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정국이 어려울 때는 대통령과 야당 총재(대표)가 만나 풀곤했다. 이를 보통 영수회담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할 때는 가능한 얘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당은 당 대표가 중심이 돼 운영을 한다. 물론 대통령실과 협의를 안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처럼 얘기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렇다.

제1야당은 대통령과 직접 만나 얘기를 하기를 원한다. 모든 정권에서 그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 이 대표 본인이 기소됐거나 수사 선상에 오른 터여서 할 얘기도 많을 것이다. 대통령실도 이런 점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는 이유라고도 하겠다.

대통령실은 14일 이 대표의 거듭된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정치권의, 여야의 상황이 어느 정도 되면 그때 만날 수 있다”고 거부 입장을 고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했고, 영수회담이 아니라도 국민의힘은 정진석 비대위가 들어섰기 때문에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나’란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대통령의 입장을 여러 번 밝혔다”며 “지난 번 이 대표와의 통화에서도 상황이 정리가 되면 조속히 만나자고 했다. 그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이 대표에게 대표 선출 축하 난을 전달하러 방문한 이진복 정무수석을 통해 이 대표와 통화에서 “당이 안정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여야 당 대표님들과 좋은 자리를 만들어 모시겠다”고 말했다.

이진복 정무수석도 영수회담과 관련, 오는 18일부터 5박7일 일정으로 있을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이후 "(여야)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만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국민의힘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정진석 위원장을 예방한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영수회담 요구 제안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 수석은 다만 영수회담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이란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과거 여당 시절 대통령이었을 때 영수회담은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대통령과 당 대표와의 만남 쪽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은 구시대에 쓴 말을 쓰지 않겠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국민의힘) 비대위가 만들어지고 정의당도 비대위가 정리되면 윤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다녀오고 나서 방식이 어떻게 됐든지 그때쯤 한 번 (만남을) 논의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꼭 영수회담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대통령과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대표는 영수회담을 촉구하면서 “절차나 형식은 전혀 구애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여야 당 대표들과 함께 만나는 것도 피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