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다. 서로 잘 지내야 할 이웃인데 여전히 껄끄럽다. 두 나라의 과거 역사와 무관치 않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서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동안 쌓인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민간은 나은 편. 정부 차원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심했다. 재임 중 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냉랭했다.
두 나라 모두 자국의 국민정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양국 정상이 만나는 문제도 쉽게 풀 수 없었다. 강제징용이나 과거사 문제 등 미묘한 현안들이 있어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일본 측은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곤 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약식 회담에서도 그랬다.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될 일인데 극도의 신경전을 펼쳤다. 두 나라의 관계를 방증한다고 하겠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에서 우여곡절 끝에 취임 후 첫 양자회담을 하며 얼굴을 맞댔다.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를 계기로 마련된 자리다. 성사될 경우 2019년 이후 2년 9개월여 만에 열리게 되는 한일정상회담에 일찌감치 이목이 쏠렸지만, 실제 성사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당초 우리 대통령실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흔쾌히 합의됐다"며 한일정상회담 성사를 밝혔다. 그러나 일본 측이 한일정상회담 개최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데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잇따르며 분위기는 냉각됐다. 기시다 총리는 “그럼 회담을 하지 말자”고도 했다. 이후 대통령실도 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노코멘트"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후 한일정상회담은 시작 전까지 '철통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마치 작전을 연상케 했다. 대통령실은 회담 시작 4시간여 전 브리핑에서도 회담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통상 양국 정상간 회담 일정이 언론에 미리 공지되고, 이후 꾸려지곤 했던 풀단(취재 공유 그룹)도 없었다. 양측 모두 전속 사진사만 들어갔다.
이날 오후 주유엔대표부 1층 양자회담장에서 열린 한국-독일 정상회담의 경우 언론에 미리 공지되고 풀단이 꾸려졌던 점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대통령실은 한일정상회담이 시작된 지 2분이 지난 낮 12시 25분쯤 "한일정상회담이 지금 시작합니다"라는 언론 공지문을 보냈다. 약 30분간 진행된 한일 정상회담 장소는 유엔총회장 인근 한 콘퍼런스 빌딩이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친구들' 행사장이 있는 건물로, 윤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면 회담이 성사됐다. 왜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느냐고 따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엔 총회처럼 다자간 외교에서는 통상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를 두고 ‘굴욕 회담’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풍연 논설위원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