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 규제가 시작됐지만 규제 사항이 일관성 있게 전달·시행되지 못해 비닐봉투 제한에 의한 환경 오염 줄이기라는 원래 취지는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1일 기자가 복수의 백화점 식품관을 중심으로 살펴 본 결과, 판매사원들은 비닐봉투 사용 규제에 대해 전보다 조심하는 눈치였지만 규제 사항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게 실행해 옮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명동 S백화점 식품관을 오전에 방문했을 때 반찬코너 직원은 "지난 1일 이전에는 김치, 반찬 코너 등에서 랩으로 포장한 후 속비닐로 포장해서 판매했지만 오늘부터는 랩핑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저녁에 다시 방문하자 이제는 랩으로 포장해서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을 바꿨다.
판교 H백화점 식품관 어패류 업체에서는 "우리들은 생선 담는 트레이조차 옥수수 전분을 이용했다"며 "물기 있는 생선의 경우에는 비닐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물기 있는 생선이기 때문에 비닐은 가능하지만 트레이만큼은 옥수수 전분을 사용한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 이왕이면 친환경 비닐까지 사용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식품관 밖 델리코너에서 음료를 판매하는 한 직원은 “오늘 백화점 개장 전 직원들에게 대대적으로 안내 방송을 했으며 비닐봉투 사용 금지에 대한 사항이 핸드폰 카톡 메시지로도 전달됐다”고 말했다.
비닐봉투 사용 금지에 대해 이전과 달라진 것은 무엇이며 구체적인 전달 사항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해당 직원은 “그런 것은 없다”며 “구체적인 전달 사항 없이 비닐 봉투 사용 금지를 강조하는 내용만 전해 받았다”라고 답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 L백화점 반찬 코너의 경우 상품을 구매해서 멀리까지 이동해야 하는 고객들을 위해 비닐 포장을 한 상태에서 여러 번 랩핑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건을 사서 1~2시간 이동해야 한다는 말에 백화점 직원은 비닐 포장을 하지 않는 대신 랩핑을 더 많이 해주겠다고 권하기도 했다.
모 백화점 스테이크용 고기를 판매하는 사원은 자신들은 친환경 비닐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친환경 비닐에 아이스팩을 넣고 랩핑을 수차례 해서 소비자에게 건네기도 했다.
친환경 비닐을 사용하거나 재활용 불가한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많은 양의 랩핑을 한다면 비닐봉투 사용규제 정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친환경 비닐을 사용한다고 했던 명동 S백화점의 정육 코너에서 건넨 스테이크 포장 비닐은 과연 일반 비닐과 다른 재질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친환경 비닐봉투 포장 위로 물이 새지 않도록 수차례 휘감았던 랩은 친환경 랩일까 PVC랩일까.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알려주지도 않았고 소비자들은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환경을 보호하고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비닐봉투 사용금지법이 유명무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PVC 랩은 재활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가 금지한 PVC(폴리염화비닐) 플라스틱 재질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는 ‘냉동식품’을 제외한 모든 식품에 PVC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2005년부터 규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그 규제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고 있다.
“환경을 위해 일회용 비닐 사용을 금지한다면 랩핑도 금지돼야 하는 게 아닌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 식품관 직원은 “저희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죠”라며 “자세한 사항은 윗분들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답했다.
일회용 비닐봉투 규제를 피하려 평소보다 많은 양으로 랩핑해서 물건을 판매한다면 일회용 비닐봉투 제한은 의미 없는 규제가 될 뿐이다.
이영애 기자 marke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