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젬 사장, 노사갈등 등 악재 속 철수설 불식 '총력'...판매 실적은 '내리막'
2021년 임단협 노사갈등 최소화 난제...적극적 현장 행보에 희망섞인 전망도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되고 8100억원의 정부자금이 투입된 지 3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선 이미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이 철수 대비책을 논의 중이란 말도 나온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한국사업장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순 없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회사의 미래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를 가장 많이 외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지속된 외침이 한국지엠의 적자 탈출과 노사갈등 해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가 더욱 주목된다.
◆그 날
2018년 5월, 22년 역사의 군산공장 폐쇄...산업은행 8100억원 투입
한국지엠은 2018년 5월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가동을 시작한 지 22년 만이다.
앞서 GM 본사는 같은 해 2월 생산물량 감소에 따라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렸다.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가 2017년 4분기 기업설명회(IR) 콘퍼런스콜에서 "독자생존 가능한 사업을 위해 한국지엠에 '조치(actions)'를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는 1년여간의 철저한 준비 속에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카허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군산공장 폐쇄 한 달 전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 등 이해 관계자의 지원을 구하고자 지속 협의할 계획"이라며 "한국지엠의 장기 수익성과 사업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더욱 건실한 회사로 만들기 위해 이해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공장은 군산 앞바다를 매립해 만든 129만㎡의 부지에 연간 27만대 규모의 승용차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1년 약 26만대까지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이후 연간 생산량이 곤두박질치면서 2017년에는 3만대로 급감했다.
군산공장 근로자들은 2018년 두 차례 희망퇴직을 거쳐 1800명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남은 600여명의 직원들은 부평과 창원공장에 전환배치 또는 무급휴직에 들어가면서 흩어지게 됐다.
한국지엠은 전사 인력 감축 및 군산공장 폐쇄 등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동시에 정부와 자금 지원 협상을 벌였다.
정부는 한국지엠에 대한 경영실사 결과, 경쟁력 있는 신차 배정과 고정비 절감 노력 등이 이행될 경우 영업 정상화와 장기적 생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2018년 5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해 한국지엠 경영 정상화방안을 확정했다. 산은과 GM이 한국지엠 경영정상화를 위해 7조7000억원(7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며 지분율에 따라 GM이 약 6조9000억원(64억 달러), 산은이 8100억원(7억5000만 달러)을 투입한다는 내용이다.
또 GM은 5년 동안 지분 매각이 제한되며 이후에도 5년간 지분 35% 이상으로 1대주주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카젬 사장은 2017년 9월 대표이사로 부임한 지 반 년도 채 안된 상황에서 본사지침에 따라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 등을 진행했다. GM과 한국 정부 사이에서 각각의 입장을 전달 및 조율하며 경영난 탈출과 철수설 불식 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평이다.
카젬 사장은 1995년 GM 호주 자동차 브랜드 '홀덴'에서 선임 엔지니어로 시작해 2012년 GM 제조품질부문 부사장, 2015년 GM 인도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6년 인도법인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6월 이후 한국지엠 사장 겸 CEO를 담당해온 김제임스 사장이 2017년 8월 돌연 사임하자 카허카젬 사장이 후임으로 자원하면서 9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 후
노사갈등, 근로자 불법파견 논란 등 각종 악재 속 철수설 불식 '총력'
한국지엠은 2018년 2월~5월까지 이른바 '한국지엠 사태'가 일단락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또다시 노사간 갈등이 고조됐다. 회사가 2018월 7월 생산·판매 부문과 연구개발 부문을 분리한다고 밝히면서다.
노조는 이를 두고 "생산 공장과 연구개발 기능을 2개 법인으로 분리하겠다는 조치에는 법인 쪼개기를 통한 제2의 공장 폐쇄 또는 매각 등 GM의 꼼수가 숨어있다"고 반발했다.
회사 2대 주주인 산은도 처음에는 한국지엠의 법인 신설을 위한 주주총회 개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인 분리에 반대했다. 그러나 한국지엠이 연구개발 법인을 GM의 핵심 준중형 SUV 연구개발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약속하자 법인 설립에 동의했다. 결국 2019 1월, 연구개발을 전담할 신설법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가 공식 출범하게 됐다.
카젬 사장은 근로자 불법파견 문제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다. 한국지엠은 2017년 9월부터 4년여 간 협력업체로부터 근로자 1719명을 불법 파견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무부는 2019년 7월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카젬 사장에 대해 출국정지 처분을 내렸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 1월 금속노조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회사를 검찰에 고발함에 따라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이후 2019년 9월 부평·군산공장의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고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직접 고용 대상인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는 부평공장 797명, 군산공장 148명이다.
회사 측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하도급업체 운영을 적법하게 해왔다는 입장이다. 한편, 카젬 사장은 현재 불법파견 혐의로 받은 출국정지가 취소된 상태다. 2021년 4월23일 서울행정법원은 카젬 사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출국정지기간 연장처분 취소 소송에서 "카젬 사장에 대한 연장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최근에도 비정규직지회는 카젬 사장의 엄벌을 촉구하면서 "한국지엠은 불법 파견으로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판결도 받았고,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승소해 대법원에 계류중인 상황"이라며 "노동부의 시정명령도 있었던 만큼 한국지엠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판결에 따라 정규직 전환으로 이행하면 된다"고 밝혔다.
카젬 사장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신차 출시에 열을 올렸다. 2018년 5월 신형 스파크를 시작으로 이쿼녹스와 더 뉴 말리부, 더 뉴 카마로 SS를 선보였다.
이후 2019년 8월 말과 9월 초에는 각각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대형 SUV 트래버스를 출시했다. 2019년 하반기에는 쉐보레 브랜드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가입시키면서 수입차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특히 2020년 1월 경영정상화의 교두보를 마련할 전략 SUV로 트레일블레이저를 출시했다. 카허카젬 사장은 신차 출시 행사에서 "트레일블레이저는 운전자의 개성을 극대화하고 소비자 경험을 확대하는 스타일리쉬한 SUV"라며 "개발부터 생산까지 한국에서 리드한 쉐보레의 글로벌 SUV이자, 쉐보레 브랜드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핵심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트레일블레이저는 모든 이해당사자의 희망이 담긴 모델"이라며 "신제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덧붙였다. 실제 트레일블레이저는 한국지엠이 내놓은 7번째 신차로 회사 경영정상화를 이끌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판매 회복이 요원하고 노사갈등이 반복되면서 철수설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2019년 한 해 동안 총 41만7226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9.9% 감소한 수치다. 2020년 트레일블레이저의 활약에도 불구, 코로나19와 부분파업에 따른 생산차질 등이 겹치며 36만8453대 판매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1.7% 하락이다.
카젬 사장은 철수설이 내수 판매에 악영향을 주자 2019년 5월 창원공장 도장공장 기공식에서 한국 철수설을 공식 부인했다. 그는 창원공장 본부장(전무)이 대신한 기념사에서 "새 도장공장 신축은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GM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한국에서 오래 머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카젬 사장은 도장공장 기공식 이후 약 2년 뒤인 2021년 3월, 준공식을 개최했다. 창원공장에 신축된 신규 도장공장은 8만㎡ 규모의 3층 높이로 지어졌다. 시간당 60대의 차량 도장 작업이 가능하고, 주요 공정의 전자동화와 환경 친화적인 설비 구축 등 최상의 제품 품질 확보를 위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지엠은 2018년 이해관계자들과 한 약속을 이행해 오고 있으며, 창원 신도장공장 완공은 약속 이행의 이정표 중 하나"라며 "내수 및 수출 시장에 글로벌 신차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를 성공적으로 출시한데 이어, 창원 공장의 투자로 약속한 차세대 글로벌 신제품 생산을 하게 될 것"이라며 다시 한번 철수설 잠재우기에 나섰다.
아울러 회사 관계자는 "창원공장 내 시설 투자를 지속해 향후 경영정상화를 위한 차세대 크로스오버유틸리티(CUV) 차량을 2023년부터 생산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창원공장 내 프레스 라인, 차체 라인, 조립 라인 등 여러 신규 설비에 대한 설치 공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앞으로
2021년 임단협서 노사갈등 최소화 난제...적극적 현장 행보에 희망섞인 전망도
한국지엠은 2014년 이후 7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는 가운데 2021년 또다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이 멈춰서게 되면서다.
카젬 사장은 GM 본사의 결정에 따라 지난 2월부터 부평2공장을 절반만 가동했다. 국내 완성차 가운데 가장 먼저 반도체 부족으로 감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후 반도체부품 수급 상황이 악화되자 지난 4월 부평 1, 2 공장 전체를 일주일간 멈춰세웠고 5월부터는 창원공장까지 가동률을 절반으로 유지키로 했다.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차질은 실적에 곧바로 반영됐다. 한국지엠은 지난 3월 전체 판매량이 작년보다 21.8% 감소한 2만9633대를 기록했고, 4월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5.4% 감소한 2만1455대 판매에 그쳤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도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다. 노조는 지난 4월26일 임시대의원회의를 열고 '2021년 임금협상 요구안'을 확정했다. 기본급 인상과 1000만원대 일시금 지급, 부평공장 신차 배정 등의 요구가 담겼다.
카젬 사장은 올해 임단협에서 노사갈등을 최소화해야 할 난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임단협에선 기본급 인상, 2000만원대 일시급 지급 등을 두고 노사간 입장차가 컸고 이는 부분파업으로 이어져 2만대 이상의 생산차질을 겪은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벌어진 파업은 한국 철수의 빌미를 줄 여지가 있다. 실제 본사에서 철수 경고가 나오지 않았느냐"면서 "매년 반복되는 노사갈등은 소비자 불안을 야기하고 내수 판매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해 내부 문제가 외부로 나오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사는 5월 중 상견례를 시작으로 2021 임단협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다만 지난해와 같은 극심한 노사간 대치는 없을 것이란 희망섞인 전망도 나온다. 최근 카젬 사장의 적극적인 경영 행보도 이러한 기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카젬 사장은 최근 임직원과의 소통을 위한 현장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다. 우선 카젬 사장은 지난 4월21일 GM의 자동변속기를 생산하고 있는 충남 보령공장을 방문해 노동조합 및 임직원과 만나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
카젬 사장은 "이번에 이뤄 낸 500만대 생산 금자탑은 그간 보령 사업장이 지속적으로 보여준 높은 수준의 안전 및 품질, 생산성 그리고 안정적인 노사관계에서 나온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며 "현재 보령공장은 GM 내 가장 경쟁력있는 변속기 생산 공장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보령공장의 500만대 누적생산 돌파를 임직원들과 함께 축하하고, 안전 및 품질에 대한 탁월한 성과와 높은 생산성에 대해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이번 방문은 2018년 회사의 경영정상화 약속에 대한 이행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카젬 사장이 지난 1월 창원공장 내 도장공장 공사 현장을 방문해 차세대 글로벌 신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 진척 상황을 직접 점검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카젬 사장은 5일 뒤 로베르토 렘펠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과 함께 다양성위원회의 공식 출범식을 가졌다.
새롭게 출범한 다양성위원회는 GM의 자발적 직원 모임의 하나로 한국에서는 부서, 직위, 세대 등에 관계없이 임직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된 조직이다.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회사 내 정착시켜 한국에서 가장 포용력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한국지엠 홍보부문 윤명옥 전무는 "GM은 지난해부터 모든 글로벌 사업장, 공급망, 네트워크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종 차별과 불평등을 타파하고 세계에서 가장 포용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며 "다양성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내 사업장에도 포용적인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좋은 일터와 존경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는 "한국은 '노조 리스크'가 있지만 코로나19 등 외부 악재에 타격감이 덜 하다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면서 "전기차 회사로의 대변신을 추진하는 GM이 한국 사업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미래 전략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명현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