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가 공인하는 금융권 '개방론자' 손병환 회장 취임 이후 농협금융이 디지털 혁신에 매진한다.
농협금융은 지난 9일 전 계열사 디지털 최고책임자들이 참여하는 농협금융 DT추진최고협의회 내용을 14일 공개하고, 올해 중점 추진할 디지털 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농협금융의 디지털 혁신은 고객·통합·개방 등 세 키워드로 요약된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손 회장은 은행장 재임 시절부터 직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고객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해왔다"고 전했다.
IT시스템 개편이나 새 사업 진출과 관련한 의견이 개진되면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회의서 손 회장은 "고객은 정작 필요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단지 우리 만족을 위해, 신기술이라고 해서 추진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우를 앞으로는 절대 범해선 안 된다"고 전 계열사에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추진할 모든 사업을 철저히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고 개선사항을 찾아내 반영하라”고 강력 주문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금융회사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각 계열사의 모바일 앱도 고객 과점에서 기본부터 재점검해 통합플랫폼을 만든다는 계획도 밝혔다.
농협 올원뱅크를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 관문, 포털로 만들어 고객이 보다 손쉽게 자산을 관리하고, 보험, 결제, 투자 등의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재편하겠다는 의지다.
'손 안의 금융비서'는 후일 농협만의 차별화된 생활밀착형 종합플랫폼으로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은행의 경우 현재 6개 뱅킹 입을 개인·기업용 스마트뱅킹 2개만 남기고 통합한다.
나머지 계열사도 농협금융 통합플랫폼과 문제 없이 연동될 수 있도록 고도화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농협금융은 전 계열사가 참여하는 애자일 조직을 신설하고, 시작 단계부터 계열사 의견을 조율해 나가며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손 회장이 금융업계 대내외로 대표적인 '개방론자'로 손꼽히는 것은 오픈뱅킹의 시초가 된 금융권 최초의 API 공개가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서 손 회장은 “플랫폼 생태계는 개방과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한다”며 “경쟁보다 상생을 통해 구성원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건강한 디지털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향후 디지털 전문인력에 대한 채용도 확대해 나가며, 경영진의 역할을 강조할 수 있도록 향후 자회사 CEO와 디지털부문장 성과평가에 디지털 인재채용 노력도를 반영할 계획이다.
디지털사업 운영체계도 개선한다. 먼저 지주와 계열사의 역할 분업을 명확히 한다.
계열사는 동종업계 최고의 디지털 경쟁력 확보라는 목표 아래, 작년 수립한 DT로드맵 고도화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
지주사는 고개관점 통합플랫폼 추진, 디지털 인재 확충 등 그룹 차원의 주요 과제와 함께 계열사를 횡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손 회장이 삼성SDS에서 직접 이상래 디지털금융부문장(CDO, 농협은행 부행장 겸직)을 영입했다. 이 부문장은 현재 농협금융 DT추진과 전략수립을 총괄하고 있다.
이 부문장이 주관하는 DT추진협의회에 디지털마케팅분과를 신설해 마이데이터 관련 계열사간 협업, 연계마케팅, 외부제휴 등을 금융지주 차원에서 직접 챙기도록 했다.
또 농협금융그룹 DT성과지표도 개편한다.
계열사 성과를 직접 보여줄 수 있도록 개편하며, 시장 선도사와 비교를 강화해 경쟁력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손 회장은 “혁신이란 그리 거창하거나 멀리 있지 않다”며 “올원뱅크 송금 메뉴에 계좌복사 기능을 추가한 것처럼 고객을 위한 디테일하고 작은 노력이 쌓여야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나흘 간의 설 연휴를 목전에 두고 농협금융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지주가 구상하는 디지털 지향점을 하루라도 빨리 계열사에 전파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속도감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손 회장의 의자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빅테크들이 고객 불편을 적극적으로 찾아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반면, 기존 금융회사는 여전히 서비스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에 갇혀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손 회장의 판단이다.
가령 빅테크, 핀테크는 송금 수수료나 수취인 계좌확인 불편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간편송금 서비스를 발빠르게 내놓았다.
반면 기존 금융회사들은 CMS결제 수수료에 집착하는 등 영업점 중심의 사고방식에 갇혀 간편 송금 서비스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금융기관도 향후 빅테크와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한다"며 "고객 일상에 금융의 서비스를 녹여낼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