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나희재 기자] 금융감독원이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과정에서 증권신고서의 충실도에 따라 심사 강도를 달리하는 ‘정정요구 차등화’ 제도를 도입한다. 충분한 정보를 담은 신고서는 심사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반면, 정정요구 이후에도 중요사항의 보완이 미흡한 신고서는 관련 사실을 시장에 공개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자금조달 속도를 높이면서도 주관사의 실사 책임을 강화해 투자자 보호를 병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28일 금융감독원은 IPO·유상증자 주관업무 담당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투자협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증권신고서 심사 효율화와 IPO 제도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금감원은 투자자 보호 원칙을 유지하되 일반 기업이 필요한 시기에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신고서 심사의 효율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핵심은 증권신고서 정정요구 방식의 차등화다. 기존에는 부실한 신고서가 제출되더라도 금감원이 보완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적은 정정요구서를 발송해왔다. 그러나 일부 발행사와 주관사가 이에 의존해 최초 신고서 작성 단계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정정 이후에도 보완이 미흡해 정정과 재정정이 반복되는 사례가 나타났다는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반복적인 정정은 해당 기업의 자금조달 일정을 늦추는 동시에 한정된 심사 인력이 특정 신고서에 집중되면서 다른 기업의 심사 속도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최초 정정요구는 현행과 동일하게 보완이 필요한 내용을 상세히 안내한다. 다만 정정요구 이후 제출한 신고서에서도 중요 정정사항 상당수가 제대로 보완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두 번째 단계부터는 방식이 달라진다.
금감원은 이 경우 정정요구서에 세부 보완사항을 다시 열거하는 대신 ‘제출된 정정신고서는 정정요구 사항 반영이 미비했다’는 취지만 기재한다. 해당 내용은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시장과 투자자에게도 공개된다. 반복적으로 미흡한 신고서를 제출한 발행사와 주관사에 사실상 시장을 통한 압박을 강화하는 셈이다. 반대로 투자위험요소 등 중요 정보를 충실하게 담은 신고서는 심사 결과를 최대한 빠르게 전달해 자금조달 기간을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제도상으로는 기존 정정요구를 ‘레벨1’, 강화된 정정요구를 ‘레벨2’로 구분한다. 레벨1은 최초 신고서나 정정신고서에서 통상적인 수준의 중요사항 누락이나 보완 필요성이 확인된 경우로 기존처럼 구체적인 정정 내용을 안내한다. 레벨2는 이미 정정요구를 받은 뒤 제출한 신고서에서 중요 정정사항 다수가 다시 미비한 경우 적용된다. 이 경우 심사 차등화 사실도 DART 정정공시 안내를 통해 공개된다.
금감원은 지난 2025년 7월부터 시행된 IPO 수요예측 제도 개선 효과도 공개했다. 제도 시행 전인 2025년 상반기 전체 기관투자자의 공모주 배정물량 가운데 의무보유확약 비중은 29.0%였지만, 제도 시행 이후 2026년 6월 말까지 77.7%로 48.7%포인트 상승했다. 정책펀드의 의무보유확약 비중도 같은 기간 35.8%에서 95.0%로 59.2%포인트 높아졌다.
다만 질적인 보완 필요성은 남았다. 전체 기관투자자의 확약 물량 가운데 상대적으로 짧은 15일 확약 비중이 가장 높았고, 사모운용사와 투자일임사 등에 대한 수요예측 참여요건 강화 효과 역시 아직 제한적이었다. 금감원은 IPO 시장이 상장 직후 단기 차익 실현보다 기업가치에 기반한 중·장기 투자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제도를 추가 보완할 계획이다.
오는 11월 시행 예정인 사전수요예측과 코너스톤투자자 제도 준비도 본격화한다. 사전수요예측은 증권신고서 제출 전에 주관사가 기관투자자에게 기업 정보를 제공하고 희망 가격과 물량을 파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시장 수요를 공모가 산정에 반영하는 제도다. 코너스톤투자자 제도는 일정 기간 이상 주식을 보유하는 기관에 공모주 일부를 사전 배정해 중·장기 투자자를 확보하고 상장 직후 주가 변동성을 낮추는 데 목적이 있다.
제도 변화에 따라 증권사의 주관 책임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주관사는 사전수요예측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의 제공 시점과 상대방, 제공내용 등을 기록·관리해야 하며 코너스톤 투자자를 선정할 때도 투자자의 독립성과 적격성을 검증하고 이해상충을 방지해야 한다. 결국 신고서 작성 단계부터 기업 실사와 주주 소통을 강화하지 못할 경우 정정 반복에 따른 자금조달 지연뿐 아니라 관련 사실이 시장에 공개되는 부담까지 안게 되는 구조다.
이승우 금융감독원 공시조사담당 부원장보는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증권신고서 심사의 기본원칙이지만 기업이 필요한 시기에 자본시장을 통해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심사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주관사에 대해서도 “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한 조력자인 동시에 자본시장의 게이트키퍼로서 충분한 실사와 주주 소통을 바탕으로 증자 경위와 자금사용 목적 등을 충실히 설명해 불필요한 정정과 심사 지연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희재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