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2나노 수주 확대…AI·HPC 고객사 다변화 속도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인텔이 AI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생산을 늘리기 위해 최첨단 18A 공정 생산능력 일부를 기존 공정으로 전환한다. 인텔의 외부 고객 확보에 투입할 첨단 공정 여력이 줄어들면서, 2나노 공정 수주를 확대하는 삼성전자에도 새로운 경쟁 기회가 열릴지 주목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미국 오리건주 생산시설의 일부 18A 공정 생산 자원을 인텔3 공정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에 PC용 차세대 프로세서인 팬서레이크 생산에 활용할 예정이었던 웨이퍼 생산능력을 데이터센터용 CPU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다. 추가 인텔3 생산능력은 2027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이번 조치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서버 CPU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인텔의 3분기 데이터센터 사업 매출은 7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78% 증가했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5년간 글로벌 서버 CPU 시장이 최대 5배 성장해 200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수요 증가에 비해 생산능력 확보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텔은 웨이퍼뿐 아니라 반도체 기판과 메모리 등 주요 부품 공급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서버용 CPU는 고성능 패키징에 필요한 기판 공급까지 확보해야 하는 만큼 단순히 웨이퍼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다. 인텔이 첨단 공정을 일부 포기하고 공정 전환까지 나선 이유다.
인텔의 공정 전환이 주목받는 이유는 18A가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인텔은 지난 5년간 총 1080억달러의 설비투자를 진행하며 TSMC에 맞설 첨단 제조 역량을 구축해 왔다. 18A를 앞세워 외부 고객을 확보하고 자체 제품 생산에 의존하는 사업 구조를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자체 서버용 CPU 생산을 늘리기 위해 첨단 공정 생산 자원을 조정하면서 외부 고객 유치에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파운드리 고객은 공정 성능과 수율뿐 아니라 안정적인 생산능력과 납기 준수 여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인텔이 자체 제품 수요에 따라 생산 자원을 재배치한다면 외부 고객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공급 안정성을 확신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인텔 이사회에서 약 30년간 활동했던 데이비드 요피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인텔이 자체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을 생산능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신뢰할 만한 공급업체로 평가받기 어렵다"며 "1년 안에 대규모 파운드리 고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재무적 압박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업 구조상 이해충돌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브로드컴과 퀄컴 등 잠재 고객사들은 인텔과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핵심 제품의 제조 정보를 경쟁사에 맡기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요피 교수는 "고객사와의 이해충돌을 줄이기 위해 파운드리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인텔이 자체 제품 생산에 첨단 공정 자원을 배분하면서 외부 고객의 생산 수요를 모두 흡수하기 어려워진다면, 삼성전자가 추가 고객을 확보할 여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첨단 공정에서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고객사들의 파운드리 선택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을 앞세워 AI와 고성능컴퓨팅(HPC) 분야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는 "올해 2나노 공정 프로젝트 수주 건수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 AI·HPC 고객사로부터 추가 프로젝트를 확보했다는 설명도 내놨다.
고객사 확보 경로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브로드컴 등 주요 고객사와 직접 계약하는 동시에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를 통한 AI 반도체 수주도 추진하고 있다. DSP는 고객사의 반도체 설계를 지원하고 파운드리 생산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자체 설계 역량이 부족한 팹리스 고객까지 수주 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
미국 내 생산 기반도 경쟁 요소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의 양산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첨단 공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미국 고객사들의 공급망 다변화 수요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텔 역시 미국 내 첨단 제조 기반을 갖춘 기업이라는 점에서 양사의 고객 확보 경쟁은 미국 시장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인텔의 생산능력 조정이 삼성전자의 수주 확대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역시 자체 시스템LSI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외부 고객과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TSMC와 비교해 첨단 공정 수율과 생산 규모, 고객사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도 여전히 과제다.
업계에서는 인텔의 생산능력 조정이 삼성전자에 당장 대규모 수주 기회를 제공하기보다는 첨단 파운드리 시장의 고객 확보 경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 기술력뿐 아니라 고객사가 원하는 시점에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수주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 입장에서는 공정 성능과 수율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인텔이 자체 제품 생산과 외부 고객 물량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삼성전자에도 새로운 고객 확보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