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확약 90% 차지…신용리스크 떠올라
증권사가 보유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을 둘러싼 우려가 꺼지지 않는다. 비록 연초 이래 자금시장이 회복되고 있으나 투자금 회수를 결정하는 부동산 시장이 공정률 저조, 미분양 증가 등 여전히 위태롭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25개 증권사가 보유한 부동산 PF 관련 우발부채는 20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8개 대형증권사가 보유한 채무는 12.4조원으로 중소형사보다 4조원 더 많다.
다만 중소형사의 우발부채는 질적으로 더 열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공여형인 매입확약 비중은 중소형사 98.7%(8.4조원)로 대형사 91.7%(12.4조원)를 7%p 상회한다.
유동성공여형(매입보장)은 부동산 PF 대출을 기반으로 한 유동화증권 미매각분에 대한 인수 의무만을 갖는 반면, 신용공여형(매입확약)은 부동산PF 부실 대출에 대한 상환 책임을 진다. 그만큼 더 위험하고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되자 문제가 된 건 유동성공여형 부채다. 투자자들의 수요가 바짝 마르면서 증권사가 이를 모두 떠안게 되는 유동성 위기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시행한 결과 이 같은 유동성 문제는 일부 해소된 상태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장기간 위축되면서 시공사 부실, 미분양 확대 등에 따른 신용 리스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 미분양 주택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286.6% 증가한 6.8만호로 집계됐다. 민간 아파트 초기분양률은 지난 하반기부터 수도권, 지방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하락세를 띠고 있다.
한금연 박해식 선임연구위원은 "(높은 신용공여형 비중은) 시공사 부실, 미분양 확대, 입주포기 증가 등에 따른 신용사건 발생 시 증권사의 우발부채가 확정채무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증권사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중소형사의 신용위험은) 대형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브릿지론은 이 같은 잠재부실 뇌관으로 꼽힌다. 브릿지론은 사업인허가나 본PF대출 이전에 실행하는 대출이다. 그만큼 사업 불확실성이 높고 투자자금 회수에 오랜 기간이 걸린다. NICE신용평가가 집계한 국내 25개 증권사 브릿지론 규모는 8.2조원으로 전체 익스포저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 같은 배경에 정부도 추가적인 지원에 나선다. 6일 금융위원회는 '회사채·단기금융시장 및 부동산 PF 리스크 점검회의’를 열고 정상 사업장의 경우 브릿지론이 본PF로 전환될 수 있도록 20조원 규모의 사업자 보증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또 자금난 겪는 건설사를 위한 정책금융 공급규모를 전년도 말 대비 5조원 늘린 28조4000억원으로 확대한다.
권대영 상임위원은 "정부는 부동산 PF와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기존 프로그램들을 탄력적으로 차질 없이 집행해나가면서 이번에 발표한 정책들도 적극 추진하겠다"며 "이와 함께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해 금융규제 유예 조치의 연장 여부 등에 대해서도 조속히 검토·결정하겠다"고 말했다.
NICE신용평가 이강욱 금융평가1실장은 “자금시장 상황 개선으로 단기 유동성 경색에 대한 우려는 낮아졌다”며 “그러나 부동산 경기에 대한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에 분양을 통해 투자자금을 최종 회수해야 하는 부동산PF 사업장에 대한 위험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어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하지 못하면 작은 크레딧 이벤트에도 부동산PF로 인한 금융불안이 반복될 수 있으며 증권사의 리스크 역시 상시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부동산 경기 위축국면이 지속되면 2023년부터는 부동산PF 리스크 관리능력에 따라 증권사별 신용위험이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