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PS 전환시 자사주 확보…실질 지배력 강화로 이어져
[인사이트녹경 = 박준형 기자] 현대차증권의 자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줄 알았던 전환상환우선주(RCPS) 발행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자본이 아닌 사실상 부채가 됐기 때문이다. 2000억원대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차증권은 사실상 자기자본을 확충하면서 지배주주의 실질 지배력까지 높일 수 있는 묘수를 내놨다.
현대차증권은 지난 2019년 자기자본 1조원 달성을 위해 1036억원 규모의 RCPS를 발행했다. 발행비용 등을 제외한 모든 금액은 자본으로 편입됐다. RCPS는 상환권과 전환권이 부여된 우선주를 말한다. RCPS 투자자는 회사의 기업가치가 높아져 주가가 오를 경우 주식전환을 통해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미래에 주식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회계상 자본으로 처리된다.
현대차증권 입장에서 전환권을 가진 우선주(액면가 5000원)가 발행되면서 자본금이 471억원 증가했고, 전환가액(1만1000원)과 액면가 차이는 자본잉여금 563억원으로 편입됐다. 2019년 8224억원이던 현대차증권의 자기자본은 2020년 9892억원으로 늘었고 이듬해 자기자본 1조원을 넘어섰다.
다만 자본으로 인정됐던 RCPS는 현대차증권의 주가가 하락하자 갚아야 할 부채가 되어 돌아왔다. 내년 5월 RCPS의 상환기간이 도래하는데 전환가(1만1000원)보다 주가가 낮아 주식전환을 기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차증권의 주가는 전날 기준 7650원으로 전환가 대비 30.45% 낮다.
주식 전환이 불확실해진 RCPS의 온전한 자본화를 위해 현대차증권은 이번 유증을 통해 방법을 찾았다. RCPS를 유증 자금으로 상환하고 회사의 자사주 형태로 편입하는 묘수를 내놓은 것이다.
RCPS는 우선주의 형태를 갖기 때문에 상환시 부채처럼 말소되지 않는다. 때문에 현대차증권이 이를 상환하면 RCPS 역시 회사가 보유하게 된다. 전환권 역시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보통주 전환이 이뤄지면 자사주 형태로 남게 된다. 결국 이번 유증으로 주주들에게 자사주 매입 자금을 부탁한 셈이다. 최대주주인 현대차 입장에서는 현대차증권의 자사주 22.21%를 추가로 확보해 실질적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까지 보게 된다. 현대차증권 관계자는 “RCPS는 상환이 완료되면 회사가 보유하게 된다”면서 “소각 등의 여부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증권이 해당 우선주를 소각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소각이 이뤄지면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이 동시에 감소하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역시 775억원 감소해 2000억원의 증자 효과는 1225억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현대차증권이 유증으로 RCPS를 상환하는 것은 자기자본 확충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 RCPS 상환 과정에서 자기자본의 감소가 발생하지 않으며, 신주발행을 통해 2000억원의 자기자본이 추가되는 효과를 볼 수 있어서다.
반면 현대차증권의 '묘수 유증'을 바라보는 소액주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1000억원의 채무상환 자금 전액을 소액주주들에게 떠넘긴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현대차증권의 최대주주인 현대차와 특수관계인이 지분율은 45.71%다. 최대주주 등의 100% 유증 참여를 가정할 경우 필요한 자금은 914억원(발행예정가 기준) 가량이다.
현대차증권은 채무 상환을 위해 주주 손을 벌릴 정도로 재무구조 역시 열악하지 않다. 올해 3분기 기준 현대차증권의 자기자본은 1조2995억원 수준으로 이중 절반인 6215억원이 이익잉여금이다. 이익잉여금은 기업의 영업활동 등으로 축적한 이익이다. 운전 자본을 비롯해 채무상환 등에도 사용 가능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의 경쟁력은 자기자본 규모에서 나온다”면서 “현대차증권의 이번 유증은 자기자본 유지와 확대를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차증권은 지난 26일 장 마감 후 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증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발행가액은 6640원으로 발행주식총수의 77.72%인 3012만482주를 신주 발행할 계획이다. 유증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시설자금 및 채무상환에 사용될 예정이다.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시설자금에 1000억원을 투입하며, 기업어음증권(225억원) 및 RCPS(775억원) 상환에 1000억원을 사용할 계획이다.
박준형 인사이트녹경 기자 insigh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