됐다고 밝혔습니다. 팬서레이크의 비용 구조가 아직 개선 단계에 있으며 수익성이 아닌 ‘검증용 제품’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인텔은 상업용인 14A 공정에 대해서도 “외부 고객 확보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업계 해석은 한층 더 냉정합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파운드리 부활을 위해 3나노를 건너뛰고 1.8나노로 직행했다”며 “문제는 3나노에서 충분한 시장 검증을 거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1.8나노 역시 고객사 입장에서 신뢰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인텔이 시장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18A 물량 대부분을 자사 제품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파운드리 사업에서 시장의 관심은 ‘인텔이 2나노급 공정에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인텔에 제조를 맡기느냐’에 쏠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외부 고객 없이 내부 물량으로만 돌아가는 양산은 기술 시연에 가까울 뿐이지, 사업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인텔은 전통적으로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in), 즉 설계·제조 통합 기업 모델을 유지해 왔습니다. 자사 CPU와 반도체를 자체 공장에서 생산하는 구조로 외부 고객을 위한 파운드리 서비스는 제한적으로만 제공해 왔습니다. 그러나 10나노급 공정 전환이 수년간 지연되면서 제조 경쟁력이 약화됐고, 외부 고객용 파운드리 사업 역시 2018년을 기점으로 중단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인텔은 2021년 팻 겔싱어 CEO 취임과 함께 ‘IDM 2.0’ 전략을 내세워 파운드리 사업 재건을 선언했습니다. 자사 생산망을 외부 고객에게 개방하는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ntel Foundry Services)’를 출범시키고, 미국 애리조나와 오하이오 등에 대규모 신규 팹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공정 경쟁력 회복과 대형 외부 고객 확보가 지연되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2024년부터는 립부 탄 CEO 체제로 전환되며 파운드리 전략도 다시 조정되고 있습니다. 탄 CEO는 ‘인텔 파운드리’를 공식 출범시키며 공정 개발 속도와 고객 대응 체계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18A 공정을 기점으로 외부 고객 유치에 본격 나선다는 전략이지만,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다만 변수는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입니다. 지난해 8월 미 트럼프 정부는 인텔 전체 지분의 약 10%를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이 거래는 ‘미국 반도체법(CHIPS Act)’ 등에서 지급 예정이던 보조금과 국방부 프로젝트 자금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 미국 정부는 인텔의 최대주주로 부상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상황에서 인텔은 사실상 ‘국가 전략 반도체 기업’ 지위까지 얻게 됐고, 향후 대형 고객 유치나 설비 투자에서도 정책적 뒷받침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입니다. 한 반도체 관계자는 “TSMC와 삼성에 이어 최선단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은 인텔뿐”이라며 “미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만큼 파운드리 구도가 언제든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슬예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