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 국회 마무리 단계, 후반기도 기약 없어
넷플릭스·유튜브 등 해외 CP사 반발에 물러섰다는 평가
미국 정부 압력, 한국 기업 불이익 우려도 영향
“넷플릭스 등도 책임 있는 모습 보여야” … ‘방발기금’ 징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넷플릭스·유튜브 반발에 국회 ‘항복 선언’ … 미국 눈치 보는 정부도 반대
‘망 사용료 강제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과가 사실상 무산됐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해외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제공사업자)사의 강력한 반발과 미국 정부의 압력 등에 국회가 물러선 모양새다. 망 사용료 문제를 떠나 한국 콘텐츠로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넷플릭스 등이 한국 콘텐츠 시장에 대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2소위)는 21일 넷플릭스 등 해외 CP사를 대상으로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서비스사업자)에게 망 사용료를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망 사용료 강제법’, ‘넷플릭스 방지법’을 상정했지만 결국 의결을 보류했다. 공청회를 열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더 수렴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 법안2소위의 결론이지만, 국회 일정을 고려할 때 국회가 사실상 법안 통과를 포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망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사들과 달리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비롯한 해외 CP사들은 막대한 트래픽 사용에도 불구하고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아 논란이 되어왔다. 결국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소송에 돌입했고, 1심에서 SK브로드밴드가 승소하면서 국회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여야 의원들은 다수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날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을 통합한 위원회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최종 보류된 것이다.
넷플릭스는 패소 이후에도 망 사용료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해왔고, 국회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국회를 방문해 위원회 관계자들을 면담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여기에 소위원회 소집 전날인 20일에는 유튜브 측이 처음으로 망 사용료에 대해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당사자인 CP사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법안 통과에도 부담이 됐다.
여기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강제 입법 시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관세 장벽 등을 거론하며 무역 분쟁 가능성까지 내비치자 압력은 더 거세졌다. 미국의 입장을 전달받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과의 무역 마찰을 우려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서 과방위도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공청회 한다지만 … ‘립서비스 가까워’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망 중립성 문제와 우리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 빈약한 망 사용료 산정 근거 등 복잡한 이해관계 문제가 얽혀있어 공청회를 열고 재심의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 관계자는 구체적인 공청위 일정 등에 대해서는 “정해진 내용이 없다”고 언급해 이러한 결론이 결국 법안의 포기를 의미한다는 해석에 무게를 더했다.
국회 일정을 고려하면 법안 통과 가능성은 더욱 낮아 보인다. 국회는 다음 달인 5월 29일 전반기를 마무리하는데, 후반기가 시작되면 국회의장 선출과 원 구성 등 사실상 국회를 새로 꾸리는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당분간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기 어렵다. 여기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들이 선거 국면에 들어간다는 점도 악재다. 여러모로 올해 말까지 망 사용료 문제가 국회에서 해결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가 입법적 해결에 실패하면서 공은 다시 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에서 넷플릭스가 1심 패소 판결에 대해 항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다 법원 재판 절차의 특성상 SK브로드밴드가 승소 확정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망 사용료를 지급 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 한국 망 사용료 글로벌 이슈될까 ‘전전긍긍’ … “막대한 수익에도 무책임한 태도” 비판
넷플릭스 등이 이토록 격렬하게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는 이유는 세계 시장에서 망 사용료 지급의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세계적으로 ISP에 망 사용료를 지급한 적이 없다는 점을 반대 입장의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과거 넷플릭스가 일부 국가에서 망 사용 대가를 지급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고 넷플릭스도 결국 이 사실을 인정했으나, 과거 제한적으로 이뤄졌던 일일 뿐이라며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이마저도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부인한 바 있다.
이처럼 넷플릭스는 한국이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큰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ISP에 망 사용료를 지급하게 될 경우 다른 국가들도 입법 등 조치에 나서 망 사용료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망 사용료 지급 문제를 떠나 넷플릭스가 지나치게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대한 입법 및 정책적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글로벌 OTT는 국내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음에도 국내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한 기금과 같은 공공재원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해외 CP사에게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방발기금은 방송·통신 산업 진흥과 콘텐츠 제작 지원 등의 공익적 사업을 위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통신사 등이 내는 부담금이다. 주요 방송국들은 방송사 분담금 및 통신사 주파수 할당 대가 등의 형식으로 방발기금을 내고 있지만, 넷플릭스 등 해외 CP사는 한국 시장에서의 막대한 수익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한국 법인인 넷플릭스서비시즈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이 6300억원에 달했으나, 법인세로는 0.5%에도 못 미치는 30억 원만 납부했다. 과도한 매출원가(수수료) 책정으로 세금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20년에는 21억 원의 법인세만 납부했는데, 당시 매출액 대비 매출 원가 비율은 본사가 61%, 한국 법인이 81%인 반면 영업이익률은 본사가 18%, 한국 법인이 2%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에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800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지만, 넷플릭스 측은 불복 의사를 밝히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로 한국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OTT 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고,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OTT에 대한 법률 규정 등 제도적 접근이 미비한 상황을 이용해 수익만 쓸어갈 뿐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한국의 어떤 방송사나 콘텐츠 제작자보다 커졌는데도 적용되는 규제는 손에 꼽는다. 기존 미디어들은 내용에 대해서든 경제적 책임에 대해서든 다양한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역차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 콘텐츠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의 책임을 공유하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콘텐츠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 문제를 포함해 한국 시장을 존중하고 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국회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상당히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준용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