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의 인생을 바꾸다...파업으로 소비자 피해, 노조의 직접고용 압박 이 커지는 폐단도
삼성전자 노동자와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노조는 회사에 이로운 존재가 되어야 기업 영속성 보장받는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과 콜센터 직원들이 정규직이 된 지 2년이 됐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을 중심으로 지난 2013년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5년간의 지난한 싸움 끝에 2018년 11월 2일 정규직화를 이끌어냈다.
이 사건은 삼성이 수십년간 지켜온 무노조 경영 기조가 사실상 폐기됐다는 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에 삼성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 등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설립과 정규직화가 이뤄지기까지 있었던 오랜 싸움은 노조의 승리로 끝났고, 이로 인한 삼성의 변화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 진행형이다.
◆ 그 날
노조원 사망 등 잇단 사태...삼성전자서비스 직접고용 타결 '80년 무노조경영 종지부'
2018년 11월 2일,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사 직원 직접고용 협상이 최종 타결됐다고 밝혔다. 그해 4월 17일 직접고용 결정을 발표한 지 200일 만이었다. 사측인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의 협상 후 “90여개 협력사에서 8000명 안팎의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직접고용 대상은 이전까지 노조원들이 소속됐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의 정규직과 근속 2년 이상의 기간제 직원으로, 그 인원이 수리협력사 7800명, 상담협력사(콜센터) 900명 등 총 8700여명이나 됐다. 수리 부문 협력사원은 채용 절차를 밟아 2019년 1월 1일자로 삼성전자서비스에 경력직으로 입사하고, 상담사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설립한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CS에 11월 5일자로 들어갔다.
최우수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은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에서 직접 고용 최종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 2013년부터 이어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의 5년에 걸친 오랜 싸움은 종결됐고, 삼성그룹의 무노조경영은 사실상 폐기됐다.
삼성전자서비스에 근무하는 이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합의가 이뤄지기 5년 전인 2013년 7월. AS센터 소속 노동자 386명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조합(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을 공식 출범한 것이다. 이전에 삼성에서 시도되었던 노동조합들보다 훨씬 대규모여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경영을 고수하던 삼성은 애초 이들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의 '무노조 원칙'과 별개로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들은 회사의 정직원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운영하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90% 가까이 외주로 운영됐는데, 기사 대부분이 용역업체의 비정규직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어떤 회사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제품들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AS)를 담당하는 곳이다. 일부 서비스센터에서는 삼성전자 제품을 직접 팔기도 하는 유통 채널의 역할도 한다.
노동자들은 실제로는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의 지시를 받아 고객들 집을 방문해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설치하는 일을 해왔다. 명목상의 고용주인 협력업체, 즉 삼성전자서비스는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 휴일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노동조합은 사내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 사용자가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 등을 들어 "협력업체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해 수리기사와 원청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이들 서비스 기사들의 '진짜 사용자'인지를 다투는 법적 공방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자신들이 받고 있던 형편없던 처우 때문이었다. AS 기사들은 월급제가 아닌 건당 수수료제였고, 식비도 지원되지 않았다. 차량, AS 공구 등 역시 자비로 구매하고 유지비를 내야 했다. AS평가 때 고객평가 10점이 나오지 않으면 호된 질타가 이어지고 이에 따른 반성과 소명을 해야 했다. AS기사를 외주 용역으로 고용하면서 직원 교육은 삼성에서 시행했으며, 이는 위장도급제로서 파견법 위반 소지가 컸다.
업무 강도는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셌다. 수당을 많이 받기 위해 무리한 출장에 나서는 일도 잦았다. 2013년 9월에 칠곡센터에 근무하는 AS기사 조합원이 출근하다가 뇌출혈로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노조가 설립되자 협력업체 대표들은 즉각 반발했다. 조합원들에 대한 압박도 커졌다. 이런 와중에 생활고와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 한다는 이유로 압박을 받던 천안센터 근무자 최종범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2014년 3월 해운대센터를 폐업시켰다. 폐업 이유가 노조원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노조로부터 거센 반발이 나오자 아산센터, 이천센터까지 추가로 폐업됐다.
2014년 5월 17일 또 한 명의 자살자가 발생했다. 양산센터 분회장 염호석씨가 양산시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강릉시의 길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것이다. 이에 노조는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여론이 들끓자 2014년 6월 28일, 삼성전자서비스와 노조간의 단체협약이 체결되고 노동자들의 파업이 마무리됐다. 단체협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은 삼성그룹이 사실상 노조를 협상의 상대로 인정했다는 의미였다.
2018년 4월 삼성은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후 그해 9월까지 수십 차례에 걸친 사측과 지회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던 협상은 결국 2018년 11월2일 최종 타결을 이뤄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당시 "민주노조를 지켜왔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라며 “앞으로 삼성의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자회사를 세워 협력사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존 방식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물꼬를 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삼성은 지난 80여년간 무노조경영 원칙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고도 성장기를 지나며 노동자의 권리가 중시되면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과거 삼성은 한 회사에 노조가 1개만 있어야 한다는 법 조항을 대며 노조 설립 움직임이 보이면 이른바 ‘어용노조’ 설립 신고를 먼저 내는 방식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 삼성 계열사들에서 노조 설립 시도가 늘어나자 사측은 징계·해고와 회유, 소송 등으로 힘겹게 막아오던 판이었다.
그동안 노조를 ‘와해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던 삼성이 노조와 직접고용 방안을 합의한데다 노조 활동 보장을 공식 선언한 결정적인 계기는 검찰 수사 때문이란 게 중론이다.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의혹을 수사 중이었던 검찰은 지난 2018년 4월 삼성전자서비스 지사들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에는 삼성전자 본사가 노조원과 가족을 사찰하거나 노조원에게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는 등의 부당 행위를 한 정황이 들어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는 노조 와해 혐의로 경영진이 유죄 판결을 받자 사과문을 내면서 무노조경영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은 당시 "앞으로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올해 5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무노조 원칙' 파기에 다시 힘을 실었다. 이 부회장은 노사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 그동안 삼성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준법감시위는 지난 3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총수인 이 부회장이 반성·사과하라고 권고하면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포기를 표명하라고 주문했다.
◆ 그 후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의 인생을 바꾸다
직접 고용 후 삼성전자서비스는 2019년 12월 말 기준 전체 임직원 8597명, 전국에 184개의 직영 수리 거점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AS 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직원들의 급여, 복리후생 등 전체 처우는 협력사 근무 시절에 비해 큰 폭으로 개선됐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한다는 것은 '기간제 근로자'에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즉 정규직으로 계약조건이 바뀐다는 얘기다.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계약기간이 끝나면 근로계약이 자동 해지된다. 그러나 직접고용 이후 이들은 원칙적으로 정년이 보장됐다. 해고 절차도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정규직 사원에게 제공하는 각종 복지혜택도 똑같이 누릴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정규직이 되면서 임금도 연봉제로 전환됐다. 기본급 비율은 상대적으로 커지고, 수당이 차지하는 비율은 낮춰지면서 안정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도 모두 지급되고 있다.
또 하청업체 비정규직’에서 ‘원청업체 정규직’으로 바뀌게 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사측과 직접 교섭해 임금·단체협상을 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서비스CS는 처우 개선과 함께 인력의 70% 이상이 여성임을 고려해 모성보호, 육아지원 제도 등 맞춤형 복지를 강화했다. 상담 업무 특성을 감안한 근무 환경과 제도도 운영 중이다.
노동계에선 삼성전자서비스가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사 직원들을 고용하는 대신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을 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물꼬를 튼 파격적인 결정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비슷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삼성 내 다른 계열사는 물론이고 다른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사내 하청 근로자의 직접채용 움직임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반면 재계에서는 같은 사태가 자사에서도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많은 기업의 협력사 직원들이 노조를 설립한 후 기업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압박을 가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란 우려였다. 실제 삼성전자서비스의 직고용은 가전 분야의 경쟁사인 LG전자의 AS센터 운용방침에 직접적 변화를 가져왔다. LG전자도 AS기사들을 직고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18년 11월 23일 LG전자는 전국 130여 개의 서비스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협력사 직원 3900여명을 자회사가 아니라 LG전자의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성공은 삼성그룹 내에 노조가 늘어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삼성물산, 삼성웰스토리, 삼성에스원,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SDI,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여러 곳에 노조가 결성됐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올해 2월 삼성화재에 이어 7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에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설립됐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직고용 결정 이후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노조의 사내 협력사 직접고용 압박은 더욱 커졌다. 이후 사내 협력업체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11건이나 제기됐다. 삼성전자서비스를 포함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한국지엠 등에서 노조가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이 중 대법원에 가 있는 6건은 모두 2심에서 불법 파견이란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불법 파견으로 최종 판단하면 원청은 사내 협력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 그리고 앞으로
삼성, 노조와 상생시도할까 관심...노조는 회사에 이로운 존재가 되어야 지적
삼성전자서비스의 직고용 결정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AS기사들의 처우가 크게 개선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물꼬를 텄다는 점은 긍정적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또 삼성의 전향적 조치로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는 점 역시 평가받을 만 하다.
노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극과 극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노조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으로 보고 있고, 노동계는 노조의 힘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정부는 노조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노조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많은 대기업들에게 풀기 어려운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삼성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이병철 창업주, 이건희 회장에 이어 3대째를 맞는 이재용 부회장이 무노조경영 원칙에서 벗어나 보다 더 노동자와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이 고백했던 것처럼 ‘노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거두고 무노조 경영을 포기한 만큼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직원 대다수를 조합원으로 확보한 노조에 대해선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생을 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노조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삼성은 노조가 없는 상태에서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그 곳에 삼성전자서비스를 시작으로 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그들도 다른 '귀족 노조'처럼 파업을 일삼고, 내 주머니 챙기기에만 골몰한다면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미중 분쟁을 비롯한 복합위기로부터 글로벌 기업 삼성 역시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이재용 부회장은 사법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잇단 재판으로 인해 당분간 법정 출두가 불가피하고,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의 신인도 하락과 경영 차질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 상황 속에서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고 '최고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사측 일방의 책임이 아닌, 노조의 역할이기도 하다. '해로운 노조'가 되느냐, '이로운 노조'가 되느냐는 이미 생겨난,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삼성 노조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국헌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