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 모인 美 NBER(전미경제연구소),韓 반도체산업 저격... “한국도 국가 정책이 반도체 시장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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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 모인 美 NBER(전미경제연구소),韓 반도체산업 저격... “한국도 국가 정책이 반도체 시장 키웠다”
  • 우연주 기자
  • 승인 2024.07.1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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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주의 벗어나 보조금 경쟁 염려
배경에는 국가 경쟁력과 보안 목적
“한국도 ETRI 통해 재벌 푸쉬했다”
[사진=보고서 일부 캡쳐]
[사진=보고서 일부 캡쳐]

[녹색경제신문 = 우연주 기자] 세계 경제 석학이 모인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반도체 업계 성장에 있어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 성장에도 국가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를 설립하고 기업에 기술과 R&D 자금을 지원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피넬로피 골드버그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 저자로 참여한 이번 보고서는 보조금 출혈 경쟁(subsidy race)을 염려하면서도 이미 반도체 산업이 성장한 국가들의 과거 사례를 근거로 산업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보고서는 “보조금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세계가 합의한 다자주의(multilateralism)과는 결이 다를 뿐더러 자원이 국가간 보조금 출혈 경쟁이 있을 수 있고, 지원금이 비효율적으로 분배될 가능성을 내재한다”면서도 “새로운 종류의 상품이나 녹색 기술, 또 국가간 외부효과 잠재돼 있다면 보조금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썼다.

보고서는 보조금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로 파급효과를 꼽았다.

보고서는 “정책입안자들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면서 경제성장, 국제적 경쟁력, 국가보안 등의 목적을 갖는다. 이 목적의 배경에는 반도체 산업의 특징인 경험기반학습(learning by doing) 효과가 비교우위를 만들고, 그것이 규모의 경제로 이어지고, 이어 더 높은 산업밀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다면 보조금은 파급효과를 가질 것이다”고 썼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도 정부 정책 영향이 컸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대한민국 정부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조립’ 단계를 넘어선 전자기기 산업을 육성하고자 했다. 반도체 산업은 이 계획에서 언급된 전략적 상품이었다”고 썼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ETRI의 설립이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단순 인센티브 패키지를 넘어선 내수 시장 보호 등의 조치를 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ETRI의 설립”이라며 “ETRI는 사기업들과 함께 연구개발을 수행했다. 1980년대까지 반도체 산업에서 정부의 R&D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ETRI를 도구로 재벌들을 푸쉬했다는 표현도 있다.

보고서는 “ETRI를 통해(through ETRI) 정부는 재벌이 생산역량을 업그레이드하고 더 디자인에 집중된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푸쉬했다. 정부는 사기업에 보조금을 주기도 했고 직접 연구개발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썼다.

국가 주도로 연구개발 기관이 산업을 이끈 것은 대만도 마찬가지다.

보고서는 “대만도 먼저 ERSO(Electronics Research Service Organization)을 설립해 신기술을 만들었다. 이 방식을 통해 어려운 기술의 R&D로 인한 리스크는 정부가 부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국가간 기술 이동도 강조했다.

보고서는 “일본도, 한국도 혼자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며 “한국은 미국 기업들과의 기술 연합에 크게 의존했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기업들을 인수하기도 했다”고 썼다.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독점을 규제한 것이 과거 한국과 대만 등으로의 기술 이전에 영향을 줬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한국과 대만 등으로 미국의 기술이 이전될 수 있었던 것에는 미국 정치인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해외 기업들이 기술에 접근가능했던 이유는미국의 반독점 정책(antitrust policies)과 기업들의 의지가 각각 있었기 때문”이고 썼다.

중국의 기술 발전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보고서는 “중국은 60년대부터 반도체 시장을 키우고 싶어했고 금전적 지원도 컸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중국은 상당히 해외 기술 의존도가 컸는데, 이 기술의 주인이 모두 중국의 지정학적 라이벌인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썼다.

이어 “협상력이 떨어졌던 것도 원인이다. 한국이 했던 것처럼 ‘해외 기술 주면 내수 시장 접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식의 거래가 힘들 정도로 내수 시장이 빈약했던 것”이라고 썼다.

전미경제연구소는 미국의 석학이 모인 연구기관으로, 학문적 권위를 갖는다. 

업계를 잘 아는 관계자 A씨는 “전미경제연구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멤버로 있고, 그들이 최신 연구를 발표하는 곳이다. 정부가 반드시 이 기관의 조언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NBER의 학문적 권위는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세계 반도체 분야에서의 산업 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워킹페이퍼 단계다.

A씨는 “워킹페이퍼란 논문을 공식 출간하기 전 의견 수렴을 앞둔 단계를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우연주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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