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보수예산 삭감 사실이지만, 외물 접촉에 의한 아크 발생은 예방 불가
지난 주 강원도 고성과 속초 일대를 덮쳤던 산불의 화마가 진정되자 화재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이번 산불 발화지점이 한전 전주였다는 것에 주목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전의 실적 악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 설비교체보강 예산이 삭감돼 관리소홀로 인한 화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례로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9일, 한전이 탈원전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개폐기 안전점검 위한 배전유지보수 예산을 2018년에 4200억원 삭감했고, 화재 원인 개폐기에 대한 광학카메라 진단은 2017년 11월 이후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윤 의원은 “한전 직원들이 해당 구간을 육안으로 점검했으나, 문제를 발견 못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안전을 위해 탈원전 한다더니, 경영난에 빠진 한전이 안전예산을 축소하는 역설적 상황이 생겨, 예산이 줄어드니 부실점검은 당연한 결과”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윤 의원의 주장은 광학카메라 진단이 2017년 11월 이후 없었다는 사실만 강조해 마치 그 이후 한전이 계속 육안으로만 점검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사실 한전은 지난달까지도 열화상 및 초음파 장비로 해당구간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왔다. 광학카메라 진단에 비해 열화상과 초음파 장비를 통한 진단 방법이 미흡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니, 윤 의원의 지적은 절반 정도만 사실인 셈이다.
또한 화재 이후에도 해당 전주의 개폐기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현재 국과수가 수거해 조사 중이지만, 개폐기의 문제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가장 화재 원인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은 한전이 추측하고 있는 대로 고압선과 외물의 접촉으로 인한 스파크(아크) 발생이다. 이는 현존하는 어떠한 진단방법으로도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없다.
한전의 설비교체 및 보강 예산이 줄어든 것은 안전 관리 측면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집중적으로 설비들을 교체해 더 이상 교체할 설비가 많이 남지 않아 예산을 줄였다는 한전의 해명은 사실 설득력이 부족하다.
산간지역 뿐 아니라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의 구도심만 보더라도 낡은 전력설비는 얼마든지 있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저압 지중설비 계통이 한전 데이터베이스와 정확하게 일치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실무자가 얼마나 될까?
한전은 지금이라도 실적과 관계없이 설비 안전 관련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 한전의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화재의 시작이 전력설비로부터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고, 전력설비는 우리 삶과 너무도 가까이 있는 위험요소라는 점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정쟁을 넘어 논리적 비약이다.
우선 지난해 원전 가동률이 저조했던 것은 원전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원전을 가동할 수 없는 심각한 안전 문제가 발생해 이를 점검하고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이 점검이 순차적으로 마무리되면서 4분기 원전 가동률은 정상 수준으로 올라왔다.
따라서 지난해 원전 가동률 하락을 정부 정책 때문이라고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원전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이를 가리고 가동했다면, 훨씬 더 큰 문제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이 비판을 들을만한 요소는 수없이 많다. 원전을 대체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속도는 물론이고, 그 간격을 메워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인 LNG발전 역시 미세먼지 등 수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강원도 산불을 이유로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기에는 너무나 큰 논리적 비약이 따르며, 다른 정당한 비판마저 의심받을 수 있기에 중단해 주기를 부탁해 본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
수천억 적자로 바뀐 회사가 정상적인 유지보수를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