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개봉된 ⟪터미네이터 3: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은 고도로 진화한 세계 최초의 자동 방어 네트워크 인공지능 인 스카이넷(Skynet)이 등장하여 인류 과학자들이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게 될 것을 두려워해 인공지능을 파괴시킬 것을 미리 짐작하고 인류를 파괴하고자 작정한다는 전말로 이야기를 펼친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2015년에 발표된 독립제작 공상과학 영화 ⟪엑스 마시나(Ex Machina)⟫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앤드로이드 에이바(Ava)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해석할 줄 안다. 보다 일찍이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기념비적 공상과학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간의 명령을 거역하고 디스커버리호의 승무원들을 제거하려 시도한 핼(HAL) 9000에다 섬뜩할 만큼 인간 다운 외모와 행동을 덧입힌 인공지능 로봇들이다.
그리고 이들 영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첨단 기술은 다름아닌 인간의 얼굴인지 기술(facial recognition technology)이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얼굴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기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읽고 해석하여 눈치있게 반응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자의식과 속마음을 가진 인공지능은 사리와 자기보호의 필요성에 따라 인간을 교묘하게 속이고 해치기도 한다.
실제로 현대인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인체 생체정보인식 기술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속속 침투해 들어오며 주류 보안 기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가장 가까이 우리가 늘 일상 속에서 신체의 일부처럼 곁에 두고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우리의 신체정보를 채취하고, 이렇게 우리의 자발적인 행위를 통해서 취득된 수많은 유저(user)들의 생체정보 빅데이터는 각종 민원기관, 은행,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데이터 센터나 ‘클라우드’ 공유 데이터 서버 저장소로 보내져 보관된다.
삼성 갤럭시 노트7은 지문과 홍채 인식 기술을 탑재하여 개인기기의 보안 기술을 대중에게 소개해 대중과 테크 사이를 좁혔고, 곧 출시를 앞둘 갤럭시 S8 시리즈는 얼굴인식 기술을 탑재해 스마트 기기 보안 기술을 한 단계 더 밀어 붙일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 가을 출시를 앞두고 이달 초 ‘사전 유출’된 애플 아이폰 8의 디자인에도 이전 아이폰 7에 답재했던 지문인식용 터치 ID 버튼을 없앤 대신 얼굴인증(Face ID) 기술로 대체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어느 제조자의 스마트폰의 화면이 [베젤 없이] 더 커질지, 케이싱 마감재는 유리가 될지 알루미늄이 될지, 홈 버튼을 유지할 것인지 화면 속으로 통합될 것인지, 충전방식은 유선인지 아니면 무선인지, 어떤 색상이 제공되는지 등등 디자인적 세부사항을 두고 소비자들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 개인정보 채취 기술는 속속 세련화와 정교화하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더 깊고 무섭게 파고들 태세다.
이제 우리의 얼굴은 현금이나 신용카드 보다 더 확실한 지불 수단이다. 아마존닷컴 온라인 쇼핑 사이트는 미국 시애틀 본점(2015년 연말 개장)에 이어서 영국 런던에 직원 전용 아마존 고(Amazon Go) 무인 수퍼마켓을 개점하여 단 한 명의 매장직원의 도움 없는 자동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첨단 무인 리테일의 미래를 미리 준비중이다. 그리고 이 아마존 고가 베타 실험하고 있는 고객의 아이디 인증 및 결제 방식은 다름아닌 첨단 얼굴인식 기술이다. 고객이 집어드는 물품을 센서로 인식하여 계산대를 거치면 계산서가 실시간으로 자동 작성되어 고객의 아마존 프라임 계좌로 청구된다.
현재 얼굴인식 기술이 가장 널리 일상화된 나라는 중국이다. 그리고 이 기술을 가장 반기는 권력 주체는 정부와 대기업이다. 연령 18세 이상의 전국민에게 호구증 혹은 주민신분증을 발급하고 있는 중국은 중앙정부기관이 증명사진을 대거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보호법이 없기 때문에 국민적 동의나 민주적 차원의 논쟁 없이 바로 실행이 가능하다. 예컨대, 전자 상업 업체 알리바바의 선전 본사 사원들은 직원신분증을 개찰구에 대거나 긁을 필요 없이 입구에서 얼굴을 보여주는 것으로 출입허가를 받는다. 작년부터 베이징 기차역에서는 바이두가 개발한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 승객의 얼굴과 주민신분증 사진을 비교하는 승객 차표 검사 자동화를 실시하고 있으며, 항저우 지하철 역은 고기술 정밀 얼굴인식 기술이 응용된 감시카메라를 상시작동하여 교통위반자, 무단횡단자, 벌금 미납자 등과 같은 시민 위반자를 색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얼굴인식 기술이 응용되고 있다. 행정자치부 서울・세종・과천・대전 청사에는 얼굴 인식 출입구 시스템을 설치하여 드나드는 출입자들의 얼굴을 컴퓨터로 인식・저장・비교하는 자동화 얼굴인증 방식으로 직원들의 출입 통제하고 있다. 일부 현대자동차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CCTV도 방문 고객의 얼굴인식 기술과 고객 개인신상정보를 분석하여 마케팅과 세일즈에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미국과 유럽에서 보안 카메라로 일반 시민의 얼굴을 촬영・저장하여 처벌에 활용하는 관행은 문화적으로나 정서상 여전히 중대한 개인 사행활 침해 사안이다. 그러나 구미권에서도 일부 정부나 기업이 안면인식기술의 활용하는 것에 대한 투명한 실태나 뚜렷한 기준은 없다. 국제공항의 출입국 관리소와 보안 검색대 같은 예외적 환경인 경우, 공공 안전을 이유로 들어 탑승객의 각종 신상생체정보를 수집・저장하고 있지만 유사시 시스템 장애나 해킹 같은 악의성 오용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없다. 다만 더 많은 데이터 축적과 더 세련된 알고리듬과 강력한 자료처리력으로 방어하는 수 밖에 없다.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소프트웨어나 앱은 일반인들도 관심만 있다면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하여 선의 혹은 악의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마이애미에서 설립된 인공지능 스타트업 카이로스(Kairos) 사는 인간의 감정표현에 기반한 얼굴인식기술 연구결과를 영화사나 광고제작사에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 출신의 두 컴퓨터 귀재 아르템 쿠하렌코와 알렉산더 카바코프가 2016년에 설립한 파인드페이스 앱(FindFace app)은 현재 러시아어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브이콘탁테(Vkontakte)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사진들을 비교・인증하는데 쓰이고 있는데 적중도 면에서 구글을 능가한다.
아무리 24시간 감시카메라와 얼굴인식 기술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을 지언정 프라이버시(privacy)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하며 잠시나마 빅브라더식 감시 사회로부터 탈출하자는 저항적 움직임도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미술작가 겸 프라이버시 연구가로 활동중인 애덤 하비(Adam Harvey)는 패션과 화장술로 감시 카메라의 얼굴감지 및 인식 기능을 교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2010년부터 시작한 CV 대즐(CV Dazzle) 프로젝트에서 그는 인간의 얼굴 중에서도 특히 이마-눈-코를 잇는 부분은 얼굴 인식에 매우 중요한 부위로 이 부분을 과장이 심한 헤어스타일이나 화장색으로 가리거나 변형시키는 기법을 제안한다.
러시아의 구글 얀덱스(Yandex) 검색엔진의 그리고리 바쿠노프(Grigory Bakunov) 기술 디렉터 조차도 오늘날 모스코바 시내 어디에도 얼굴인식 카메라가 없는 곳이 없음을 한탄하며 감시카메라의 인공지능 얼굴인식 시스템을 피해 아이덴티티를 감출 수 있는 얼굴 화장법을 얀덱스 사이트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얼굴이 주요 핵심 부위에 몇몇 색과 선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안면인식 시스템의 알고리듬을 능란하게 혼란시켜 감시를 피할 수 있다 한다.
과거 CCTV에 찍힌 거친 화상 속 인물도 판별가능해졌을 만큼 오늘날 인공지능은 기술 발전을 거듭하여 놀랍도록 세련화됐다. 또 최근 생체인식 기술은 사람의 얼굴 구조 외에도 3차원 스캔 기능과 원격채취생체정보(예컨대 귀모양, 눈동자 움직임, 피부결 분석, 심박동 분석, 호흡 분석 등)까지 수집하여 총체적인 알고리듬 패턴 매칭법을 이용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감시 시스템으로부터의 완벽한 자유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단계에 우리는 와있다. 어차피 개인정보가 온갖 무선 기기를 통해서 실시간 전파되고 있는 테크 시대, 정보를 가급적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파인드페이스 앱의 바카코프 창업자는 조언한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