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클러스터에 돔구장+대형 쇼핑시설 조성은 유동인구 동선(動線)만 감안해도 어불성설
- 미국 휴스턴 '텍사스 메디컬 센터'와 같은 세계적인 의료클러스터로 개발하는 게 바람직
지난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는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걸고 영남권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 밀양과 가덕도를 놓고 TK와 PK의 분열이 극에 달하고, 동남권 신공항이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학계와 전문가집단의 결론 앞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4월 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돼 매우 안타깝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영남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전 대통령은 매우 솔직했다. 그는 "공약한 것을 지키는 것이 도리지만 이를 지키는 것이 국익에 반할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 '계획 변경'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많은 국민이 반대했던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데 따른 부담과 피로도 있었겠지만, 그가 주요 공약이었던 ‘동남권 신공항’ 계획을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 백지화한 것은 용기있는 결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7보궐선거 후보 시절 내세운 ‘돔구장+대형 쇼핑몰 조성 공약’을 놓고 서울시와 노원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 시장의 공약은 경기도 남양주로 이전이 확정된 창동차량기지 등 일대 25만㎡(약 7.5만평) 부지에 돔구장과 대형 쇼핑몰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창동차량기지는 원래 노원구와 서울시가 ‘노원 바이오의료단지’(SN-BMC)를 조성하려던 곳이다.
차량기지를 남양주로 이전한 것도 이같은 구상에 따른 것이다. 시와 구는 이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과, 연구병원, 관련 기업, R&D 연구소 등을 유치해 바이오의료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노원구는 SN-BMC가 완성되면 약 8만여개의 일자리가 새로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법 테두리에서는 불가능한 의료 관련 ‘빅데이터’(big data) 연구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이 지역을 바이오·의료 특구로 지정,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
구는 이를 위해 이미 지난 3월 8일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노원 바이오 자문회의’를 개최하는 등 바이오 의료단지 조성을 위한 활동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바이오정책 분야 3명, 미래의료 분야 3명, 바이오산업 분야 3명, 혁신 클러스터 분야 2명 등 관련 부문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노원 바이오 정책자문단’을 발족하기도 했다. 이들 자문단은 노원구가 추진하는 SN-BMC 구상안을 토대로 구체적 실행방안을 제안‧자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울시도 ‘서울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 육성 및 유치전략 방안 마련 용역’을 맡겼으며, 올 하반기 중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돔구장+대형쇼핑몰을 짓겠다는 오 시장의 공약이 모든 것을 꼬이게 만들었다. 오 시장이 돔구장 공약을 고집하면 ‘바이오의료단지’ 계획에 커다란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됐다.
서울시는 야당 출신의 신임 시장 공약을 맞춰주려 애쓰는 모양세다. 그래서 바이오의료단지도 조성하고, 돔구장+대형 쇼핑몰도 조성하는 '1+1'안으로 모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뜬금없는 오 시장 공약으로 인해 바이오의료단지 플랜이 2분의 1, 3분의 1로 축소될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 차량기지는 여의도 면적의 10분의 1도 안된다.
미국의 텍사스주의 휴스턴은 항공우주산업 및 에너지산업과 더불어 의료산업으로 유명한 도시다. 휴스턴 북쪽에 위치한 ‘텍사스 메디컬 센터’(Texas Medical Center)는 그 규모가 웬만한 중소도시 규모다.
부지 넓이도 그렇지만, 경제규모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9년 기준 이곳의 GDP가 250억 달러(한화 약 28조원)로 웬만한 중소도시의 총 생산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단지다. 이곳에는 21개 대학병원을 비롯해 MD암센터 등 세계 유명병원들과 의학 및 생명공학 연구소들이 집산해 있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에서 암 등 각종 난치병 환자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일부이기는 하지만 암을 비롯한 난치성 환자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다.
이곳의 병원 가까이에는 객실을 고급 병상으로 꾸미고, 유능한 의료진을 갖춘 호텔들이 즐비해 있다. 호텔들은 지하도로를 통해 병원들과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위급한 환자를 보다 빨리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휴식과 심신안정을 주기 위한 숲으로 우거진 넓은 공원도 텍사스 메디컬 센터 곳곳에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의료경쟁력은 세계에서도 손꼽힌다. 암 등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환자들이 삶의 희망을 찾아 한국을 찾는다. 우리나라에도 휴스턴의 텍사스 메디컬 센터와 같은 의료 클러스터가 절실하다는 얘기는 진작 나왔다. 의료 클러스터가 조성된다면 텍사스 메디컬 센터와 같은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생명공학과 의료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수많은 환자와 가족, 특히 수시로 응급환자들이 오가는 곳에 돔구장과 대형 쇼핑시설이 병행 조성되는 것은 터무니 없는 구상이다.
바이오의료단지 인구의 동선(動線)과 돔구장+쇼핑시설 고객의 동선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러려면 바이오의료단지 규모는 또다시 원안에 비해 5분의 1 이하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럴 바에는 바이오의료단지를 서울 등 수도권의 다른 곳에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오 시장이 시장선거에 나가기에 앞서 창동차량기지에 돔구장과 대형 쇼핑시설을 조성하려는 구상을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심도있고, 치밀하게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타당하고, 급한 것인지 수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료클러스터에 돔구장과 대형 쇼핑시설을 동시에 조성하는 '1+1' 안은 2개 프로젝트 모두 실패할 가능성만 높이는 일이다. 죽도 밥도 안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오 시장이 돔구장+대형 쇼핑시설 건립계획을 백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결단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스스로 철회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용기와 결단을 오 시장에게도 기대해 본다.
방형국 기자 re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