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앞으로 회장 타이틀은 없다' 약속 뒤집기 어려워
- 사법 리스크, 경영 리스크 등 책임만 있고 실익은 없어
- 이재용 "(승진 보다)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
"앞으로 삼성그룹에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없을 것입니다. 회장 타이틀은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7년 12월 27일 국정농단 항소심 결심공판 피고인 심문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올해 연말 재계 인사 중 최대 이슈로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 여부'가 떠오른 가운데 재계와 언론에선 연내 회장 승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일각에선 회의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18일 '삼성 이재용, 회장(會長) 승진이 최선일까'라는 보고서를 통해 "올 연말 내년 초 사이에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은 다소 낮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단기간 내 회장 승진이 어려운 이유로 5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과 약속한 '앞으로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은 없다'는 말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과거에 직접 "삼성그룹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이라고 직접 언급했기 때문에 이라고 직접 언급을 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이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회장 타이틀은 이건희 회장 이후 영구 결번인 셈이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 사과문에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지지 않겠다. 4세 경영은 없다"고 약속했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스스로 회장직에 오르게 되면 대국민 약속을 파기하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진정성과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게 되는 셈이다.
오일선 소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언급했던 '삼성그룹 회장은 더 이상 없다'와 '4세 경영은 없다'는 두 가지 발언 중 하나라도 깨지면 다른 말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심이 생길 수 있다"며 "회장으로 승진하는 것이 그리 간단히 않다"고 설명했다.
두번째로,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이외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향후 몇 년 후 최종 재판 결과에 따라 변수가 복잡해진다. 또 최근 삼성웰스토리와 관련해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올해 연말과 내년 3월 사이에 회장으로 승진했다가 나중에 재판 결과가 나쁠 경우 등기임원직을 다시 반납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등기임원직에서 내려온 뼈아픈 경험이 있는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 비슷한 상황이 몇 년 후 재연된다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오일선 소장은 "'사법 리스크'를 무시하고 회장으로 승진하기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번째로, '대표이사 회장' 대신 '미등기임원 회장' 승진도 '꼼수 논란'은 물론 삼성그룹의 품격에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해당하는 ‘대표이사 회장’이 아닌 ‘미등기임원 회장’으로 승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되레 삼성그룹 최고 수장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것.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한다면 경우의 수는 크게 대표이사 회장, 사내이사 회장, 미등기임원 회장 3가지 경우다. 등기임원(사내이사, 대표이사)이 된다는 것은 상법상 책임을 지는 경영자에 속한다. 하지만 미등기임원 회장은 법적 책임이 없어 무게감이 확 달라진다. 아울러, 등기이사 회장은 이사회 의결이 필요하지만 미등기임원 회장은 특별한 절차가 필요없다.
결국 책임은 안지고 권한만 행사하려는 '꼼수 회장' '셀프 승진'이라는 비판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단지 명함에 회장이라고 기재되고 주변 사람들이 ‘회장님’으로 호칭이 달라질 뿐이다. 미등기임원 부회장이나 회장은 오십보백보다. 승진을 하더라도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네번째로, 회장 승진은 중대재해처법법, 경영 실적, 주가, 국정감사 1순위 등 각종 경영 리스크에도 노출 될 수 있어 걸림돌이다.
회장 승진으로 인한 기대 효과보다는 책임에 대한 무게감이 훨씬 크다. 내년 실적이 올해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삼성전자 회장으로 대표이사 CEO 자리를 맡게 되면 단기 경영 성적도 좋지 않아 대외적으로 경영 능력에 대한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오일선 소장은 "미등기임원 회장으로 승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회장으로 승진하는 것보다 대표이사 직함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회장 승진으로 얻게 될 실익이 높지 않다.
최근 경영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법법 시행으로 오너 경영자들이 대표이사에서 은근슬쩍 내려오는 사례가 많아지는 추세다. 예기치 못한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오너 경영자가 처벌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기 때문.
특히 지주회사와 달리 사업회사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오너 경영자들일수록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부담감이 큰 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도 지주회사에서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지주회사의 경우 실제 생산 등을 하는 사업회사와 달리 중대재해가 발생할 확률이 낮은 이유다.
반면 정몽규 HDC 회장은 올해 1월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이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현재는 지주회사에서 대표이사 회장직만 유지하고 있다. 최근 대전아울렛 화재로 현대백화점그룹 총수인 정지선 회장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이 된다면 삼성전자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국민 사과와 함께 책임도 져야 한다. 국정감사 증인으로도 소환될 것이다. 주가 하락에 따른 주주총회 등 부담감에도 시달려야 한다.
오일선 소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일선 소장은 "명실공히 삼성그룹 1인자는 이재용 부회장인데 자리가 뭐가 중요할까?"라며 "형식적인 직위로만 보면 ‘Chairman’이나 ‘CEO’만 아닐 뿐 이미 내용적으로 보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을 움직이는 최고 결정권자"라고 강조했다.
'회장' 승진 카드 대신 ‘이사회 의장’을 맡는 방안도 좋은 묘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총수가 된 마당에 부회장, 회장과 같은 직위의 의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대규모 투자 결정, 경영진 및 임원 인사, 조직문화 개선, 미래 성장을 위한 회사 인수 및 합병 결정, 글로벌 인맥과의 교류 등이 중요한 역할이다. 회장 타이틀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오일선 소장은 '회장' 승진 카드 대신 ‘이사회 의장’을 맡는 방안도 좋은 묘수가 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의장이라는 자리에 오르면 굳이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쓰지 않으면서도 등기임원으로 책임 경영 모양새가 가능하다. 각종 경영 리스크 1순위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4세 경영은 없다'고 발언한 지배구조 포지션에도 다소 적합한 직위가 될 수 있다. 의장은 영어로는 ‘Chairman’이기에 회장과 같다.
오일선 소장은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향후 삼성그룹이 지주회사가 세워지면 그때에 맞춰 ‘대표이사 겸 의장’을 함께 맡는 방안도 생각해볼 여지가 높다"고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도 지난 9월 ‘연내 회장 승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지난해 1월 열린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초청 강연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현재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이사회 사무국으로 개편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장기적으로 삼성그룹을 지주사와 사업회사 형태로 정리한 뒤 이재용 부회장이 지주사 이사회 의장을 맡아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하는 방식이다.
이한상 교수는 "과거 수년간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은 경영의사 결정의 책임을 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주주의 대표에 가까웠다"며 "반드시 사업회사의 경영진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사회 의장으로서 지금과 같이 주요 의사결정은 물론 다양한 사업을 철저하게 오히려 더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