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요즘 이재용·일론 머스크·빌게이츠 같은 갑부였을 것"···책 '정약용 코드' 현대판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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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요즘 이재용·일론 머스크·빌게이츠 같은 갑부였을 것"···책 '정약용 코드' 현대판 해석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3.03.05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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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실천적 하이브리드 지식인"
- "흑백의 정약용에게 컬러를 입혀 현대로 모셔오고자 했다"
- "정약용은 양잠으로 연간 2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 "정약용은 수자원공사 석탄공사 등 공기업을 만들려했다"

"정약용이 요즘 살았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같은 세계적 갑부가 됐을지 모른다."

200여 년 전 지식인 정약용에 천착해 집필한 책 <정약용 코드>의 저자 박정현 작가의 주장이다. 

어쩌면 정약용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대표 등과 같은 재벌이 될 그릇을 갖춘 인물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정약용에 대해 다산초당, 정조대왕, 수원화성, 유배, 천주교 등에 머물 수 있지만 박정현 작가는 '21세기형 실천적 하이브리드 지식인'을 말한다. 

박정현 작가는 26년간 경제부 등 기자 생활과 5년간 국무총리 공보실장, 한국수자원공사 감사 등 공직생활을 거치면서 다산 정약용 정신에 대해 탐구했다. 

박정현 작가 "정약용의 저술 등을 현대적 시각으로 쉽게 풀어쓰려고 노력했다"

박정현 작가는 "정약용의 저술 등을 현대적 시각으로 쉽게 풀어쓰려고 노력했다"며 "흑백의 정약용에게 컬러를 입혀 현대로 모셔오고자 했다"고 표현했다. 

정약용 코드 [사진 새움출판사]

실제로 정약용은 갓쓰고 헛기침하는 200여 전 고리타분한 성리학자 선비가 아니었다. 우리 시대가 바라는 미래를 위한 융합형 인재였다.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지식을 모두 갖춘 양손잡이 지식인이었다. 현대로 치자면 수학자, 음악가, 의사, 군사전략가, 사업가, 과학자, 사상가, 관료 등 다양한 분야에 능했다. 정약용이 503권의 책을 다산했던 학자였던 것은 '메모광'이었던 덕분이다.

특히 성리학은 조선의 돈벌이를 천하게 여겼지만 정약용은 돈벌이를 귀하게 받아들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경제관념이 있는 지식인이었다. 

실제로 양잠을 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결혼 초 서울 명동에 살 때 집에 뽕나무 20여 그루를 길러 수익을 톡톡하게 거뒀다. 공무를 마치고 퇴근해서 뽕나무의 잔가지를 자르는 일도 했고, 뽕잎으로 누에를 길렀다. 그리고 매년 비단을 생산했다. 

그래서 뽕나무 365그루를 심으면 1년에 365꿰미를 벌어들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365꿰미는 요즘으로 치면 수천만원 되는 수입이다. 정약용은 틈만 나면 주변에 양잠을 해서 돈을 벌라고 권장했다. 

"정약용은 말로만 외치던 실학자들과 달리 실제 돈도 많이 번 실용주의자이자 실천주의자였다"

박정현 작가는 <녹색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정약용은 말로만 외치던 실학자들과 달리 실제 자신의 노동력으로 돈도 많이 번 실용주의자이자 실천주의자였다"며 "책에서는 양잠으로 번 돈에 대해 보수적으로 계산했지만 연간 2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정약용 코드' 저자 박정현 작가

정약용은 양잠은 양반도 체면 구기지 않고 충분히 할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집안에 7층 잠상을 설치해놓고 부지런히 누에를 길러 몇 해만 지나면 먹고 살 걱정이 없어졌다. 쌀, 소금, 소고기 장조림 등 식량과 반찬 정도는 충분히 장만할 수 있었던 것. 

정약용은 "뽕나무 재배는 유학자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고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양잠은 1960~1970년대 농가 소득 증대에 상당히 기여를 했고, 외화 획득의 효자 역할을 했다. 그후 한동안 뜸했다가 최근 들어서는 누에가 첨단 바이오 소재로 탈바꿈하면서 양잠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고 양잠은 의생활의 근본"이라며 "뽕나무 심기를 권장하는 것은 수령의 중요 임무"라고 주문했다. 두 아들에게 양잠을 적극 권했고, 수령에게는 관청 차원에서 양잠 부흥에 나서라고 했다. 

정약용은 제자 윤종억에게 보낸 편지에서 "늘 가난하고 천하면서 인의를 말하기를 좋아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생활 무능력자 선비 보다 돈벌이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명절에 처마 끝에 고기가 걸려있지 않고 빚 독촉하는 사람들이 대문을 두드리면 지혜로운 선비가 아니라고도 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유통업으로 큰 돈을 번 부자다. 정약용은 자공같이 부자가 되라고 당부한 셈이다. 

박정현 작가는 "정약용이 18년 유배를 하지 않고 사업을 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약용은 양잠 뿐아니라 양계 등 농업 전문가였다. 아들이 닭을 기르고 있다고 하자 양계 사업을 권할 정도였다. 두 아들이 국화를 심었다고 하자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국화 한 이랑은 가난한 선비 몇 달 식량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니 생지황, 도라지, 천궁, 쪽나무 등도 가꿔보라고 했다. 

새로운 옷감 색상 아이디어도 내놓고 의류사업도 주창했다. 당시 조선은 옷감에 자색과 녹색 2가지 색상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컬러 색상 의류를 제안한 것. 

<경세유표>에서 토지 이외에도 경제, 사회, 관직, 과거제 등 분야별 전방위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경제개혁의 키워드는 통공역사(通功易事)다. 교통을 편리하게 해서 물건을 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통공역사에서 기술 발전은 기본이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지혜로운 생각과 교묘한 연구 능력이 있어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 행정기관 '이용감'을 신설하자 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같은 정부기관이다. 

정약용은 <기예론>에서 "인간은 짐승과 달리 지혜로운 생각과 교묘한 연구 능력이 있어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수레 제조 '전궤사(자동차회사)', 선박 제조 '전함사(선박회사)', 화폐 품질 관리 '전환서(한국은행)' 등 신설을 주장했다. 

특히 산림 관장 '산우사(산림청)', 목재 담당 '임형사(목재회사)', 강둑 관리 '택우사(수자원공사)', 하천 관리 '천형사(농어촌공사)', 광산 관장 '사광서(대한석탄공사)' 등을 제안했다. 정약용은 이미 공기업을 만드려 했던 인물인 셈이다. 

농업 상업 이외 산업 진흥도 주창했다. 광산업, 임업, 염업, 어업, 원포, 축산업 등을 육성하고자 했다. 

정약용은 사민구직(四民九職) 개혁 방안도 제시했다. 사농공상 4가지 직업 이외 원예, 목축, 목재, 직포, 잡노동 등 5가지를 추가한 것. 양반을 포함 모든 백성들에게 전문 직업을 갖게 해서 놀고먹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그리고 '무노동 무음식'을 주장했다. 

박정현 작가는 "정약용에 대한 특정 분야 전문가는 많지만 종합적으로 정리된 책이 없었다"며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은 요즘, 다산 정약용과 같은 지장, 용장, 덕장이 책 밖으로 성큼 걸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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